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이 돌 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욥38;25-30)
ⓐ주님이라는 결승점이 자기에게로 달려옵니다. 달려들 때 칭찬하려고 만나시는 것이 아니에요. 달려들 때 하나님은 분노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화를 내십니다. 화를 내시는 이유가 그래야만 우리가 그 앞에서 자기 부정이 되고 자기 부인이 됩니다. ‘아, 나는 저 이슬만큼도 못하고 저 얼음덩어리보다 못하구나’라고. 하나님은 얼음덩어리 그 자체로 하나님께 충분한데 인간은 하나님이 충분하냐가 관심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내 욕망에 맞췄느냐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자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얼굴 찡그리고 화내고 있고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사람 없는 황무지에 비를 내리는 이유를 네가 아느냐”라고 나와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나에게서 내가 없는 거예요. 나는 존재로만 있지 인격으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다른 황무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모든 게 인간들은 나 있음을 거기에 넣고 이해하고 해석해요. 자기 영광만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이쁜 돌멩이도 주께 영광이 되고 못생긴 돌멩이도 주께 영광이 되는 거예요. 얼마나 인간이 중간에 끼어든다는 것이 위험한 짓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해요.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자기를 겨누는 무기가 된다니까요. 자기를 찌르는 무기가 돼요. 분명히 성경은 땅이고 비고 이 모든 자연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선물이 인격화된다는 거예요. 인격적인 분과 연루되어 있다는 거예요. 땅, 해, 달, 별, 모든 것이 예수그리스도 한 분과 연관이 되어 있는데 인간만큼은 이것이 잘렸어요. 해와 달과 별이 전부 다 주님께 쏠려야 하는 관계망이 자기에게 도달해서 거기에서 멈춰버렸어요. 그래놓고 하는 말이 하나님 말씀대로 했는데 왜 인생이 이렇게 난장판이냐는 이런 식이에요.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에게 구멍을 뚫고 주님과 연관되게 우리로 하여금 종이 되고 백성이 되고 신부가 되게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내가 주인공인 이 자리가 주님 앞에 뺏겨야 합니다. 뺏기는 이것을 가지고, 뺏기고 다시 주는 이걸 ‘창조’라고 하는 겁니다. 그동안 인간은 마귀에 속아서 창조를 훼방하고 방해하고 존재가 되었어요. 하나님이 직접 아비가 되셔서 얼음을 만드셨어요. 별도 그렇고 해도 그렇고. 그런데 인간은 이미 범죄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아비 됨을 인간 쪽에서 거부합니다. 마지막 도착지점을 하나님이 아니고 본인에게 도착지점을 해놓으니까 본인이 본인을 제거하고 없앨 수가 없어요. 모든 것이 원래 하나님 것인데 인간들은 뭐냐 하면 일본이 와서 ‘내 땅이다’라고 하고 조선사람들은 ‘빼앗겼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 땅이 원래 주인이 있어요. 하나님 땅이에요. 하나님 땅이기 때문에 봄이 오는 겁니다. 봄은 인간 좋아라고 오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 좋아라고 봄이 오고 여름 오고 가을 오고 겨울 오는 겁니다. 이 몸을 빼앗겨야 한다고요. 빼앗겨서 내 몸이 아니고 주님의 몸이 되도록 빼앗겨야 해요. 빼앗길 때 그냥 오는 것이 아니고 강제로 와서 주께서 찾아오시면 분노 가운데 오시는데 십자가가 분노고 하나님의 저주 아닙니까. 그 저주 앞에서 내가 이 육신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홀라당 다 빼앗겨야 하고 부정이 되어야 해요. 수동적 존재예요. 우리는 빼앗기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내 것은 없다고 하면 되는 거예요. 모든 주어진 것이 수동적이에요. 수동적이기 때문에 주님이 자기 것을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겁니다. 내가 도외시 되는 체험.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 내가 전혀 한 것이 없이 일어난 일 같은 거. 최고의 체험입니다. 예를 들면 차 사고 같은 거. 나는 분명히 잠깐 한눈팔았는데 차에 뭐가 떨어져서 좀 집으려고 하는데 차가 와서 박아버릴 때 물론 세상적으로 보면 전방 주시하지 않은 나의 실수지만 내 입장에서는 또다시 질문을 바꾸는 거예요. 왜 전방주시를 안 했을까. 그건 네가 옆에 물건 줍는다고. 왜 옆에 물건이 떨어져 있을까. 따져 보게 되면 결론은 나옵니다. 어쩔 수가 없다. 내가 관여하지 않은 사태가 내가 관여한 사태보다 훨씬 많이 있고 그것이 뭉쳐져서 오늘날 내가 되었다는 겁니다. 내가 손댈 수 없는 것들이 모여들어서 오늘날 내가 된 거예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을 세자로 줄이면 막산다. 막산다는 의미는 뒤돌아봐서 붙인 해석이 되어야 해요. 내가 막살게 되면 너무 위험하고 너무 모험적이어서 내가 말려요. 내가. 주님이 막살라고 해도 내가 막 안 살아요. 왜?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그러나 뒤돌아보면 전부 다 내 맘대로 막 산 거고 주님은 주님대로 막 산 거예요. 어떤 것 하나 내 맘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사람 없는 황무지를 이해하려면 이것의 반대말이 뭐냐 하면 ‘필라테스’입니다. 필라테스는 자기 몸짱 만드는 운동이거든요. 필라테스 하려면 자기 괜찮은 몸만들기에 본인이 흥미가 있어야 해요. 사람 없는 황무지를 왜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느냐면 흥미가 없어서 그래요. 흥미가 없어서 그래요. 인간은 흥미대로 살아갑니다. 기분 따라 살아가고 흥미대로 살아가요. 그런데 주님은 이상스럽게 우리가 흥미 있는 것은 이야기 안 하고 흥미 없는 것을 가지고 들이대요. 그게 뭐냐 하면 십자가예요. 사람이 자기에게 관심 두면서. 사람은 내가 없는 곳, 사람 없는 곳에 흥미를 두지 않습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주님의 일과 우리 일이 서로 상관없이 가고 있는지요. 따라서 주님께서는 사람 없는 이 상태를 사람 없이 이루어졌다는 식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제시합니다. 어떤 자리든 사람 없이 교인 없이 교회가 되고 교회로 모였음을 주께서 만드시는 거예요. 모델이 주님으로부터 직접 세워졌다고 보지 않고 다른 자기가 잘 되는 것에 신경을 써요. 최고의 짐승의 나라들은 항상 빼앗고 갖는 거예요. 우리는 태어나면서 세상에서 그걸 배운 겁니다. 그래서 항상 내 것은 없느냐고 따지는 거예요. 그러나 주님의 뜻은 “사람 없는 황무지에 비가 내리는 이유를 네가 아느냐”라고 하시며 네가 지금 세상에서 가는 방향이 너무나도 하나님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인간의 힘이 결국은 자기를 찌른다는 것을, 이 세상 나라는 주의 나라가 아니라고 하시는 것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 백성, 종, 주님의 신부, 이것은 주께서 지금 하게 하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