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창조하신 하나님'을 창조물인 인간의 파악 능력에 따라 존재가 확인되고 인정되는 하나님이 있는 반면에, 이러한 시도 자체가 죄가 된다는 것을 십자가 언약을 통해서 알려 주시는 하나님이 따로 계십니다. 좀더 신랄성을 품고 말씀드리자면, 교회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믿어지는 하나님상이 있는 반면에, 교회를 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겠다는 발상이 죄가 된다는 점을 십자가 언약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하나님이 따로 계십니다. 이 '따로 계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이나 마음이나 종교심으로 포착이 되지 않고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알려집니다. 여기서부터 중요합니다. 왜 참된 하나님은 십자가 언약이 아니면 알려지지 않으신 분이냐 하는 겁니다. 이것은 인간은 자신의 존재조차 죄인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위적인 노력이나 인식으로 파악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악의 세력에 휩싸인채 이 땅에 출현하기 때문입니다. 이 죄가 어느 정도로 지독한가 하며는, "옛날에는 세상의 악한 신에 의해서 예수님이나 세상이나 하나님이나 자아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성령받아서 예수님이나 세상이나 하나님이나 자아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된 자아를 갖게 되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조차 여전히 악마의 사주에 의해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겁니다. 소위 십자가에 대해서 이미 익히 안다고 여기는 자들이 쏟아내어놓는 철학과 신학과 과학들이 전부다 실은 복음을 훼방하기 위한 악마의 수작에 결실물입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듯이 믿음의 적은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 복음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뭔가를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십자가만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어려운 말을 풀기 위해서는 '주체문제'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뜻은 오직 '십자가에 한 남자를 죽였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결국 모든 인간이 다 죽은 것입니다. 정말, 참으로 죽은 자라면, "살아야지"에 대한 집념과 경향성이 성령받고 난 뒤에 방출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왜 살려주십니까 왜 구원하십니까"라는 사명감만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이 사명감은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감이지 결코 '십자가 증거해서 세상을 복음화 시키는 목적의 사명감'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날마다 죽는' 사명감입니다. 이런 십자가 언약에 근거해서 신학이나 철학이나 과학이나 복음적인 글이라고 우기는 글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행여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자니 계속 살아남을 가치 있는 존재야"라는 사상이 배겨나오고 있지 않는지 여부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짧은답(이근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꾸로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100204) (0) | 2013.04.13 |
---|---|
축도란?(100331) (0) | 2013.04.13 |
도마복음(100529) (0) | 2013.04.13 |
번역본의 차이(100705) (0) | 2013.04.13 |
직업(101022) (0) | 2013.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