인간은 결코 자기를 믿어서는 안 되는 존재, 이것을 갈렙과 여호수아가 알게 된 겁니다. 내가 멸망당한다고 하면 멸망당할 걸 믿으면 안 돼요. 멸망당한다고 하신 분을 믿어야 돼요. 그게 십계명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어차피 인간은 이러나저러나 잘나서 살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고 자기가 있는 그 죄 때문에 짓밟히고 멸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하나님의 약속에 말씀에 근거해서 십계명에 근거해서 그걸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것을 위해서 주님께선 이스라엘은 죽음의 공간을 통과하게 만들었어요. 너를 죽이는 환경과 네가 동일하다는 것, 그럴 때 그 이스라엘 사람들 원망했잖아요. 그러나 모세가 내세운 것은, “원망하지 마라. 지금 이 환경, 구름기둥과 불기둥 있잖아. 우리만 통과 하냐? 아니잖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잖아. 아주 초죽음 될 환경을 더운 환경을 함께 있잖아.”
그래서 오늘날 이 시대도 이런 관점에서 갈렙과 여호수아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우린 죽어 마땅함 늘 매일 새로운 세트장을 우리에게 허락해주는 거예요. 어제까지의 구태의연한 그러한 날 죽이는 세트장 말고, 오늘 아침이 되면 또 산뜻한 세트장을 마련해주는 거예요. 꽃 활짝 피고 개나리 피고요. 꽃 믿지 마라. 꽃 지듯이 너도 곧 진다. 새로운 세트장 허락한 거예요.
또 다시 우리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아는 새로운 자리로 돌아가게 만드는 새로운 세트장, 이게 우리의 매일 일상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돼요. 처음으로 갈 때 내 선과 악으로 따지지 말고 이미 나는 선과 악을 알게 된 자체가 나를 죽이게 만든 요소인 것을 그걸 인정하는 거예요. 죽는데 또 내일 되면 무슨 세트장이 준비될까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쑥 들어온 예수님의 육신, 죄 있는 몸으로 오실 때 주님이 주신 게 있어요. 그게 십계명이고 그 십계명의 완성이 뭐냐?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날마다 나를 심판해주는 그게 사랑이에요. “제발 너 믿지 마라. 너 언제까지 네 생각할 건데. 내가 알아서 네 생각 잘라줄 게.”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