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내가 제일 꼴보기 싫은 지저분한 인간들 딱 앞에 세워놓고
“돌로 쳐라. 자신 있으면 쳐라”라고 하시는 이 말씀은 네가 돌로 쳐야 할 인간을 보호하고 있다는 거예요.
네가 네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거예요. 단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러나 복선에 있는 주님에게는 나는 뭐냐 하면
“네가 만약에 죄 없는 자라면 돌로 쳐라. 자신감 없어? 그러면 너는 나에게 돌 맞아라”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간음하는 여인을 붙잡아 온 바리새인에게 “돌로 쳐라”라고 해놓고
바리새인 노선 다 간 뒤에 이쪽에 있는 간음한 여인에게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도 너를 용서하노니”라는 이 말은 뭐냐
“간음한 여인아, 네가 간음했기 때문에 지옥 간다는 그 마감을 더 늘어뜨려라”라는 말이죠.
나는 그저 쓰인 거지 나 하나 천당 가냐 지옥 가냐는 이방인적 관심사예요. 오늘날 세상적 관심사예요.
쓰이는 거, 사명으로 쓰이는 건데 맨날 일상생활은 뭐냐 하면 내가 잘 될까로 마감되어버려요.
너는 쓰이는 거예요. 그리스도가 나와야 하지 최종적으로 내가 나오면 안 돼요.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가 나와야지 내가 주님 앞에 애썼다가 나오면 안 돼요.
아픈 것도 사명입니다. 어차피 주님이 보는 그 죄에 의하면 돌로 침을 당해야 해요.
주님이 저쪽에 있고 부재하시는 주님이 보기에 나는 돌이 날아와야 마땅한 그쪽 편에 서 있었잖아요.
그쪽 편에 서 있었다는 증거가 뭐냐. 나는 나밖에 모르니까.
이런 내가 왜 이렇게 달라졌죠? 그건 주와 함께 언약이 약속이 주도적으로 나에게,
내가 주도적이 아니라 약속이 주도적으로 나를 잡고 있다 보니까 내가 주인공이 아니고 언약이 주인공인 거죠
-우리교회 주일오후설교 200524 "단선과 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