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계1:11-16)
7촛대는 7별이 관리합니다. 7별은 뭐냐? 교회 천사(사자)들입니다. 7촛대가 교회의 원본이고 7교회는 복사본입니다 7촛대 사이를 누가 돌아다니고 계시죠? 7촛대에 그 사이를 예수님이 돌아다니고 계십니다. 왜 돌아다니는 겁니까? 원본하고 복사본이 안 맞아요. 원본하고 복사본이 안 맞는 거에요. 교회 문제는 목회자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 문제는 7교회를 지장 없이 잘 관장하는 주님 문제지. 너희들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기존의 이땅에 있는 눈에 보이는 교회들이 할 일의 전부입니다. 왜 그러느냐하면 7촛대가 결국은 한 촛대로 모이게 되 있어요 .이걸 에베소서에서는 머리도 하나 요 몸도 하나 요 주도 하나요 7교회에 대해서 우리가 신경 쓸 필요가 없죠. 교회는 교회문제에요. 교회를 잊어버려야 해요. 교회 잊으라하니까 그렇다고 말씀은 잊으면 안 되고 .... 교회는 잊는 대신에 말씀을 생각하면 계1장 11절 12절 보니 말씀 생각하니 교회가 숨어있더라 어디? 보이지 않는 형태로 그 진짜 교회와 연결고리가 유지되고 있는 그러한 7교회가 하나밖에 없는 교회에 속한 지체들입니다.
“알파요 오메가 시작이요 나중이라” 하나님은 시작이요 나중이라. 예수님도 마찬가지고, 성경을 보게 되면 처음부터 결정됐어요. 인간 들어갈 틈이 없어요. 야곱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창세 전부터 사랑받기로 작정했고 에서는 미움 받기로 작정됐다. 성경은 두 가지죠. 첫 번째는 그게 성경에서 인간은 처음부터 죄라고 규정했으며 그것도 죄가 되는 겁니다. 두 번째 단순히 죄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그 죄로 인하여 메시야가 밀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두 증인이 수난 받는 그곳이 어떤 장소든지 십자가 주님이 못 박힌 장소가 되는 거에요. 그리고 골로세서 3장에 보면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다른 땅으로 이전해야 될 그런 신분자라는 겁니다. 어디가도 애굽이고 어디가도 십자가 죽는 장소라는 겁니다. 어디가 성지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 바로 예수님 계신 곳이 성지입니다 따로 성지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죠 요한계시록에 들어가면서 바로 이러한 개념의 확산을 알아야 해요. 정작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나아만은 내가 순종해서 문둥병 요단강 7번 왔다 갔다 한 것이 전혀 병 낫는데 아무런 보탬이 안 되었다는 것을 본인이 알아요. 본인이 압니다. 말씀이 온 것은 그 말씀을 통해서 너의 순종이 너에게 어떤 보탬과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에요. 우리에게 말씀을 준 것은 너는 낫게 되었기에 낫게 된 거에요. 언제부터?? 창세전부터... 창세전부터 문둥병 걸리게 되어 있고 낫게 되어 있는 거에요. 그게 알파와 오메가에요. 이미 시작할 때부터 중간에 틀어지는 것이 없어요. 이미 누구는 천국가게 되어 있고 누구는 지옥 가게 되어 있고 가룟 유다는 자살해야 되고 전부 다 들어 있어요. 이게 뭡니까?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 입을 자에게 긍휼을 주는 그런 방법으로만 구원되는 겁니다 . 그런데 무엇이 끼어드는가 하면 내 행위로 얻어내는 어떤 은혜, 내 행위로 바쳐서 받는 보상 그런 식으로 다 뒤바꾸는 거에요. 그 뒤바뀜의 현장에서 주님이 십자가 못 박힌 몸으로 등장하시는 겁니다. 인간아 니가 순종해서 구원 받는다고??... 내가 너같은 인간 때문에 피 흘려서 죽는다 근데 이 사실을 신약에 와도 사람들이 모르고 예수님 믿어서 구원 받는줄 알고 있어요. 예수님 믿어서 구원 받는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예수님 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는가 하는 것은 우리 믿음 없이도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에요. 십자가에서. 십자가 사건에서 성령이 주어지게 되면 아~~ 내 행함이 아니구나. 오직 주님의 피의 공로로 피 공로로만 구원 받는구나. 하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 인정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나에게서 나오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고 이미 완료된 믿음 그러니까 제 값을 하는 믿음, 효용이 충분히 나타나는 믿음은 수입을 해야 합니다. 그냥 공짜로 수입해서 온 믿음으로 봐 보니까 내가 믿어서 예수 믿는 믿음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거에요.. 그때부터 자기 예수 믿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피를 증거하는 거에요. 이걸 사람들이 몰라요. 몰라요.
7교회에서 우리도 바른 교회 되자고 해요 바른교회 돼서 구원 받는 사람 한사람도 없어요. 바른 교회는 우리 소관 아니에요. 바른 교회 될 필요 없습니다. 바른 교회는 이미 있어요. 그걸 믿으면 되어요. 바른 교회란 교회를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니고, 아! 우리 교회는 옳은 교회 아니구나 그걸 믿으면 바른 교회에요. 복음이 나오고 말씀이 나오기 때문에 복음 믿고 나오는 겁니다. 교회에 기대해서 나오는 거 아닙니다.
요한 계시록 2장 3장에서 책망 받는 일이 있거든 우리보고 책망하란 말이 아니라 책망 받는 일이 나타나야 한다는 거에요.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힘들게 일해서 자식 키우느라 애쓰는데 아버지는 놀음판에 가서 놀음만 하고 있는 거에요. 하나님 말씀대로 다들 된 거에요. 자꾸 고칠라 하니까 행함이 들어가는 거에요. 에베소 교회 첫 사랑 잊어버렸다. 그냥 잊어버려요. 잊어버려도 괜찮아요. 왜 담당교회는 원본 따로 있기 때문에 사본은 어째도 괜찮아요. 아~~ 그래서 교회가 아니구나. 그걸 알면 얼마나 속이 시원합니까?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것이니 우리교회 정신 차립시다. 정신 차릴 것 없어요. 주님만 있으면 족해요 .뭘 기대합니까? 좋은 교회 나와 보라 해요. 화평교회? 아이고 참!! 녹매교회? 녹차 매실교회? 우리교회? 허... 다들 집 갖고 계시죠? 교회가 교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여기 폭격 맞으면 집으로 모여라 하면 됩니다. 말씀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 두세 사람 있는 곳에 내가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빠져 버리면 뭐가 교회겠습니까. 주께서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주는데 여러분 정신을 엉뚱한 교회에 신경 써 버리면 주님조차 쫒겨 나는데 그 동네에서 주님도 배제당해요.
예수님 십자가 피 앞에서는 죄인밖에 없다는 거여요. 죄인밖에 없다는 말은 이 생생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그 질서, 그 계념, 그 언어적인 그 의미, 이런 것과는 별개의 질서와 언어와 개념이 통하는 딴 동네가 있다는 겁니다. 성경이라 하는 것은 영적 용어들이 인간들이 불신자들이 통할 수 있는 그런 용어들이 아니에요. 그들이 사용할 수 없는 용어와 개념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이걸 미셀 쿠프가 당론에서 인간의 명제와 문장을 뛰어넘는 음표가 나온다는 유명한 말 했는데...... 몰라도 돼요. 문제는 어두운 세계 통하는 질서 단어 따로 있고 영의 세계 통하는 단어와 개념이 따로 있어요. 그걸 역사적 해석 가지고는 해석이 되지를 않습니다. 나아만 장군 같은 그러한 이야기가 도저히 해석이 안돼요.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맺힐 때가 안됐는데도 예수님께서 저주했죠? 아직 열매 때가 안돼서 열매가 없는데 착한 억울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면.... 그러면 성경 전체 해석을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간단하죠.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저주 할 자에게 저주하는 소관은 누구한테 있다? 나 예수에게 있다는 것을 그걸 니가 믿느냐? 베드로 하는 말이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버리지 않는다고? 모든 환경(어두움)이 베드로 너로 하여금 네 힘으로 예수 믿을 수가 없게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줄게. 해서 베드로로 하여금 저주하도록.. 이것이 매일같이 일상생활처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어날 때 그런 식으로 그럭저럭 살아가서 그 세계에 푹 빠질 수 밖에 없는 우리라는 것을 교회 다니면서 말씀 보면서 확인하시고 확인해 주세요. 내 힘으로는 구원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구원 안 되는 나를 도대체 왜 어떻게 구원 받았습니까 “피” 어린양의 피“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때부터는 자기를 위해 살려고 하지 않고 나를 위해 죽었던 예수 그리스도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죠. 될려고 하면, 그로부터 내가 하고자하는 그것과 주님께서 주의 증인되게 하시는 간격, 차이를 날마다 확인케 하는 겁니다. 내가 열심히 주의 증인되려고 하는 옛날에 받았던 은혜로 몇일 버터 보려는 시도와 그것마저 죄로 규정하고 새롭게 주신 자비와 용서가 네 노력과 어느 것이 더 생생한 현실인지 어느 것이 주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더 확실히 느끼는 것인지 날이 갈수록 깨닫게 하는 겁니다. 교회가 정 없다싶어 집에서 모여 예배드릴 때 치매 걸린 똥오줌 싸고 벽에 바르는 시어머니 계시면 냄새 맡고 예배드려야 하잖아요. 그 치매 걸린 시어머니라는 생생한 현실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집까지 찾아와서 교회라고 인정해주시는 교인들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생생하게 살아계심 그 가운데서 날아가 버린 것은 우리의 영광과 자존심입니다.
-십자가마을 강남강의 "계시록3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