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하마

아빠와 함께 2022. 4. 25. 08:06

하마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다른 피조 세계도 관련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 있다

인간이 존재하는 자체가 자연 파괴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 취지는 이렇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기에 요란을 떨고, 난리판이라도, 이 세상은 그냥 조용히 망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별일 없지? 아무 일 없잖아. 망하고 있으니 정상이잖아’라고 하시는 겁니다.

인간이 싸대고 설쳐대도 그냥 이 세상은 애초부터 아무것도 아니었고 무의미했고요, 무의미한 것이 무의미한 채로 망하는데 같이 기뻐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같이 망하는 세상에 같이 기뻐해 주면 되잖아요. 이게 참 쉽죠잉~? 이게 어려운 일입니까? 뭐 진리를 알겠다고 그렇게 절까지 갈 것 없이 그냥 세상은 망합니다. 그러니까 망하는 세상에 유독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지 마세요.

뒤로 못갑니다.  

이 세상은 악한 쪽으로 망하는 쪽으로 인간이 설치는 쪽으로 흘러가지 하마가 설치는 쪽으로 가지 않아요. 이것이 인간과 하마의 차이점입니다. 그렇다면 19절에 이 하마가 창조주의 으뜸이라고 하는데 왜 으뜸이냐 하면 하마 주위에 조성된 여러 가지 전제조건들은 제거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뺄 것이 없어요. 그 자체가 온전한 겁니다.

인간의 정신머리, 사고방식 자체가 인간을 대표한다고 보면 인간을 대표하는 사고방식들을 기준 해서 전부 다 제거 대상들이에요. 인간의 생각 자체가 제거 대상입니다. 

포도원에 들어가는 것이 주의 뜻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전체가 아버지의 뜻에 위반됨을 파악하고 알아채는 그것이 주의 뜻이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싫소이다’를 반드시 거쳐야 해요. 아버지가 ‘포도원에 가라’는 지시에 ‘싫소이다. 나는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것을 반드시 거쳐야 해요. 왜냐 하면 인간은 이미 망가졌기 때문에, 자기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싫소이다’가 당연한 거예요. ‘나는 망가져도 마땅합니다’라는 말이 ‘싫소이다’에 다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하나님보고 ‘싫소이다’라고 하지 말고 내가 나보고 ‘나는 나 자신이 싫어’라는 그 과정을 거쳐야 해요.

폭풍 속에서 말씀 주셨다는 말이 뭔 뜻이냐 하면 운동 속에 고정성을 삽입시킨다는 겁니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운동하잖아요. 운동하니까 변화하고 변화하니까 인간은 얼추 희망을 자꾸 품는 거예요.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는 것이다.그러나 그 가운데 뭔가 쑥 들어오면서 고정된 것이 들어와 버리면 소위 압침(압핀)이죠. 종이가 펄럭일 때 압침을 딱 꽂아놓는 거예요.  

아이들에게는 고정 점이 엄마예요. ‘싫소이다’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싫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죄인 됨, 그것이 우리의 고정점이에요. 욥은 그것을 폭풍 속에서 주께서 고정점을 제시해주는 겁니다.

시간의 진열장 속의 빵처럼 인간은 변화하는 시간에 갇혀있어요. 갇혀있기 때문에 갇힌 곳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마태복음 9장 17절에 이 말씀 하나로 여러분들이 이해될 거예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한다”

새로운 환경, 하나님께서 날아다니며 돌아다니는 인간을 꽉 눌러서 스톱시키는 주님의 고정성에 합류하는 새로운 진열장이 인간에게는 필요한 겁니다. 만약에 인간이 그렇지 못하고 스스로 진리를 찾겠다든지, 나는 싫다는 말을 절대 안 한다고 하든지, 나는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하면서 어떤 진리를 자꾸 찾아다니면서 계속 헤매기 때문에 결국은 본인이 신앙생활 하다가 지쳐버려요.

아무리 어떤 사태가 일어나도 꿈쩍 안 하고 눈만 껌뻑껌뻑하면서 ‘뭐 그렇게 일어나겠지. 주께서 그렇게 하셨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지’라고 태연해요. 하마가 이 세상에서 으뜸이라고 하는 것은 제거할 것이 없는 어떤 대표로 부각시키는 거예요. 뭐 재미가 없어서 하마 연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 보는 하마와 하나님이 보는 하마가 이렇게 전체를 본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 거예요.

붉은 줄- 십자가라는 복음 

하나님 아버지, 우리 처지를 알게 하옵소서. 대단한 존재도 아니면서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면서 실상은 반복적이고 무료하기 짝이 없는 방향도 모르고 목적도 의미도 없는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이 모든 일이 주를 증거 하는 일로 의미 있게 다가왔을 때 우리는 ‘싫소이다’라는 이 고백이 얼마나 기쁜 고백인지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교회 주일오후설교 "싫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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