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언약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언약입니다. 아브라함한테 네 아들 바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보내실 자기 하나님을 아들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냈다는 것은 미리 당겨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제가 아브라함보다 이삭이 가깝다고 이야기했지요. 아브라함의 자손이 예수님이에요.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는 어떤 원칙이 있는 일관적으로 내부적으로 같은 줄기로 연결된 게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아들은 지상에서 죽는다. 상처받고 죽는다. 이게 일관된 원리입니다. 그게 이삭이 아버지 손에 죽어야 돼요. 죽지 아니하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죽이는데 죽이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에덴동산에 선악과 심어서 인간은 따먹고 거기에 마귀까지 들어오도록 허락하셔서 결국 이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이 주가 되기 위한 환경조성에 하나님께선 계획하시고 선악과 심고 뱀 집어넣고 인간은 따먹도록 허용하시고. 허용하신 것은 선악과나무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러워서 10년째 참아도 11년째는 못 참게 만들어요. 12년 참아도 마찬가지에요. 결국 그걸 따먹을 수밖에 없어요. 왜? 아름다운 것은 계속 아름다우니까.
그렇게 해서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그대로 들어오게 되면 그게 구원이에요. 아까 사랑은 소유지요. 인간은 소유를 통해서 자기 자아를 구축합니다. 소유를 비껴가는 방법은 뭐냐? 내 안에 들어오지 않고 바깥과 바깥을 연결시키면 되지요. 그럼 내 소유가 안 되지요. 하나님의 의는 내 소유용이 아니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 하는 거예요. 다리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안 중요한 거예요. 내가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다리의 역할은 변함이 없어요. 내가 교도소 일곱 번 왔다갔다해도 남한테 욕을 얻어먹더라도 다리 역할은 관계없이 꾸준하단 말이죠.
-"사랑과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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