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라는 정의는 일방적으로 낯선, 예상 못한 타자가 우리의 삶 자체를 고난으로 이미 규정을 해버렸어요.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스테이크 써는데 이게 잘 안 썰리는 것도 주님이 주신 고난이에요. 왜 이리 칼이 안 들지?
그 증거를 대겠습니다. 누가복음에 세례 요한 나오죠. 누가복음에서 이야기한 게 뭐냐 하면 세례 요한이 어떤 타자를 이끌어내는 선지자라는 겁니다. 이걸 도선사라 해요. 배가 항구에 들어오는데 조그마한 배가 큰 배가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사람을 도선사라 해요. 도선사 월급 많아요. 재주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도선사거든요. 이 말은 구원받는 자는 항상 낯선 타자를 이 세상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그것이 성령께서 주님과 자기 백성을 주선하는 이유라는 겁니다. 성도가 뭐냐? 세상이 모르는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는 낯선 타자를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거예요. 일종에 주님 오시는 길을 미리 와서 물렀거라, 하는 식으로 그렇게 먼저 선포하는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리에 딱 안착하니까 그다음부터 세례 요한은 역사상에서 사라져버려요. 그것도 비참하게 사라져버리죠. 그럴 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고난과 동일한 동질선상에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안은 특징이 뭐냐? 예수님의 고난과 같은 고난을 공유하고 있는 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성도는 밥 먹고 살려고 고난 받는 게 아니에요. 그건 고생이고. 예수님과 관련되어 있을 때 예수님이 나에게 성령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소개하도록 평생을 이끈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기대했던 고난이에요. 그 이끌림이 한 달 수입 2천만 원 될 수도 있고 그 이끌림이 할 일 없어 빈둥빈둥 누워가지고 그냥 야구나 보고 이럴 수도 있고 어쨌든 간에 그 야구 보는 것조차 주께서 주신 일이라고 믿어지는 그것이 그런 야구 좋아하는 야구광 세례 요한. 축구 좋아하는 세례 요한. 모든 성도는 세례 요한 같은 존재에요. 왜? 낯선 타자, 세상이 모르는 외부인을 소개하기 때문에 그래요.
'내 생각 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 공간 (0) | 2022.05.23 |
---|---|
예수님의 전과 예수님의 후 (0) | 2022.05.21 |
세속의 잠 (0) | 2022.05.21 |
욥기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0) | 2022.05.16 |
선택 (0) | 2022.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