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 어떤 말씀에 대해서 ‘주님을 위한 말씀’으로 끝까지 가지를 못합니다.
성경의 내용을 ‘자기 동일성 유지’하는데 필요한 재료로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부활의 취지는 ‘나의 부활’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에’ 의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19-20에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스스로 부활에 참여하는 방식을 찾고들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이 인간이 쟁취해야 될 숙제가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의 사명이요 업무입니다.
이 와중에서 철저하게 인간의 동일성 주장은 거부당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체는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몸의 부활체이지 결코 인간들의 부활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애굽 나라에서 이스라엘이 탈출한 것이 결코 과거지시가 아닙니다.
홍해가 ‘한 때 갈라진 바다’라는 의미가 되면 인간들은 자기 기억의 동일성에다 담아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또 자기 위주입니다. 자기 것을 자기가 고이 간직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말씀이 이해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말씀의 성취되는 과정 속에서,기어이 자기동일성을 부활체로 바꾸어 보려는 자를 거부하시고
그 자리에 진정 말씀의 유일한 실현자이신 예수님의 동일성을 살려내십니다.
곧 죽음 속에서의 부활입니다. 따라서 자기 의식이나 자기 기억을 소지해서
그것으로 천국에 들어가려고 시도는 늘 실패입니다.
예수님의 성취 앞에서 우리의 기억력이나 우리의 결단성을 내놓으면 아니됩니다.
왜냐하면 성도 자신들이 말씀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성도의 집단을 늘 애굽으로 만들고
그 가운데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들을 재생산해내십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우선이 아니라 말씀이 우선인 것이 늘 전파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천국은 예수님의 세계이지
결코 나의 세계가 아님을 명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교회 주일오후설교 ”후일의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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