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부장은 그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과는 달리 구경꾼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과 자기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이란 자신을 위해 마련된 자기 공간이 먼저 있고, 그 안에 들어앉아서 밖을 살피게 되어 있습니다. 이 안과 밖 사이가 바로 경계선입니다. 이 경계선이 있게 되면 관찰자 입장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아무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것을 왜 자꾸 나는 끝까지 붙들려고 하는 이 심보, 대체 누가 나에게 이런 괴로움을 안겨주었던가, 그 말이지요. 이게 마귀가 안겨 준거지요, 마귀가. 이제 믿음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턱 이전이든 이후든 그 모든 것이 주께서 주신 성령의 믿음으로 되었다면 우리가 바라볼 것은 바로 내 중심이 아니고 예수님 죽음중심, 그 예수님 죽으심이 모든 화목,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잘못도, 어떤 정죄도 없다는 사실이에요. 간통한 여인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너를 다시는 정죄하지 않겠다는 그 이야기가 그 영화의 반복성처럼 간통한 여인에게 들린 그때만 들리지 말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일같이 ‘나는 다시는 너희를 정죄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그냥 말로만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실제적인 사건을 근거로, 그 피를 근거로 우리 코앞에 내미는 이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지금도 안겨주시는 경계 허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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