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숙경

복음의 일군

아빠와 함께 2021. 1. 30. 17:42

title : The Servant of The Gospel 복음의 일군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Colossians 1: 21-23
date : January 24, 2021

21. Once you were alienated from God and were enemies in your minds because of your evil behavior. 22.But now he has reconciled you by Christ's physical body through death to present you holy in his sight, without blemish and free from accusation--23.if you continue in your faith, established and firm, not moved from the hope held out in the gospel. This is the gospel that you heard and that has been proclaimed to every creature under heaven, and of which I, Paul, have become a servant.

SUMMARY

According to today's text, the gospel preached by the apostle Paul is, "Once you were alienated from God and were enemies in your minds because of your evil behavior. But now he has reconciled you by Christ's physical body through death to present you holy in his sight, without blemish and free from accusation" 오늘 본문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전파하는 복음은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셨다”는 것이다.

Paul's gospel like this drives us to give up the human view, expectation or imagination of salvation. Paul's point of view is as extreme as Jesus often did. In other words, it is said that the only way humans can be reconciled to God, and the only way to present them holy in his sight, without blemish and free from accusation is the death of Jesus' flesh. It is also said that the only way to get rid of the state of being alienated from God and were enemies in their minds because of their evil behavior is nothing but the blood of Jesus shed on the cross. 이 같은 바울의 복음은 기존의 구원에 관한 인간적인 관점, 기대 혹은 상상을 포기하도록 몰아간다. 바울의 관점은 예수님이 종종 그러하셨던 것처럼 극단적이다. 즉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며 하나님의 눈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유일한 방식은 예수님의 육체의 죽음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 되었던 상태를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길도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 외에는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이다.

Paul, a servant of Jesus Christ and his apostle, follows the extremeness of the gospel Jesus preached and his death. Humans do not know how serious their sins are. Therefore, Jesus presented His Gospel with extreme content. Jesus said, "If your right eye causes you to sin, gouge it out and throw it away. It is better for you to lose one part of your body than for your whole body to be thrown into hell. And if your right hand causes you to sin, cut it off and throw it away. It is better for you to lose one part of your body than for your whole body to go into hell(Mat. 5:29-30).”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그분의 사도인 바울은 예수님이 전파하신 복음과 그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의 극단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극단적인 내용을 담아서 복음을 제시하셨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9-30)”

Jesus exposed the recklessness, ignorance, foolishness and wickedness of those who tried to stand before God with their own righteousness, and crushed the possibility of their own salvation at once. Jesus makes every mouth of those who wish to be justified before God by observing the law be silenced. They missed that the body was given not to practice the law, but to reveal the seriousness of the law. 예수님은 자기의 의로움을 가지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시도하는 자들의 무모함과 무지함과 어리석음과 악함을 노출시키시고 그들 스스로의 구원의 가능성을 일거에 밟아서 뭉개버리셨다. 예수님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자 하는 자들의 모든 입을 막아버리신다. 몸은 율법을 행하는 데 소용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율법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해 주어진 것임을 그들은 놓쳤던 것이다.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are like whitewashed tombs, which look beautiful on the outside but on the inside are full of dead men's bones and everything unclean. In the same way, on the outside you appear to people as righteous but on the inside you are full of hypocrisy and wickedness(Mat. 23:27-28).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7-28).”

Therefore, Jesus' meaning is that when you come before the gospel, you must present your inner self like a grave filled with the bones of the dead and everything unclean. That means you're already dead. 그러므로 예수님의 뜻은 복음 앞에 나오려거든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무덤 같은 너의 내부를 내어 보이라는 것이다. 즉 너희들은 이미 죽어있다고 하는 것이다.

The reason that the saints were forgiven of sins was due to the extreme action of the Lord himself, the death of Jesus' flesh. Therefore, now Jesus injects his own death to those who have been reconciled to God through the physical death of Jesus. When the death of Jesus comes into the saints who have been forgiven of their sins, all the filthiness, that is, the fundamental demonic nature of Adam, will be revealed, and the reasons for the curse and death will be revealed one by one. This is as if the insurance money is paid first, and then the factors incurring the insurance money are identified one by one. 성도가 죄사함을 받은 것은 예수님의 육체의 죽으심이라는 주님 자신의 극단적인 조치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의 육체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박아 넣으신다. 죄사함을 얻은 성도 안에 예수님의 죽음이 들어오게 되면 모든 더러운 것, 즉 아담의 근원적인 악마성이 드러나고 저주받고 죽어야 할 이유가 하나하나 밝혀진다. 이것은 마치 보험금이 우선 지급되고 그 후에 그 보험금 발생요인이 하나하나 확인되는 것과 같다.

In other words, the already forgiven saints have Jesus' death alive in them. The apostle Paul says this : "We always carry around in our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revealed in our body. For we who are alive are always being given over to death for Jesus' sake, so that his life may be revealed in our mortal body. 이것을 달리 말하면 이미 용서받은 성도는 그들 안에 예수님의 죽으심이 살아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011)”

This may be interpreted as meaning, "the reason why we sin over and over again while we are always in the flesh is to make Jesus' forgiveness appear in our bodies." Just as the apostle Paul introduced himself as a servant of the gospel, all the saints who have received Holy Spirit, the saints who have been forgiven are the servants of the gospel. There's no their own affairs left for the servants of the gospel. 이것은 ‘우리가 항상 육신을 지낸 채 죄를 짓고 또 짓는 이유는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용서하심이 나타나게 하려 함이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복음의 일군으로 소개한 것처럼 성령 받은 성도, 이미 용서받은 성도는 모두가 복음의 일군이다. 복음의 일군에게는 자기 일이란 없다.

This means that there is no longer anything left for them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mselves, to reprimand themselves, or to evaluate themselves. All that was left to the saints was the fulfillment of the prophecy Jesus had done to Peter. In other words, "when you were younger, you used to gird yourself and walk wherever you wished; but when you grow old, you will stretch out your hands and someone else will gird you, and bring you where you do not wish to go(John 21:18)." 이 말은 자신이 독자적으로 책임질 일도, 자신을 질책할 일도 자신을 평가할 일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성도에게 남겨진 일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예언의 성취뿐이다. 즉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Nothing is more serious than the death of Jesus to the saints. It is the devil's job to make our own work look serious. Those who are already forgiven do not have to choose the way they can win, or the way they can raise their self-esteem. Because the Lord makes us regard ourselves as others. The affairs of others is considered trivial by nature. For the saints, the death of the Lord is important, and that is the only serious thing. The Lord makes us regard ourselves as past memories, trivial things, and jokes. 성도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죽으심 보다 더 심각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 자신의 일을 심각한 일로 보게 만드는 것은 마귀의 일이다. 이미 용서받은 자는 자신이 승리할 수 있는 길, 혹은 자기의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타인으로 여기게 만드시기 때문이다. 타인의 일은 본래 시시하게 여겨지는 법이다. 성도에게는 주님의 죽으심만이 중요하며 그것만이 유일하게 심각한 일이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한때의 추억, 시시한 것, 농담으로 여기게 하신다.

이근호

누군가에 대해서 ‘고맙다’고 느끼는 것은 그 고마움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는 놔버렸다는 말이다. 시원하게 포기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고마움 분이 없다면 이제는 자신이 자기를 다독거려야 되고, 격려해야하고 달래야하고 희망을 주어야한다. 삽입된 ‘용서’받음이 모든 공포에서 벗어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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