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육적 해석

아빠와 함께 2022. 4. 21. 13:57

일곱 인으로 봉인 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책이 있는데, 책이 닫힌 상태에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이렇게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말이죠. 그렇다면 왜 이것이 일곱이냐 하면, 요 책 안의 그 내용이 바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있는 모든 세상의 변화무쌍한 변화가 다 요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곱으로 봉인 됐다 말은 이 안의 세계가 무슨 세계다? 천지창조의 세계를 대변하고 있는 설계도가 되는 거예요.

지금, 제가 위의 있는 세계와 아래의 있는 세계를 이야기했는데, 아래 있는 세계에서 위에 있는 세계를 해석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아래 있는 세계에서 우리가 해석할 때, 우리의 이성과 합리성만 동원되는 것이 아니고, 그동안 우리가 살아왔던 이 세계가 몽땅 동원되어서 그걸 바탕으로 해서 해석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원래 정답은 이 책안에 있는데, 우리는 책을 뗄 수가 없다 그랬죠? 왜 책을 뗄 수 없다 했습니까? 왜? 메시야가 아니기 때문에. 왜 우리는 메시야가 아니라 했습니까? 창세전에 우리는 거기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 간단하죠? 따라서 여기 우리가 기껏 아는 성경해석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구축되어 있는 이 세계, 이걸 역사라 하죠. 역사에서 익히고 들은 것, 그것도 다 몰라요. 예, 우리가 어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제45번지에 있는 아줌마 얘기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모르잖아요? 그런데 뭐는 알고 있어요? 청함은 다 돼있죠. 다 몰라요. 그리고 우리는 어릴 때 일 모릅니다. 기억도 모르고 남의 세상도 모르고, 먼 나라 이야기도 모르고, 앞으로 될 일도 모르고 몰라요. 하지만 처음이요 나중이신 주님과 하나님은 다 아시기 때문에, 이 안에 다 원래 증거가 있다 말이죠.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아! 우리는 모르고 주님은 아는구나. 이렇게 되면 문제가 큰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가 뭐냐 하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면서 이 성경 말씀을 해석해 내고 있다는 이 사실, 이게 문제가 돼요.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해석만 하시겠습니다. 라는 사람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습니다. 왜? 우리는 뭐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메시야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아담에 속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아는 척을 해요. 지가 경험한 것, 이런 것 가지고 성경에 다 나옵니다.

그러면 그 해석을 가지고 육적 해석이라 하고, 육적 해석의 근거는 뭐냐 하면, 바로 문자, 언어가 되는 겁니다. 언어세계는 언어 뒤에는 언어 구조가 있고, 이 언어구조는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우리가 잘 아는 생존과 존재 구조에서 나오거든요. 존재구조, 이 세상 삶에서 존재구조는 무엇을 매개로 하느냐 하면, 우리의 몸, 신체를 매개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70이레 논문에 나왔지만, 다니엘이 몸을 갖고 있다 말이죠. 몸을 갖고 있는 이상은, 인간의 몸이라 하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이 몸은, 이 유기체라 하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살고 싶고 그리고 유기체적으로 확장하고 싶고, 또 공격해 오면, 사수하고 공격하고 자기 영역을 넓히고 그러면서도 자기 몸은 생존 지탱해야 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말이죠. 활동하면서 주변과 교류가 되는데, 누가 남하고 얘기할 때는 반드시 언어를 사용해야 되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개념과 사상에 동조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사회에서 못 살아남잖아요. 인터넷 모르면 곤란하잖아요. 그것이 이런 해석이 나온 해석이 바로 성경해석이 육적 해석이 된다 말이죠. 이것은 어느 누구도 매일 있을 수 없어요. 역사적 해석법과 문법적 해석법이 모든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고 그거 밖에 안돼요. 거기 갇혀 있어요. 그러면 역사적 해석을 하는데, 해석하는 주인공이 누구냐? 바로 나죠. 여기서 문법적 해석의 한계를 잠시 이야기 하면, 문법적 해석이라 하는 것은 다 끄집어내면, ‘주어+술어’인데, 나는 뭐다. 나는 한다. 주어+술어인데, 문제는 나라는 인간이 주어에도 속하고 술어에도 속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결국 뭐냐? 누가 누구한테 이야기 한다? 내가 나에게 알아듣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식밖에 안돼요. 내가 나에게 알아듣는 식으로 이야기 하니까, 결국은 뭐냐, 누구의 영광? 나의 영광, 나의 의가 되고, 그렇다면 핑계고 변명으로 일관을 하는 거예요. 모든 성경 해석은, 그래서 나는 정당하단 말이야. 라는 소리예요.

성경을 가지고 해석을 하면서도, ‘그래서 나는 정당한 거야.’ 후렴으로, 또 뭐라 합니까? ‘얼쑤~~’ 하고 추임새가 늘 들어가는 거예요. 한 마디 하고 추임새가 들어가는 거예요. 조 용기 목사 설교할 때, 그러므로, 하고 거기 추임새가 들어가듯이, 그러므로, 하면 다음 생각하듯이 같이 추임새가 들어가는 거예요. 나는 정당하다. 나는 정당하다. 나는 정당하다. 계속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뭘 못하느냐 하면, 나는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말을 나, 나의 입에서는 할 수 없죠. 왜? 정당하지 않으면 입을 다물고 있어야지, 할 필요 없겠죠. 그래서 욥기 마지막에 보면, 욥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합니까? 스스로 입을 막죠. 어디 손 냄새 맡으려하는 게 아니고...ㅎ 입을 막고, 그것도 모자라서 재(요새는 이불)를 뒤집어쓰면서, ‘회개하나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했습니다.’ 그런데 욥이 아는 척 했다는 것은 욥이 건방져서 그런 것이 아니고, 욥의 뭐가 탈났어요? 욥의 신체(육)가 탈났잖아요? 신체가 우리의 자아를 만듭니다. 너무나 신체가 고단하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저주 속에서 싸여 밥 먹고 살다 보니까 힘들어요. 힘들면 신음소리를 내게 마련이고, 그 신음소리를 내면, 그것이 바로 그 중심이 결국은 Why Me? 왜 하필이면 나를???? 왜 하필이면 나에게?? 그렇게 외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너가 저 하마가 새끼 낳을 때 봤냐? 하나님께서 뭐냐 하면, 책 속의 내용을 얘기하죠. 욥은 모르죠? 바로 책속의 있는 내용을 알아야 예수님 중심으로 가야 할 건데, 욥은 메시야가 아니기 때문에, 메시야가 아니면 모른다하면 될 텐데, 욥은 누구 중심이었습니까? 자기 몸 위주, 몸이 아프니까 아프다고 한 거예요. 몸 위주로 하다 보니까, 결국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왜? 고난이 왔는지, 이런 벌을 받을 쨉이 아닌데, 분명히 이런 상황이 아닌데, 나보다 죄진 친구는 다 멀쩡한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모든 것이 내 몸 중심이 되는 거예요.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자기 몸을 자살할 수도 없고, 몸을 버리고 도망칠 수도 없고.. 

지금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인을 하나 떼면 뗄수록 어떤 변화가 주어지냐 하면, 떼면 성령이 흘러나오죠? 성령이 흘러나오면, 떼게 되면, 허락된 내용이 주어집니다. 주어지면 성령께서는 뭐냐 하면, 그동안 자기중심으로 살던 것이 뭐로 바뀌느냐 하면, 예수님 중심으로 바뀌어요. 그럼 자기 중심은 그냥 바뀐다고 해서 내 중심은 날아가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뭐가 되느냐 하면, 내 중심으로 산 것이 본의 아니게 이게 ‘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죄가 인봉을 떼는 상황과 연계가 돼 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나는 사는 게 힘들었어.’ 외쳤는데, 그 외침이 인봉을 뜯는 사람을 뭐로 만들었다? 이 땅에서 죽게 만든 거예요. 그래서 죽음을 당한 어린양이 떼는 거예요. 우리는 본의 아니게 태어난 모습이 이런데 어떡합니까? 힘들게 사는 게. 본인이 어떤 변명과 구실을 하더라도 그게 정당하게 보여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의 몸을 가져서 고통스럽다고 부르짖는 그걸로 인하여, 주님은 우리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자로서 이 땅에서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고마우신 것은 돌아가신 분이 바로 ‘너 때문에 내가 죽었다.’ 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뜯는 과정에서 책이 나오고, 책에 있는 명단이 있는데, 리스트(LIST)에 해당하는 사람만 성령이 주어져서 주님의 피 흘린 그 값이 헛되이 돌아가지 않도록 그렇게 조치하신 겁니다.

 

-십자가마을 강남강의 "계시록6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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