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겨울수련회 여호수아강해 제 8강 붙이시는 전쟁-이 근호 목사
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에 초대받지 않은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온 집안 식구를 다 속이고 어떤 사람이 들어왔을 때에 현재 있는 식구들이 자비를 베풀어가지고, “그래, 그래 불쌍하다. 먹고 살려고 얼마나 애썼으면 자기 자신의 신분조차 속이고 들어왔겠는가. 앞으로 다시는 그런 거짓말 하지 마라.” 나무라고 그 친구를 이렇게 받아주는 거예요. 여기서 이제 유명한 문장이 나옵니다. 머리 검은 짐승은 받아주는 게 아니라는 거. 사람은 받아주는 게 아니고, 근본이 없는 것은 받아주면 안 된다는 거죠. 근본이 없는 것들은. 어디서 상고출신이 재벌3세하고 결혼해? 이게 말이 안 돼요. 뿌리도 근본도 없는 것들이. 복수하려고 해가지고 의사 하나 낳아가지고 들어와서 완전히 재벌을 뒤엎으려고. 제가 지금 드라마이야기 하는 겁니다. 수애 나오는 드라마 있잖아요.
기브온을 이렇게, “그래. 그래 불쌍하다. 살아. 살아. 네가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속였겠는가. 우리가 뭐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경솔하게 했다마는, 네가 한 잘못은 우리가 주님께 묻지 않았던 우리 잘못도 있기 때문에 받아줄게.” 왜냐하면 하나님께 맹세했거든요. 자, 맹세하는 게 뭐냐, 출애굽기에도 나왔지만 맹세라는 것은 주님의 땅을, 주님이 주인공 됨을, 주인공임을 인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친구가 왔는데, 내 친구가 왔더라도 일단 내 집에 들어오면 이거는 누구에게 속했느냐, 아버지한테 통치 받아야 되는 것처럼. 우리가 아버지한테 물어보지 않고 경솔하게 받아들였더라도 우리와 아버지 사이의 이 땅은 주님이 언약대로 통치한다는 그 통치의 능력이, 통치의 활동이 계속 유지될 수 있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대하고 원했던 겁니다.
근데 이 기브온이 들어옴으로써, 이 기브온이 원래 속했던 이 히위족속 이쪽에서 배신했다는 소문이 들리니까 이쪽의 왕들이 기브온을 쳐들어왔어요. “너 우리 허락받지 않고 배신 때려서 적에 붙었는가? 너 좀 손봐야 되겠다.” 그래서 여호수아 10장 5절에 보면 다섯 왕이 화친한 기브온을 대적하여 싸울 때에 이제 더 이상 기브온은 5대1로 혼자 붙는 게 아니에요. 어디에 속했습니까? 이스라엘로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있기 때문에 기브온은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냥 불쌍하다고 받아줬는데 이게 나중에 보니까 이게 학폭이라. 일진. 해가지고 그쪽에서 놀던 동네에서 복수한다고 왔을 때에 누가 지켜줘야 해요? 뭣도 모르고 일진을 받아준 이쪽에서 지켜줘야죠.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 전쟁에 누구도 여기에 협조하느냐 하면은, 협조정도가 아니죠. 여기에 자연현상도 동원됩니다. 여호수아 10장 6절에서 7절, 거기에 갓지파 르우벤지파 므낫세1/2지파, 반지파라고 해요. 1/2지파. 이들이 먼저 나서요. 이들이 먼저 나서는데 이거는 여호수아 4장 12절에 보면 이게 나와 있어요. 4장 12절에. 이 점을 우선 언급해드리겠습니다. 4장 12절에 보면 제일 먼저 앞장선 선봉부대가 누구냐 하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지파가 선봉장에 나섭니다.
이것은 땅은 내가 원한다고 그냥 주어지지는 못하고, 네가 먼저 전쟁에 나서서 이 전쟁에 합류하게 되면 그제야 땅 분배는 이거는 나중에 네가 얻게 될 것이다. 땅에서 사는 것보다 여호와의 붙이시는 전쟁이 더 우선되는 거예요. 천국 탐내지 말고 주께서 지금 붙이시는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주의 뜻이다 이 말이죠. 다시 10장에 들어와서, 어디서 굴러온 기브온 때문에 여기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그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개입하느냐. 그들이 히위자손도 있고 아모리 자손도 있는데. 10장 12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기 붙이시는 것이 또 나오죠. 붙이시는 것. 10장 30절에도 붙이시는 전쟁이 또 나와요. “여호와께서 또 그 성읍과 그 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이게 중부전쟁에서 남부전쟁으로 가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막게다라는 게 있죠. 막게다. 이쪽이 나중에 다섯 왕들이 사이좋게 옹기종기 동굴에 숨어있게 되는 겁니다. 이 전쟁이 지도에 나와 있을 거예요.
지도 몇 페이지냐 하면은 105페이지 왼쪽에 있는 지도에요. 남부전투. 벧호른, 아랫 벧호른해서 아세가 그 다음에 막게다. 전부 다 이 경로가 아모리 다섯 성읍이 기브온을 공격하면서, 아모리 다섯 왕이 기브온을 공격하면서 전투 경로가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에 대해서 인정하시고 붙여주셨습니다. 붙여주셨는데 어디까지 붙여주셨는가 하면은, 여호수아 10장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맨 같은 골짜기에요.
13절,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야살의 책은 영웅들이 기록된 영웅집이에요. 이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후대 이스라엘이 영웅집에다가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14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라고 되어 있어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울 때에 여기에 뭐가 동원되느냐 하면은, 태양이 동원됩니다. 태양이. 이게 물리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안 돼요. 물리적으로서는 수소원자(H2)가 헬륨(He)으로 전환되면서 여기서 에너지가 나와서, 그 에너지를 활용해서 계속해서 불타고 있는 것이 바로 태양의 활동의 근거라고 과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방금 설명할 때에 여호수아는 여기에 안 들어갑니다. 여호수아가 들어가지를 않아요. 태양의 참전, 이게 말이 됩니까? 태양이 왜 인간들 하는 데에 왜 끼어듭니까?
남들 보기에는 인간들 전쟁인데 이게 무슨 전쟁입니까? 여호와의 전쟁이에요. 그럼 여호와는 어떤 하나님이냐 하면은, 여기에 뭐가 있느냐, 언약과 관련되어 있는, 언약을 앞장세워서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잖아요. 그러면 중천에 있는 태양, 달, 별, 이 모든 것들이, 이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의 군대가 되고 소속부대원이 되는 거예요. 소속부대원. 정말 참 신기한 일이죠. 이 태양과 별이 소속부대원이 된다는 말은 언약 안에 점선으로 나타내면, 희미하나마 이게 천지창조를 하신 그 중심되시는 분이 거기 계시거든요. 태양, 바다, 이런 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천지라고 해요. 천지.
그러면 천지라면, 하늘과 땅이라면 여기 계신 분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천지의 주재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천지의 주재. 주인공. 주재. 이게 바로 다니엘 9장에 나와요. 다니엘 전쟁에 이게 나와요. 이 다니엘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막장전쟁이에요. 끝까지 가는 전쟁. 이 세상나라가 망하느냐, 아니면 이 세상나라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예수님께서, 천지의 주재이신 예수님께서 아주 이 세상나라를 멸망시키느냐, 그게 다니엘 9장에 보면 나오거든요. 뭐 헬라 이쪽 동네, 아래쪽 동네 왔다 갔다 하면서 전쟁을 하는데, 그 다니엘 9장에서 전쟁을 하는 이유가 너희들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자를 건드렸다는 거예요.
뭘 건드렸느냐, 하나님의 성전을 건드린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이 하늘에 있는 줄 알았더니만 그 언약이 어디까지 연결되느냐 하면은 땅에 이스라엘과 이렇게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땅에 이스라엘을 건드리면 이거는 온 천하의 모든 피조물들이 5분대기조, 비상대기에 들어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 말씀만 이해한다면, ‘아하! 그런 차원이었어. 그런 뜻이었어.’라고 대번에 여러분들이 알 거예요.
골로새서 1장 16절에 “만물이” 천지의 모든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절,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래 되어 있어요. 만물의 핵심부위가 있고 만물의 중심축이 있다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그분, 어떤 인간적인 모습, 이걸 하늘에 있는 인자라고 하는데. 하늘에 계신 인자 같이 보이는 분이 나중에 땅에 오면 인자가 되거든요. 땅에 오신 예수님이 먼저 하나님 우편에서 영원히 함께 계셔서,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계셨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 사이에 뭐가 끼어 있느냐, 천지가 다 끼어있는 거죠. 하늘에 계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천지를 창조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위해서. 그러면 이스라엘에 뭐가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는 성전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건드린 것은,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이 계신 곳을 건드렸기 때문에 위에 있는 하나님께서 반응을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어이! 해 동원해라. 전부 다 동원해라.” 그렇게 되는 거예요. 여호수아가 기도한 것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은 언약대로 하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도 언약의 요소를 적용시켜주시옵소서. 그 언약이라는 시스템을 가동되게 하옵소서.” 그 붙여주는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원하는 전쟁이 아니고, 붙여주는데, 뭐냐 하면은 “언약이 언약대로 현존하고 있고, 언약대로 움직이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전쟁에 이스라엘이 가담되었음을 하나님이 나타내주옵소서.”
할 때에, 여기에 태양까지 동원될 줄은 그 당시 여호수아는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랐죠. 왜냐 하면은 이방민족은 모르죠. 태양을 동원했다는 말은 요단강, 홍해가 갈라졌을 때 전부 다 여기에 누가 동원됐다? 하나님의 언약이 동원된 거예요. 철저하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보호한 겁니다. 보호하다보니까 이스라엘을 보호해야 되고. 그래서 이스라엘아! 네가 내 이름을 버리면 너는 보호받지 못한다. 그게 아까 이야기한 다른 신을 섬기면 너희는 보호받지 못한다. 너희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만든 나라기 때문에 내 신을 버리면 더 이상 나의 보호대상이 아니다. 뭘 보고 보호해줘요? “하나님 나를 지켜주옵소서.” 하면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이래 되거든요.
자, 그 다음에 문제가, 이게 전쟁이라 이 말이죠. 전쟁. 전쟁 중입니다. 전쟁의 성과는 여호와 이름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어요. 왜? 붙여주는 전쟁이니까.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하나님이 붙여주는 전쟁이기 때문에. 그러면 이 태양에 대해서 전쟁 없이 평소에 심심풀이 땅콩으로 여호수아가 “태양아! 너 좀 약간 5분만 멈춰줄래.”라고 하면 멈추어줍니까?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이래 하면서 멈춰줘요?
여기 여호수아 10장 12절에,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여기 또 태양뿐만 아니고 뭐도 동원이 됩니까?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에, 대통령이 지나가게 되면 모든 거리의 신호등을 경찰이 와서 조종하죠. 신호코스가. 대통령이 지나갈 때 전부 다 빨간불이 아니고 파란불로 가게 되어있어요. 만약에 빨간불로 대통령이 서있으면 총 해가지고 킬러들이 와서 쏘기 때문에, 후딱 지나가기 때문에 그냥 파란불로, 파란불로 계속 가야 돼요.
그러니까 이거는 태양이나 달, 그리고 여호수아, 이스라엘, 이 피조물들이 전부 다 같은 시스템에, 같은 총무과 직원들이에요. 총무과라든지 뭐 자재과의 직원들처럼. 같은 처지에 있는 거예요. 세상의 움직임과 성도의 움직임이 함께 돌아가는 겁니다. 누굴 위하여? 이스라엘, 성도를 위해서? 아니에요. 주님을 위하여.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은 다 주의 것이고. 세상은 성도를 위해서 있는 것이고. 세상은 자재과 직원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자재과 직원은 회사를 위해서 있는 것이고, 회사는 사장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사장은 사장 위에 회장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세상은 이렇게 층층이 구조적으로 있는 거예요. 구조적으로.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택한 백성만 건질 뿐이고요.
그거 참, 여호수아의 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뭘 느끼느냐 하면은,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했다고 하면 굉장히 수월하게 일이 되는 것 같지만 그 현장에서, 현장에서 여호수아가 느끼는, 자기를 믿지 않아야 된다는 그 갈등.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하는 거기서 나오는 그 갈등. 이스라엘 백성은, 그거는 정말 인간의 능력을, 한계를 초월합니다. 태양하고 해보고 명령을 내릴 정도 같으면 이거는 배포가 센지 아니면 미친것인지. 이거는 상상이 안 가잖아요.
그리고 이것이 여호수아의 어떤 노림수가 아니라는 것은 두 번 다시 그 이후에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런 일을 두 번 다시 허락하지 않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여호와를 있는 것이지 여호수아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이제 붙이시는 전쟁을 이제는 다 했습니다. 다하고 나서 이 전쟁에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가 선봉장으로 나섰다고 했죠. 항상 전쟁에 한번 선봉장으로 나서면 계속해서 선봉장으로 나서게 되어 있거든요. 그렇게 해서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은 재산논쟁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여기 여호수아 22장에서 너희들 전쟁한다고 고생했으니까 너희들 땅 가지고 가라고 해서 땅이, 지도에 보면 여기 혹처럼 튀어나온 땅이 있죠. 제일 밑에부터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 지도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전체 지도는 그 뒤 107페이지 보면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 이렇게 해가지고, 동쪽 므낫세라고 하거든요. 반지파니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07페이지 지도에 보면. 원래는 민수기에 보게 되면 이 땅을 안 주게 되어 있어요. 어쨌든 간에 전쟁의 여파로 땅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에, 자, 어떤 문제가 벌어지느냐 하면은 이 동쪽 땅은 얼마 안가서 이게 이방민족이 와서 차지하고 말아요. 이 땅이.
그러니까 지금 정복했을 때 그 당시의 땅과 이게 좀 세월 지나면 이 땅이 전부 다 사실은 사사기에 오면 이게 엉망진창이 됩니다. 이방민족이 많이 침투하고 차지하고 이렇게 돼요. 그것은 땅에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언약 안에 들어온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땅이 어떻게 되든 이스라엘 역사는 흐른다. 언약은 흐르는 거예요. 우리의 생활형편이 어렵고 좋고 거기에 너무 구애받지 마시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난 뒤에, 땅이 정복되고 난 뒤에, 여기 드디어 14장에서 갈렙부터 먼저 땅을 달라고 이야기를 했고요. 여분네의 아들 갈렙.
여호수아 14장 13절,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갈렙부터 먼저 줍니다. 그거는 첫째시간에 이야기했죠. 갈렙과 레위지파 이야기할 때. 여러분 기억나십니까? 선 스펙트럼line spectrum 어떤 분광기에서 스펙트럼을 할 때 뭔가 빠진 요소가 있다는 거예요. 빠진 요소를 통해서 그 원소의 성질이 분명히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상어가 다녀가면 물고기만 빠지고 나머지 채소는 남아있듯이.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은 이 빠진 요소, 땅에 구애받지 않는 지파, 이게 무슨 지파죠? 레위지파죠.
레위지파가 땅이 없어도 되는데, 땅이 없어야 마땅함을 유지하면서 땅을 각지파속에 집어넣어요. 총 지파에 48성읍. 거기서 얻은 성읍이 몇 개냐 하면은 48성읍. 그 모든 지파에 다 들어있습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 13개. 그 다음 에브라임, 단, 므낫세 반지파에 10개. 잇사갈, 아셀, 납달리 거기에 13개. 그 다음에 스불론, 르우벤, 갓지파에 12개. 여기서 합해서 48개에 레위지파가 마치 지부를 두듯이, 파견근무 하듯이 그들이 여기에 속해버립니다. 그러니까 레위지파가 있다면 여기는 자기의 상속분인 땅이 있겠죠. 이 땅의 유지는 레위지파의 활동이 유지가 되면 땅이 유지가 되고. 레위지파가 무의미하게 되면 같이 무의미하게 되는 거예요. 레위지파가.
그래서 레위지파의 땅 분배가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은, 여호수아 21장에 나오는데, 땅을 분배할 때 제비를 뽑습니다. 뽑는다는 것은 창세기 끝부분에 보면 누가 예언하고 있어요.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열두 지파에게 예언하죠. 열두 지파의 운명은 예언이 먼저 되고 운명은 뒤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신명기 끝에 봐도, 거기 신명기 33장에 보면 각 지파마다 하나님께서 예언을 했죠. 그래서 신명기에 나오는 모세의 예언은, 창세기에는 야곱의 예언, 열두 지파가 형성된 이후에 야곱의 예언에 따라서 신명기 모세의 예언이 주어집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이스라엘은 땅에 사는 자들이 아니고 예언 위에 사는 자. 예언과 더불어 사는 자. 땅에서 예언 나올 때 이거는 뽑기. 제비뽑기. 땅에서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여망이지만, 그 여망을 사정없이 허물어버리고, 땅에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예언 안에 들어오라고 하면서 뭘 하느냐 하면은 뽑기를 하는 거예요.
이 뽑기를 하게 되면 이거는 그냥 감사하다가 아니라, 감사하다도 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자기가 기거하는 땅에서 마음껏 그것을 증거 해야 된다 이 말이죠. 크레파스가 빨강색, 파랑색, 노랑색 있지만, 열두 가지 색이 있지만, 나는 노랑색이 좋아. 노랑색이 노랑색을 좋아할 수는 없어요. 파랑색이 있는데 나는 녹색이 좋다고 이렇게 시큰둥하고 남의 것을 탐내면 안 돼요.
전부 다 하나는 뽑기에 의해서 노랑색, 파랑색, 빨강색... 자기 위치에 그냥 색깔대로 있어야 하나의 왕자표 크레파스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열두 지파라고 하는 것은 서로서로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바탕에 바로 레위지파의 정신이 녹아져있는 거예요. 레위지파가. 땅이 없는 자가 우리의 땅을 있게 했다. 따라서 우리는 땅 있음을 있음으로 생각하지 말고 없는 쪽이 하나님과 매치되어 있는, 연결되어 있는 쪽이 땅이 없는 쪽에서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이 없잖아요. 예수님이 땅에 머리 둘 곳이 없다면,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성도들도 머리 둘 곳이 없습니다. 뭐 잠시 120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뭐 잠시 살고 있지만, 여러분이 머리 둘 곳은 아니에요. 여러분이 사는 그것을 여러분들이 땅에서 산다고 하지 마시고 예언 위에 산다고 생각하세요. 오늘 밤 잘 때에 예언 위에 이불 펴고 예언 또는 말씀이라고, 복음이라고 이불위에다가 적든지 해놓고 그 위에 누워 자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집에 사는 것은 주의 제비뽑기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니까. 제비뽑기해서 이럴 수가 있어요. 비가 샌다든지. 그리고 영하 10도에 수도가 터질 수가 있어요. 그리고 제비뽑기한 집에서 담배를 피운다든지. 위층에서 애들이 떠들 수가 있어요. 그거 할 수 없어요. 제비뽑은 게 그게 내 운명인데요. 그러면 가가지고 떠들지 말라고 싸움하는 그것도 예언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냥 내 맘대로 사세요. 할 수 없어요. 어쩔 수 없어요.
제비뽑기뿐만 아니고, 그 다음에 뭐냐, 레위지파 중에서도 6개 도피성을 또 정해놨습니다. 도피성이라서 이것은 제사장이 있는 곳이에요. 도피성. 동쪽에 3군데 서쪽에 3군데 이렇게 해가지고 흩어지게 되어 있는데. 이 도피성은 억울하게 살인누명을 뒤집어쓴 사람이 피하는 곳이에요. 억울하게. 억울하게 살인누명을 뒤집어쓰니까 이거는 살인자죠. 살인자는 율법에 의하면 뭡니까? 율법에 의하면 죽어 마땅하죠. 살인자는 죽어 마땅합니다. 죽어 마땅함을 율법 내부에서 이것이 안 죽어도 되는 존재로 전환시키는 장치가 도피성이에요.
죽어 마땅함, 남을 죽였으니까 죽어 마땅함이 “죽이면 안 돼! 죽이는 것이 율법의 위반이야!”라고 집어넣으려면, 여기에 누구 존재가 필요 하느냐 하면은 제사장 존재가 필요합니다. 제사장과 함께 있으면 친족들의 복수에서 면제가 될 수가 있어요. 안 죽인 사람이 될 수가 있어요. 제사장이 살아 있을 때 도피성에 들어가서 하는 거예요. 이러한 특별한 공간을 마련한 이유가 뭐냐, 이스라엘을 움직이는 것은 율법이지, 땅을 소유했다고 해서 이스라엘에게 일이 끝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자, 그 다음에 땅을 분배를 할 때 제일 먼저 분배를 하는 쪽이 유다지파입니다. 유다지파 먼저 분배하고. 그 다음에 요셉지파 분배하고. 요셉지파가 나누어지거든요. 에브라임지파 므낫세 반지파 분배하고. 베냐민 지파 분배하고 나머지기 6개는 네 맘대로 이래 돼요. 나머지기 6개는. 3개는 이미 가져갔잖아요. 르우벤지파 갓지파 므낫세 반지파. 이 3개 지파는 이미 가져갔죠. 가져가고 나머지기 이쪽에서는 제일 먼저 유다지파하고 요셉지파한테 가요. 이 유다지파 요셉지파는 야곱의 예언에 의하면 이게 투톱이에요. 축구에서 기둥같이 투톱이 되는 겁니다. 쌍벽이에요. 누가 이스라엘의 장차 지도자가 나올지는 둘 다를 몰라요.
제일 먼저 지도자로 나선 것이 뭐냐 요셉지파에요. 요셉지파. 요셉지파가 나서서 그 다음에 요셉지파가 뭐로 바뀌느냐 유다지파로 바뀌죠. 요셉지파가 제일 먼저 나서기 때문에 땅이 제일 넓은 곳이 뭐냐,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지파. 동쪽, 서쪽.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요셉의 손자가든요. 손자 그들이 하나님의 상속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지파가 나중에 뭐가 되느냐 하면은 이스라엘이 될 때, 이게 나누어질 때 북이스라엘이 돼요. 북이스라엘부터 먼저 망합니다. B.C722년에. 망하고 난 뒤에 그 다음에 남쪽 유다지파는 B.C586년에 망해버리죠. 둘 다 망해버리는 겁니다.
둘 다 이렇게 망함으로 말미암아, 망하는 이것도 신명기에 보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망했는데,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은 새로운 차원을 맞이하게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면서, 그냥 혼자 망한 것이 아니고, 다니엘 9장에 보면 이방민족이, 그냥 이방민족이 아니고 마지막 이방민족 그들이, 결국은 최후의 전쟁은 이방민족과, 이방민족하지 말고 그냥 민족. 민족과 마지막 전쟁을 누가 하느냐 이스라엘과 하는 거예요. 근데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이방민족과 싸우지를 못하죠. 이방민족이 이게 와해되고 깨집니다.
와해되고 깨진다는 말은, 이스라엘 이것이 복숭아나 밤처럼 이게 딱 깨지면 그동안 이스라엘을 유지했던 하나님의 언약이, 단단한 구조가 나오죠. 이스라엘을 하찮게 봐가지고 공격하게 되면 누굴 건드리느냐 하면은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되게 했던 언약의 하나님을 건드리는 방식을 하나님이 사용합니다. 이스라엘의 메시야, 이스라엘의 왕을 건드린 게 돼요. 나중에는. 인자를. 그게 다니엘 전쟁에 보면 그 방식대로 줄곧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 여호수아 15장에 보면 유다지파가 먼저 받죠. 유다지파가 먼저 받습니다. 여기에 15장 8절에 보면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유다지파 예루살렘의 근처에 있어요. 예루살렘이 약간 남쪽에 있는데. 여기서 뭐가 유명 하느냐 하면은 이게 우상이 유명하고요. 그 우상을 불태우는 데로 유명해요. 이게 뭐냐 지옥이에요. 게헨나. 지금 여호와 당시에는 이럴 줄 몰랐죠. 그 유다지파 그 한복판에서 지옥이 출현할 줄은, 지옥이라는 지옥의 표상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죠. 가장 사랑을 받은 유다 안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가 이어진다는 것. 나중에 보면 이 장소가 철저하게 우상들의 집합소가 됩니다. 이름도 기분 나쁘잖아요. 힌놈의 골짜기. 외우기도 쉬워요. 힌놈의 골짜기.
이것은 땅을 가졌다고 해서 이게 하나님의 예언이 완료된 게 아니라는 것을. 왜냐하면 언약은 예수님이 올 때까지 변천과정을 겪으니까. 그렇게 해서 여호수아 15장. 16장에는 요셉지파. 여기 항상 15장에 1절에도 제비뽑았다고 되어 있죠. 16장 1절에도 요셉지파는 제비뽑았다고 돼있죠. 예언대로 된 거예요. 예언대로. 뭔가 실컷 두 사람이 고민하면서 바둑 둔다고, 아마추어 주제에 한수를 보는데 십분씩 생각을 해가지고 바둑을 뒀는데, 나중에 보니까 다 예언대로 된 거예요.
우리 인생도 바둑처럼 마찬가지에요. 실컷 자기 딴에 공들여서, 심사숙고해서 인생을, 이게 오른쪽인가? 파란약줄까? 빨간약줄까? 뭐 온갖 것을 다 했는데, 결국은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의 은혜대로 뜻대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전에 이야기했잖아요. 제비뽑는 것은 사람이 뽑으나 결정하는 것은 누가 한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의 결정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미리 알 수가 없고 결과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소급해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돼요. 우리의 믿음은 전혀, 우리의 결정과 선택은 우리가 믿어서는 안 되고 우리가 거기에다가 어떤 의미를 제공해서는 안 돼요. 성도는 그렇게 살아가야 되는 겁니다.
여호수아 17장에 보면 므낫세 지파, 므낫세 지파가 요셉지파에요. 근데 18장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실로에 모여서 회막을 세웁니다. 실로에 세웠고 나중에 여호수아가 죽을 때는 세겜에서 발표하면서 죽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유다지파, 그 다음에 뭡니까? 요셉지파 했죠. 그 다음에 베냐민지파하고 난 뒤에 18장에서는 여섯 지파는 지도가지고 오라고 해서 그냥 제비뽑아서 나누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레위지파까지 일곱 지파인데 여기서 레위지파는 빼요.
여호수아 18장 7절에 보면 “레위 사람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나니” 분깃이 없다는 말은 땅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레위지파는 레위지파끼리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살아서는 안 된다. 각 지파에 파견근무는 되는데 자기의, 레위지파 본부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땅을 가졌더라도, 다른 차원, 땅위에 있는 하늘의 차원은 속속들이, 파이 안에 들어있는 건포도 양식으로, 건포도처럼 속속들이 들어있어야 돼요. 이게 오늘날 누구의 모습이냐, 왕 같은 제사장이 오늘날 누굽니까?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왕 같은 제사장이 누구에요? 성도죠.
성도는 따로 모여가지고 기도원에, 지리산에 회막 지어가지고 자체적인 공동체하고. 공동체해보세요. 공동체 운영이 됩니까? 제가 옛날부터 봐왔던 책이 무슨 책이냐 하면은 지금까지 공동체를 실시했던, 시험했던 그러한 역사에 관한, 여러 가지 사례들을 읽었는데, 그 공동체에 뭐 신앙공동체 뭐 성령의 공동체해도 결국 마지막은 뭐로 끝나느냐, 돈 잔치로 끝나요. 돈 잔치로. 뭐 복음을 해가지고 형제여! 자매여! 눈물로서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 있는 것처럼 떡을 떼고, 처음에는 떡을 떼죠. 나중에는 돈을 떼요. 지분을 따지고.
이런 공동체가 실패로 끝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결국은 교회가 뭐로 끝난다? 교회가 돈 품빠이로 끝나버려요. 돈 품빠이로. 교회가 주식회사하고 똑같은 거예요. 너 지분 얼마 갖고 있나? 주식 얼마 갖고 있나? 하고 똑같은 겁니다. 개척교회하면서, 목사가 먼저 개척교회 시작하잖아요. 개척교회하면서 자기 사모님이 벌은 것 가지고 자기 돈으로 착각해가지고. “주여, 개척교회 합니다.”하고 돈 한 이천만원 내잖아요. 나중에 교회 좀 해가지고 교회가 좀 된다, 안 된다 싶으면 제일 먼저 교인들에게 내 자본금 내놓으라고 하죠.
하나님께 바친 게 아니고 자기가 자기한테 바친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교인들이 의아해합니까? 당연한 걸로 여깁니까? 당연한 걸로 여기죠. 그 목사에 그 교인들이니까. 똑같아요. 사고방식이.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너는 그냥 나그네처럼, 스카이콩콩있죠. 여기 툭 갔다가 여기 툭 갔다가 여기 툭 갔다가.. 그냥 돌아다니면서 너는 그냥 주님이 가신 코스대로 죽어버려라.
그래서 쭉 여섯 지파, 시므온 지파, 아셀 지파.. 는데, 그 지파의 분배는 여기 107페이지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21장에 레위지파한테 제비뽑아서 하는데, 먼저 그핫 자손한테 땅의 선택권을 제비뽑아서 줍니다. 레위아들이 세 아들이 있거든요. 그핫도 있고 므라리도 있고 게르손도 있는데, 사람이름을 말하기도 그래요. 외워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다만 그핫자손에게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그 유명한 아론과 모세가 그핫 자손입니다. 제사장이라도 족보가 있는 제사장이에요. 아론과 모세가 이쪽에 있어요. 그래서 그쪽부터 땅을 줘서 합니다.
그 다음에 22장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22장을 좀 더 해야 하는데. 자, 이쪽 서쪽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를 딱 하니까, 가서 곱게 살면 되는데 그들이 우리는 제단을 만들겠다고 이래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그핫 자손부터 해가지고 모든 다른 아홉 지파가 들고 일어선 거예요. 내가 그럴 줄 알았지. 그럴 줄 알았지. 너희들이 요단강 저쪽 편에, 그러니까 민수기에 모세가 이야기하지 않은 땅에 들어갔을 때는 절대로 제단을 쌓지 말라는 모세 율법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단은 미국 텍사스 나사에 있는 우주센터처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유일한 제단은 이스라엘에 단 하나이어야 해요. 언약궤가 있는 곳. 그곳이어야 해요. 다른 데는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런데 여기서 제단을 쌓아버리면 이쪽 사람들은 이쪽의 제단을 섬길 것이고, 이쪽은 이쪽 제단을 섬기고, 자동적으로 나라가 두 조각이 나요. 9+3으로 나누어진다고요. 그럼 우리 생각은 나누어지면 나누어지는 것이지 뭐가 문제냐? 이래 생각하겠는데. 이점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께서 언약을 줄 때는 열두 요소가 같이 있을 때나, 열두 색깔이 있을 때나 그 크레파스 전체에 복을 주지, 세 개 떼놓고 아홉 개 복을 주는 법은 없습니다. 열두 지파가 유지가 되어야 해요. 열두 지파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언약이 그래요. 열둘이 되지 못하고 세 개를 나눈다든지, 열한지파만 남고 베냐민 지파가 사사기 끝에 완전히 사람이 없어졌어요. 자기끼리 내전을 벌여가지고 다 죽여가지고. 그래서 대를 잇기 위해서 다른 동네에 가서 보쌈해서 강제로 끌고 와 아내를 삼고했어요. 그 당시에 사사기에 들어가면요, 지금 이스라엘이 이래 되어 있잖아요. 사사기는요 완전히 치즈 같아요. 구멍 난 치즈. 뻥뻥뻥 다 뚫렸어요. 좋은 데는 전부 다 이방민족이 와서 다 지배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이스라엘인지 이방민족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에요.
아까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그만큼 인간이 땅에 대한 집착은 아담의 타고난 본성입니다. 뭔가 사람이 땅이 있어야 안정성을 갖고 있고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을 갖고 있지, 땅도 없이 그냥 돌아다닐 것 같으면요. 이거는 기가 차죠. 여러분 가족 중에서 아들이나 딸이 있는데, “야! 요새 너 어디에 사노?” “예, 요새 캠핑 차타고 저 무안에 가있습니다.” “너 왜 정주하지 못해. 왜 한 곳에 못 사나” “고생도 했으니까, 애도 없으니까 우리 둘이 그냥 뭐 여행 다니며 청춘을 즐기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거든요. 우리는 가는 곳이 내 땅이지, 뭐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히브리서 11장에서 성도를 뭐라고 합니까? 이 땅의 뭐로 봅니까? 나그네로 보죠. 그만큼 땅이 있으면 땅을 소유하려고 하고. 제가 몇 시간 전에 이야기했잖아요. 사람이 열심히 일한 이유가 뭐라고 했습니까? 자식에게 상속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상속하기 위해서. 아닌 척하지 마세요. 내가 이렇게 힘들어 사는 이유는 다 자식한테 주려고 하거든요. 만약에 자식이, 아들이 없으면 손자한테 주려고 하고. 이거는 뭐 숨길 수 없는 본성입니다. 혈육적 본성이에요. 자식이 없으면 뭐냐, 그거는 사회에 환원, 내놓죠. 그때에 사기꾼들이 와르르 달려들겠지만.
사사기에 들어오게 되면 구멍 난 치즈처럼 뻥뻥뻥 다 뚫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뭘 원하느냐, 자기 자신한테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율법을 찾아야 되는데, 율법을 찾지 않고 뭘 찾느냐, 왕을 찾습니다. 결국 왕을 찾는다는 말은 이미 여기서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그들이 거부하기 때문에, 왕이 있는 민족이 왕을 찾는 이스라엘을 더욱더 괴롭히게 되어 있어요.
자, 도피성 이야기는 여호수아 21장에 나옵니다. 21장 34절부터 살인자의 도피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그 다음 41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레위지파에게 48성읍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44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의 사방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 모든 대적이 그들을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기 때문에 그들은 안식을,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했습니다. 그래서 응한 모습이 107페이지 지도 모습이 나온 거예요. 민수기에 나오는 미리 예언한 그 모습은 아니지만, 이 상태가 일단은 적들은 다 물러갔다 하는 거예요.
자, 여기서 이번 시간 끝에 이야기할 것은, 이걸 생각해봐야 해요. 다 안식하고 땅을 차지했으니까. 자, 정복이라는 것이 과연 뭐냐, 믿음의 승리가 뭐냐, 정복한다는 것은 지배받는 것인가 아니면 소유권이 넘어가는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해요. 내가 저 사람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지배하고 있다면 그거는 정복에 해당이 될까, 안 될까를 생각해봐야 됩니다. 자, 정복자가 누구냐 하면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님께 소유된 것과 예수님께 지배받는 것, 이게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차이가 있어요.
예수님께 소유가 되면 내 일은 없고 다 누구의 일이 되느냐 하면은 주의 일이 되거든요. 주의 일에 있어서는 자기가 책임을 느낄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지배를 받는다면 내 것은 따로 있고 주님의 지시를 따르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중에 뭐로 끝납니까? 결국 파탄으로 끝나요. 그런데 구약에서는 뭐냐 하면은 지배를 받고 내 것도 따로 있는 상속분이 있는 시대가 이 구약시대입니다. 그러면 구약이 끝나고 신약시대에 오면 뭐가 되겠어요? 주께 지배받는 식이 될까요? 안 그러면 주님의 소유가 될까요? 소유가 되죠.
그러면 정복에서 이렇게 소유가 되려면 여기서 내가 죽어야 됩니다. 내가 죽은 자가 되어야 해요. 그러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죽었기 때문에 믿음이 있을 수가 없고요. 주님이 나를 소유할 때 그 관계를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라의 태가 죽었잖아요. 사라의 태가 죽어야 되는데, 사라의 태가 죽었기 때문에 사라는 아예 자기의 임신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죽었는데요. 인간의 한계가 죽음이에요. 죽음 그 뒤의 문제는 인간이 손댈 수 없습니다. 죽었기 때문에.
그걸 의도적으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죽게 하는 거예요. “네 운명에 대해서 네가 손대지 마라. 네가 어떻게 되든 그것은 내 소유권의 문제지, 네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나 지옥가면 어떻게 해요?” “그걸 묻지 마! 그거는 네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왜? 왜 그렇습니까? “너는 내 소유기 때문에, 너는 소유가 좋아? 천당 가는 게 좋아?” “소유가 좋습니다.” 이래야 될 것인데, “천당 가는 게 좋습니다.”라는 이 말은 아직도 죽은 게 아니라 as if 죽은 척하고 있는 거예요. 실눈 막 뜨고 있어요. 주님께서 누가 죽었나 보니까, 끝까지 눈 감고 있다가 ‘지나갔나, 지나갔나.’
참, 우리의 육적인 것이 맨날 이렇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런 육적인 것까지 드러내서, 이게 아니고 이거라 해서 항상 다 소유됐으니까 다 이겼다가 아니라 항상 자기를 부인하게 만들어요. 이러한 육적인 요소를 계속 유발시켜서, 기브온 같은 요소를 유발시켜서 끊임없이 내가 뭔가를 얻었다가 아니라 주께서 이미 가져갔음을 매일같이 확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주님의, 우리의 승리가 아니라 주님의 승리입니다. 주께서 붙이시는 전쟁입니다. 저녁 먹고 난 뒤에 마지막 한 시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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