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더불어 항상 있는 거예요. 그게 무슨 생활? 그게 신앙생활 이예요.
신앙이란 방주에 실려서 사는 거예요. 내가 지키는 게 아니고 내가 골라잡는 것이 아니고, 지키고 말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말씀이 듬뿍 뒤집어 씌워버렸는데, 내가 청와대 가도, 교도소 가도 말씀이 가득 차 있어요. 창살을 보면서, “사도 바울도 이런 고생 했구나.” 어디를 가도 말씀 생각이 나게 되어 있어요. 어디 가도. 그러니까 말씀 주위 상황을 내가 만들지 마세요. 이미 주어진 상황이 말씀이 충분히 헤엄치는 상황 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에서 “내가 가난에 처하든지 부유에 처하든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상황 탓을 하거나 누구 탓 한다든지, 시어머니가 교회가지 마라 해서 못 갔다 고 이런 핑계 는 달지 맙시다. 시어머니 보내주신 것도 말씀대로 보내주신 것이고, 시어머니 핑계대고 교회 안 간 것도 말씀대로 안 간 것이고, 그러다가 얻어맞는 것도 말씀대로 얻어맞는 것이고, 모든 것이 말씀대로 이끄시는 겁니다. 왜냐면, 인간은 안개이기 때문에, 내 자체에 관심은 없는 거예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주의 말씀이 새롭게 주어질 때,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신인 성전이 깨어지겠죠. 성전이 깨어지는 것을, (잘 들어보세요)그걸 목격하고, 그담에 증거 하는 자를 에스겔 11장에서는 ‘하나님의 신이 임한 새로운 공동체’로 보는 겁니다. 희한하죠? 있는 성전 잘 해도 될 걸, 있는 성전 와장창 불타 버리고 불태운 것을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탔다는 것을 목격하고 증거 하면서 이방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그들 속에 ‘나의 신이 운반하는 수레바퀴가 나는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멸망은 말씀대로 하나님이 잘 조치가 된 겁니다. 그런 조치를 제가 설명하면서 “강탈”, 강탈이란, 달리 얘기하면, (이 말이 표준말인지 모르겠어요) ‘움푹 파이는 것’ 표준말이에요? 움푹, 삽으로 푹 파는 것. 삽으로 톡 도려내는 것, 우리의 주체가 있으면 주께서 삽을 동원시켜 푹 파서 우리를 허하게 만드는 것, “나 그거 없이는 못 살아요.”할 때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 “ 나 그거 없이 죽어요.” 하면 움푹 푹 가져가는 것, “그래 죽을테면 죽어라.” 말씀대로 움푹 파는 것. 우리의 주체를 움푹 파는 것을 더 잔인하게 얘기하면,(오늘 잔인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네요) 단층 촬영하죠? 여러분 단층 촬영하면 사진 찍는 걸로 하지만, 빛의 안목에서 보면, 단층 촬영이 정육점에서 전기톱 가지고 모든 단면을 자르는 걸 말해요. 막 잘라 버려요. 막 잘라 버린다고요. 말씀께서 항상 우리를(잠 잘 때는 못 자르니까 자고)말씀을 가지고 단층 촬영하듯이 막 잘라버리면, 요 단면 하나하나가 주의 말씀대로 다 이끄신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이 아예 말씀의 풀장에 들어가니까, 말씀대로 안 되는 게 없어요.
여기서 문제 하나, 신자만 말씀의 풀장에 들어갑니까? 불신자도 말씀의 풀장에 들어갑니까? 신자, 불신자 다 말씀 속에 들어가요. 그런데 불신자는 뭘 몰라요? 불신자는 이게 잘라지는 게 없고, 뭐가 단단합니까? ‘나‘ 주체가 단단하기 때문에 지켜도 내가 지키고, 구원 받아도 내가 열심히 해서 하고, 지금은 내가 바쁘다. 항상 주체가, 누구든지 나를 건드리면, 난 용서가 안돼. 자기 몸 중심으로 버티기 때문에 이 사람은 현실을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현실을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5절에 보면,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완전히 하나님의 분노, 진노의 표현이죠. 찌직, 찌직, 뻔쩍, 뻔쩍, 뻔쩍 이게 뭡니까? “불안하지? 불안하지? 겁나지? 너희들 완전히 망가지지? 그래 이게 보좌안의 나의 뜻이야“ 이런 겁니다. 다시 말할게요. 이스라엘이 멸망하면 더 이상 다른 이방 민족은 볼 것도 없어요. ‘개‘이기 때문에.... 그럼 구원 받는 사람은 오직 목격자들 밖에 없습니다. 무슨 목격자? 이스라엘이 성전 지었다가, “얼레리, 꼴레리, 자기 믿는 하나님한테 멸망당했다. 하고 이렇게 놀릴 때 그 때 하나님이 그것을 의도 했어요. 너희 이방민족이 너희를 포로 잡을 때 비로소 이방인들이 여호와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구약 성경 보면 많이 나와요. 너희들이 멸망당할 때 ”나 여호와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일을 했다.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래도 너무 섭섭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런 식으로라도 우리가 몰랐던 현실이 나타난다면, 현실을 알았다는 그것만 해도, 우리는 온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 큰 것을 얻었어요. 아~~, 성경속이 그냥 동화책이 아니고, 드라마가 아니고 실제상황이구나.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이 실제 상황이듯이, 사도바울에게 예수님 나타나기 전에는 실제상황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나타나고 난 뒤에는 야, 이게 실제상황이구나.
-십자가마을 강남강의 "계시록5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