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출32;19)
"그 장을 갈고리 아래 드리운 후에 증거궤를 그 장안에 들여 놓으라 그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라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출26;33-34)
언약이란 인간에 의해서 깨어지는 그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완성 노선이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의 계약이란 이 깨어진 돌판을 상자에 삼아 ‘증거궤’이라는 이름으로 성소 가장 깊숙한 곳에 안치하고 그곳을 속죄하므로서 완성되는 겁니다. 곧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성사되는 겁니다. 즉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바로 그 일을 통해서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만이 기념되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겁입니다. 증거란 바로 인간의 모든 죄의 극한을 인간쪽에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쪽에서 언약을 가지고 증명하시는 겁니다.
야곱은 사태를 파악하고 웁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붙들고 운다는 것은, 자기로 인해 깨어져버린 언약을 하나님에 의해서 계속 이어가게 해달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울음과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게 되는데 그것은 기세 등등한 야곱적인 근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야곱이 죽고 난 뒤 ‘다른 야곱’의 간곡함으로 받아들이십니다.
그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즉 야곱 안에 ‘다른 야곱’이 있었던 겁니다. 기존의 야곱은 언약을 깨지만 ‘다른 야곱’이 깨진 야곱의 죄를 이기고 언약을 완성해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십자가 지셔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히2;10-11)실제로 예수님도 우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그리고 그분의 기도로 언약이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7;25)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언약 완성자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야곱의 울음에 동참해서 우리 자신이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하게 기이한 현상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언약을 완성하신 하나님의 이름임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