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무기

아빠와 함께 2021. 12. 23. 13:54

1.전쟁을 이스라엘이 원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발단을 만들어내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고유 기능이 있습니다. 그들 자체가 하나님께서 친히 벌리시는 무기가 되어야 될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상대로 전쟁을 벌리시는 방식, 곧 그들을 심판하는 방식으로  멸망시켜 버립니다. 이 인간세상의 잘못은 ‘창조원리’에서 이탈했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 보면서 우리는 이것이 이스라엘나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전 인류를 위해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미리 예언하신 말씀인 것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이 예언했다는 말은 모든 일의 실행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먼저 시작을 하셨다, 라고 보시면 쉽습니다. 모든 일의 시작은 하나님이 개시를 하시고 우리 인간은 거기에 말려드는 형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지 아니하면 인간에게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셔야 돼요.

2.여호사밧 전쟁-이스라엘과 주변국간의 싸움  
1.“너를 지키기 위해 네가 가질 무기는 필요치 않다” 2.걱정과 염려와 불안이 동반해서 올라옴. 3.아예 자기 백성들에게 스스로 지킬만한 것들을 삭제시켜 버림. -이유:너를 지킬만한 자격이 없다 =창조원리에 맞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심판이라는 방식을 동원하여 멸망시킬 때 이 원리를 도입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분노를 유발하게 해가지고 유발한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어떤 특정장소로 유인되게 만들어버리고, 그 유인된 장소는 그래서 갇힌 장소가 되고, 그 갇힌 장소에서 몰살하는 방식, 하나님께서 전쟁할 때 마지막 전쟁을 그런 식으로 이끌어 가십니다.결국 걱정과 염려속에 이스라엘 쪽에서 도리어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난 하나님께 분노합니다.” 하나님은 말합니다. “그 분노, 바로 그 분노야. 바로 그거야” 네가 적들과 싸우기 전에 나와 너와 싸워야 돼요.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소속이 내 소속이야. 그렇다면 너를 지킬 무기를 갖지 마” 이걸 다른 말로 하면요. “너는 너를 지킬 자격이 일체 없어” 그 말이지요. 다시 말해서 “너는 네가 이익이냐 손실이냐를 계산할, 카운트 할 그런 대상자도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 거룩한 하나님의 전쟁에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무기를 없애는 그 자체가 무기가 되게 하는 거예요.“이스라엘아” “예” “너는 약속의 땅에서 밥 먹고 사는 게 좋으냐?” “좋습니다. 이 땅에서 계속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누구 맘대로? 인간의 본질은 그게 아니야”라고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마태복음 10장 34절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검이라 하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칼이고 검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를 지키기 위해서 검을 주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하시고자 한 그 일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무기가, 하나님이 하나님다움을 지키는 그 무기가 새롭게 너희들에게 제공될 것이다. 그런 뜻이에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 되어 있지요. 너의 원수는 바로 너라는 거예요. 나를 지키고자 하는 나와 ‘나는 지킬 대상도 아니야. 나는 망해야 돼.’라는 그 나 사이의 전쟁, 그런 나가 될 때만 우리가 하나님의 제대로 된 이스라엘, 하나님전쟁의 무기가 됩니다. 이게 절대로 과격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게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3.주님께서 “제발 너는 평생을 살면서 손해 봤다, 이익 봤다, 를 생각을 하지 마” 그래서 성도가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다른 좀 투박한 예를 하나 든다면 권총을 하나 가지고 늘 관자놀이에 겨누고 있는 겁니다. 내가 나를 지킬 맘이 있으면 총으로 쏴버려야 돼요. 성령으로 이걸 쏴버려야 돼요.왜냐하면 내가 나의 구원을 방해하기 때문에. 내가 내 구원을 주께서 시작한 구원을 내가 발목을 잡아요. ‘아무리 십자가 복음이 좋지만 그런다고 돈 생기나?’ 이럴 때 ‘죽어버려라. 이 인간아.’쏴버려야죠.
다시 할게요. 주님이 벌인 일은 뭐냐? 우리에게 분노를 유발해서 결국은 ‘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죽여버려’     죽이도록 모이는 그 장소가 그게 여호사밧 골짜기에요. 하나님과 정면으로, 1대 1로 마주해서 된통 전쟁을 벌이는 그 장소, 지금 그 장소가 오늘날 매일 우리가 거주하고 일하는 그 직장과 가정이고 교회입니다.
무기가 두 종류가 있는데요. 살고자 해서 내가 갖고 있는 무기와 나를 죽이는 무기, 주께서 제공했던 그 무기.  
인간이 자기가 자기를 지키는 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 그곳이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다움을 지키는 무기를 가지고 지키는 곳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사용했던 그 무기를 이제는 성령을 통해서 자기 백성에게 제공해주신 거예요. 누구한테? 스데반집사한테. 그래서 스데반 집사는 그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죽여라. 그것도 주께서 유발시킨 그 분노를 가지고 나를 죽여라.’ 그게 바로 오늘날 하나님의 전사입니다. 우리는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사도바울이에요

4.스데반집사의 순교당한 장면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스데반 집사님을 얼마나 적절하게 [창조의 원리, 곧 천국을 지키는 무기]로 사용했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분노한 사람들이 스데반 집사를 단체로 돌을 던져 죽일려면 그들 속에 ‘돌’이라는 무기를 들고 있습니다.하지만 스데반 집사님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습니다. 민중들은 왜 스데반집사의 설교를 듣고 분노한 것일까요? 그들의 신앙이나 종교나 모두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39에 보면,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서 어떤 방식으로 주님의 무기로 쓰여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스데반집사님의 무기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천국의 문 속으로 들어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죽게 한 그 동일한 죽음 상황 속으로 들어가 사라지는 겁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널 때에, 애굽 군대는 결코 건널 올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 겁니다. 바로 그 지점으로 들어갔던 스데반 집사님은 멀쩡한 살아계신 에수님의 품 속에서 영원히 영생을 누리게 된 겁니다.

5.창세기 2장 14절에 에덴동산에 유브라데 강이 나오잖아요. 유브라데강이 나오는데 요한계시록 9장 14절에 그게 또 나와요.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할 때 처음 좋았던 그 창조의 원리원칙을 양보하거나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창조의 원리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하여 “너희는 시건방지게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 살면서 창조의 그 원리, 에덴동산의 그 원리를 너희들이 위배했기 때문에 이 땅에 오신 창조주가 너희를 사정없이 짓밟아 버리겠다.” 이 계획은 지금껏 취소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복음을 모른다고 형벌을 주신다는 겁니다.
복음이 뭐냐? 스데반집사한테 물어보세요. 복음은 하나님이 자기를 지키기 위한 무기가 되는 거예요. 십자가의 정신,  주께서 여러분을 작동해서 여러분들로 하여금 세상에 밉상 받고, 심지어 더 중요한 내가 나한테 밉상 받는 방식으로 아무것도 없이, 손해될 필요도 없고 걱정 염려될 필요도 없이 그냥 주께서 매일같이 죽이시는 대로 주의 무기로써 주한테 이끌리면 도착지점이 바로 예수 안, 십자가 안, 성령 안, 천국입니다.

6.따라서 성도는 하나님께서 친히 벌리시는 전쟁에 이런 식으로 참전한 전사가 되는 겁니다. 그들만이 압니다. “나는 나를 지킬 가치가 없다”를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냥 우리가 살기 위해서 십자가 피 믿으면 된다는 그 발상이 얼마나 마귀적이고 기어이 자기가 자기를 지키는 얕은 속임수인 것을 이제는 깨닫게 해주시고, 남들하고 싸우기 전에 나 자신 속에서 벌어지는 주님과의 전쟁을 느끼게 하옵소서.주께서 유발한 모든 것이 더이상 우리를 지킬 무기가 필요치 않음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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