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이른 비 늦은 비

아빠와 함께 2021. 12. 24. 10:38

이른 비와 늦은 비

(요엘2: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개역한글)  Be glad then, ye children of Zion, and rejoice in the LORD your God: for he hath given you the former rain moderately, and he will cause to come down for you the rain, the former rain, and the latter rain in the first month.(KJV)시온의 자녀들아,야훼너희 하느님께감사하여 기뻐 뛰어라. 너희 하느님께서 가을비를 흠뻑 주시고 겨울비도 내려주시고봄비도 전처럼 내려주시리니,(공동번역)Be glad, O people of Zion, rejoice in the LORD your God, for he has given you the autumn rains in righteousness. He sends you abundant showers, both autumn and spring rains, as before.(NIV)시온에 사는 사람들아, 주 너희의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주께서 너희를 변호하여 가을비를 내리셨다. 비를 흡족하게 내려주셨으니, 옛날처럼 가을비와봄비를 내려 주셨다.(표준새번역)So rejoice, O sons of Zion, And be glad in the LORD your God; For He has given you the early rain for [your] vindication. And He has poured down for you the rain, The early and latter rain as before.(NASB)시온의 자녀들아,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가을비를 적절히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너희에게 비를 보내실 것이다. 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보내 주실 것이다.(우리말성경)シオンの子らよ、あなたがたの神、主によって喜び楽しめ。主はあなたがたを義とするために秋の雨を賜い、またあなたがたのために豊かに雨を降らせ、前のように、秋の雨と春の雨とを降らせられる。(구어역)シオンの子らよ。あなたたちの神なる主によって喜び躍れ。主はあなたたちを救うために/秋の雨を与えて豊かに降らせてくださる。元のように、秋の雨と春の雨をお与えになる。(신공동역)

1.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일을 감당하실 분이 따로 있음을 뜻합니다.
즉 모든 율법이 쏠리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 오직 장차 오실 메시야되시는 분만이 모든 율법을 자신에게로 다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다른 분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구원될 자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에게는 구원이 없는 겁니다.  
약속의 땅에 있어 결실은 인간이 아무리 수고를 하여도 하나님의 율법에 위배되면 아무런 결실을 맺지도 못하게 되고 설사 결실을 얻었다 할지라도 메뚜기 떼의 습격에 의해 황폐하게 됩니다.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 필연적인 요소가 바로 ‘끊어짐’ 곧 ‘단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농사의 성사를 결정짓는 요소입니다. 1년 중 5월 10월 까지의 긴 기간 동안 일절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농사력은 11월-12월 사이에 내리는 비로 인하여 시작이 됩니다. 이 때가 파종기입니다. 그러다가 4월-5월 사이에 수확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두 계절 뿐입니다. 비 오는 계절과 비 안 오는 계절 뿐입니다. 비 오기 직전의 계절이 ‘전이계절’입니다. 이 전이계절에 모든 절기가 모여있습니다.4월-5월 봄 전이계절에는 유월절, 맥추절이 있고, 10월-11월의 가을 전이계절에 초막절, 수장절, 장막절이 있습니다. 한참 비 오지 않는 7월에는 속죄절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 나라는 1년 내내 ‘절기 순환’이 진행됩니다. 이는 곧 ‘말씀이 순환’됩니다. 절기란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흔적입니다.
이렇게 볼 때, 단절을 가운데 두고 이른비와 늦은비가 반복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순환으로 인해 필히 단절의 기간이 있다는 말은 곧 사람이 중심되는 나라를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두고서도 이른비와 늦은비, 그리고 그 사이의 단절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시키십니다. 

2.일단 죽이고 그 다음에는 동행하시는 그 하나님만 살리시겠다는 겁니다. 구약에 있어 부활의 상황은 ‘동행’이라는 개념으로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므두셀라나 에녹이나 모두 하나님과 동행한 한 자들입니다.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입니다. 동행의 취지가 바로 자세히 나와 있는 곳이 시편입니다. 시편에 나온 모든 신앙인들은 한결 같이 하나님과의 교류와 교제와 동행을 표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9:7-10)
특히 시편 139:13-14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즉 우리의 신체 가운데 나의 것이라고는 일체 없는 겁니다. 다 ‘주님의 것’인 동시에 그 ‘주님의 것’의 완성은 필히 ‘단절’이 작용으로 진행됩니다.
곧 인간은 죽는다는 겁니다. 인간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것’들입니다. 인간을 죽게 하시는 이유는, ‘부활’이라는 충격적인 하나님의 일의 진행에 있어 인간들에게 기대할 게 없게 하시는 겁니다. 부활은 ‘동행’이라는 원칙을 완성하시는 분에게 먼저 주어집니다. 다른 이들이 이 부활되신 분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형편에 놓여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모든 죽은 자들은 그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부활하신 분의 음성을 들어야 될 대상들로 죽어 있습니다. 인간은 15세, 30세, 45세, 이것을 하나로 죽 이으려고 합니다. 그것을 연속성이라고 해요. 연속성은 끊어짐이 없습니다.  단절이 없어요. 인간에게는 단절이라는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차이가 없어요.  
오늘 본문에 보면 이른 비로 해서 작살 내고 늦은 비로 해서 죽은 이스라엘을 건져낸다는 거예요. 그 사이에 뭔가 단절이 있다는 겁니다. 이른 비는 오신 예수님이고 그리고 늦은 비는 다시 오실 예수님이고. 그 사이에 뭐냐? 십자가가 있어요, 십자가. 끊어짐이 있다고요.단절의 의미는 이겁니다. ‘구원할 수 없으니, 구제될 대상이 아니니 내가 너희들 죽이는 것이 맞잖아.’ 그런 뜻이에요. “구원해주세요.” “그 입 다물라.” 그 취지가 담겨 있는 것이 십자가에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역사 속에서 두 가지 면에서 끊어놨습니다. 하나는 뭐냐? 을 끊어놨어요. 다윗의 왕의 대가 끊어져 버렸어요. 말라기 이후에. 포로 잡힌 이후에 왕이 없어요. 느헤미야, 에스라, 제사장은 있지만 왕이 없다니까요. 왕이 없어요. 다윗 같은 왕이 없다 그 말이지요. 바벨론에 포로 잡히고 난 뒤에는.
그다음에 뭐가 없느냐? 성전이 없어요. 성전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있지 않는 나라가 되고 말았어요. 성전이 없으니까요. 복음은, 십자가는, 단절은 우리에게 뭘 요구하느냐? 네가 가짜인 것을 증명하라. 이걸 요구해요. 내가 가짜인 것을 증명하라. 그게 십자가 단절입니다. 성경의 특징은 동행입니다. 동행이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용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왕이 끊어지고 성전이 끊어졌어요. 그러면 뭐 다 끊어진 거지요. 의도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걸 단절시킨 거예요. 인간들의 자기 연속성을 유지한 채 생명을 얻고자 하는 배후의 악마적인 그런 시도를 끊어 내십니다.요한복음 5장 26-29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25절에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인간의 살아 있음의 연속성은 소용없습니다. 절망적입니다. 희망이 없어요. 일단은 인간은 죽어야 돼요. 일단 인간은 죽어야 됩니다. 인간은 죽게 되어 있으니까 본인의 입장에서 인간의 연속성은 깨진 거예요.하나님이 이미 나를 죽였다는 것은 더 이상 나한테 힘쓸 구석이 없다는 거예요. 그냥 죽어 있으면 돼요. 참 편해요. 하나님은 살아 있는 인간하고는 일 안 합니다. 일단 죽여놓고 더 이상 그 죽은 자가 어떻게 할 여지가 전혀 없게 만들어버려요.
죽은 자만이 자기가 가짜인 것을 증명할 수 있고 주님이 그 일을 하시고 있음을 우리가 아는 겁니다. 내가 가짜일 때 나는 무엇을 지니고 있습니까? 단절성을 지니고 있는 거예요. 무엇을 주님 앞에 다 빼앗겼습니까? 나의 연속성을 다 빼앗긴 거예요. 단절성을 가져야 바로 순환구조, 이른 비 늦은 비의 순환이 계속되는 거예요.
이른 비와 늦은 비의 그 단절은 인간의 힘으로 뛰어넘을 수가 없어요. 주님의 자기 고유한 작동이고 활동입니다. 이른 비 해놓고 단절, 늦은 비 해놓고 그 단절은 주님 스스로가 내린 단절이에요. 어떤 인간도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 단절되게 하신 그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에요.
내가 죽은 자가 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나요. 죽은 나의 핵을 통해서만 생명이 나오도록 사용해 주신 것에 대해서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살아 있으면 생명이 아니에요. 왜? 단절이 없기 때문에.  

 

3.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하지 마세요. 모든 인간은 예수님을 안 믿게 되어 있어요. 믿는 것이 이상해요. 기이해요, 기이해. 성도가 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서 지옥 가기 전에 택한자를 살아 생전에 주께서 일찍 십자가에 죽이시고 일찍 부활의 주의 음성을 동행하면서 듣게 하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생명이에요. 미리 죽은 자가 미리 생명을 얻는 거예요. 주의 영에 의해서. 그러니까 나는 죽었다, 살았다, 가 중요하지 않고 늘 주의 생명이 나의 삶을 통해서 이게 기이하게 나온다는 거예요.   요한복음 5장의 그 말씀이 계속해서 삶 속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내가 끊어졌음을, 단절이 있다는 것을 안 자체가 이미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부활의 영 성령을 받은 사람, 부활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에요. 부활의 능력을 받았기 때문에 주의 끊어짐이 자기 백성에게 생명을 주는 합당한 필연적 절차인 것을 우리는 감사하게 되지요. 내가 나로부터 끊어진 것.
이렇게 끊어지지 않으면 성경을 지식으로 좍 들어요. 1단계 나는 구원받았다. 말씀으로 구원받았다. 가짜들의 특징이 그래요. 구원받았다. 2단계, 딱 돌아서면요, 안 돌아서도 마찬가지인데, ‘이거 유지해야 돼. 이거 유지 안 되면 나만 또 손해지. 나는 지옥 가면 안 되지. 어떻게 이걸 유지를 해야 될텐데 뭘 하면, 어떤 착한 일을 해야 유지 되지?’
그러면 성도는 뭐냐? 천국에 오염되었어요. 방사선에 오염되듯이 천국에 오염되었으면 천국에 의해서 내 생각은 이미 죽어버렸어요. 그 단계가  3단계에요. 이게 뭐냐? 단절이 있어야 돼요. 성령을 받은 사람은 단절이 있어요.자기 구원에 걱정이 안 되는 거예요, 걱정이! 자기 구원에 관심이 없고 주께서 이 죽은 나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거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일종의 걸어 다니는 해골. 놀라운 사실은 3단계는 무슨 단계를 순환해서 돌아야 되느냐 하면, 1단계 2단계를 거쳐서 3단계가 되풀이돼요. 1단계, 2단계, 그다음에 3단계. 그런데 세상은 ‘1단계 – 2단계’ ‘1단계 – 2단계’ 거기서 왔다 갔다 하면서 3단계로 넘어간 적이 없어요.
네온사인 수놓는 불꽃이 있지요, 노란색으로 갔다가 파란색으로 갔다가 윙, 윙, 늘 돌아오는 것처럼 1단계 - 2단계 – 3단계, 1단계 - 2단계 – 3단계, 늘 돌아가면서 세상과 부딪히면서 지식으로 구원받았다고 까불다가 또 세상 걱정하다가,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1단계 - 2단계에서 다시 3단계로 넘어와서 ‘아, 죽는 일도 이렇게 사소한 일인 줄 나는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죽는 일도!’
그러니까 세상은 ‘1단계 – 2단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누가 중요하냐? 내가 중요하기 때문에 남과 나를 구분해요. 그러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남하고 구분하지 않습니다. 주님과 나와 늘 비교하는 사람, 그래서 나는 죽었고 내 안에 주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늘 나타나는 거예요.
주님이 자신의 이스라엘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꼭 단절을 집어넣어서 너 죽는 것조차, 심지어 네 약점조차 선물이라고 하셔요. 너 죽는 것조차, 네 결점조차 그것은 아무 일도 아니에요. 이미 천국에 오염되어서 죽어버렸으니까  십자가 지신 분의 단절을 증거하는 방식으로 생명만 증거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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