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번
개혁노회 개회설교
누가복음 16:29-31
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 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 대목은 거지 나사로가 천국에 가고 난 뒤에 지옥 간 부자와 아브라함과의 대화한 것이 이 대목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약간의 충격을 주는 것은 어떤 사실이야 하면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으면 사람들은 대다수가 아, 천국과 지옥이 있구나. 정신 차려야 되겠다. 이렇게 쇼크를 먹고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걸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천국에 가있는 아브라함의 생각은 그게 아니에요.
그게 뭐냐 하면은 비록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 할지라도 지금 우리가 펼쳐놓은 이 성경말씀을 권함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비록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도 동일한 정신상태에서 그 사람의 전하고 있는 모든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거부할 것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얼 이야기해 주느냐 하면은 지금 우리가 전하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목회자들이 목회가 잘 안된다, 부흥이 안 된다 싶으면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가지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이런 것 하면 좀 사람들이 많이 모일 텐데 이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비록 얼마 전에 죽은 할아버지가 살아나시고 한다 할지라도 그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매주하는 설교, 복음전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방법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덤덤하게 아무 가망 없이 정기적으로 하나의 의식처럼 치러내는 설교가 하나님 보시는 바로 그 무미건조한 방법을 사용해서 천국 갈 사람과 지옥 살 사람을 구분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이 복음에 대해서 전파하고, 복음을 연구하고, 성경 연구하는 게 우리 인간들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뭐 시시한 일로 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사활을 거는, 최종적으로 제일 중요한 일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말씀 더 드리고 싶은 것은 그러면 그렇게 설교를 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그 마음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
여기에 놀라운 것이 있는데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을 때 나사로가 이 세상의 변화에, 이 세상의 어떤 흐름의 경제사정에 대해서 겁을 내겠습니까? 이미 천국 가서 맛을 봤고, 천국이 있다는 것을 자기가 몸소 경험하고 난 뒤에 다시 잠시 잠깐 이 세상에 도로 귀환한 거지 나사로가 만약에 천국이 있더라, 난 직접 보았어, 난 가봤어, 난 하나님 허락 하에 다시 잠깐 온 거야. 라고 하는 사람이 만약에 주위에서 잠깐 검문이 있겠습니다. 뭐 이렇게 한다든지, 아이고, 경제사정이 나쁜데 어떻게 하면 좋아 라든지, 저 인도네시아의 쓰나미가 일어가지고 수천 명 죽었다든지, 어디 911 사태에서 빌딩이 무너졌다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 깜짝깜짝 놀라겠습니까? 그거요, 시시한거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렇게 이야기할 게 분명하다 말이죠.
그렇다면 오늘 본문대로 한다면 적어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마음태도가 어떠해야 하느냐 하면은 죽었던 나사로가 천국 갔다가 천국의 맛을 진짜로 보고 진짜로 잠시 귀환한, 그 잠시가 80년, 90년 되지만 잠시 귀환한 그 심정, 그 마음가짐 그대로 강단에 서야 됩니다. 강단에 서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들 이름을 지워버리고 김 나사로, 최 같으면 최 나사로로 이름을 바꿔야 돼요. 앞에다가 더 붙인다면 호는 거지. 거지 김 나사로, 거지 최 나사로로 바꿔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마음 상태가 되면 봉급을 얼마나 받는가, 교인수가 몇 명이냐, 친척들이 날 안 알아준다, 이런 쓸데없는 것들에 대해서 그게 급선무가 아니거든요. 오히려 이렇게 돼요. 사도 바울처럼 주님, 이 일 그만 하고 싶은데 빨리 안 불러 주십니까? 뭐 해봐야 뭐 안 믿는데 뭐. 내가 다시 살아났다고 해도 안 믿는데 뭐. 그냥 편히 쉬도록 다시 원상복귀 시켜주십시오. 오히려 죽기를 소망하는, 사모님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죽기를 소망하는 가운데 싫으면 말고 뭐. 안 믿으면 어떻겠어. 안 믿겠다는데 뭐. 나사로가 와도 안 믿겠다는 사람인데 이 말씀 전해도 안 믿는데 뭐. 어떡하란 말이야. 그러한 자유분방함이 우리에게 넉넉함이 있어야 될 줄 압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복음을 방해하는 자가 외부라고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이 살고 싶어 살고자 하고 떵떵거리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심이 진짜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천명과 사명을 방해하고 가리는 나쁜, 악한 사람으로서 살아왔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산 것처럼 이제는 이 세상에 연연하지 말고 미련두지 말고 이 복음이야말로 죽은 자도 살린다는 사실을 이제는 확신 가운데 전할 수 있는 저희들, 노회원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