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성도가 외면해도 상관없는 바깥 세상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의도가 있어 유발시킨 현실입니다.
이는 곧 실제 현실이 하나님이 내리신 답이라는 겁니다.
이제 성도에게 주어진 것은 질문의 구조를 찾는 일입니다.
‘왜 이런 답을 주셨는가’
즉 답은 벌써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졌습니다.
성도의 입장에서, 다른 답을 찾으려고 시도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김 집사의 돈을 박 집사가 사기쳐먹었다 했을 때
그 일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어? 돈을 안 갚아? 소송해야지. 왜? 내 돈을 잃어버렸으니까.’
그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 나는 행복해지고 만족하니까,
‘잃어버렸으니까 나는 재판을 해야 해.’라고 하는 그 순간
돌을 맞아야할 현장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인간에게는 억울함이 애초에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처음은 그저 ‘흙’알 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답을 놓쳤어요. 돈을 사기당한 그것이 정답인데
돈을 찾는 것이 정답이라고 하는, 자기로부터 정답 찾기에 나서는 겁니다.
“주님이여, 왜 사기를 당하게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나는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었다.
나는 너 같은 인간을 위해서 내 생명까지 잃었는데
아직도 네 목숨은 붙어 있잖아. 아직도 많이 남았네.” 하시죠.
이럴 때 ‘아하, 나야말로 주님 앞에 소송당해야 마땅한,
죄로 지적질 당해야 마땅한 죄인이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진행되고 있는 신앙생활이라는 거예요.
소송을 하지 마세요, 라고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송을 하세요. 그리고 소송하는 가운데 엉망진창이 되세요.
그게 숨겨놓은 진짜 주님의 정답입니다.
소송을 합시다. 접시를 깹시다.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지나? 소송을 합시다.
소송을 해야 우리가 소송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소송하면서 양쪽 다 엉망진창이 되는 가운데서
‘나는 남에게 소송을 하면 했지 남에게 소송 당하지는 않을 정도로 괜찮은 인간’
이라는 위선이 다 깨어지는 혜택을 입을 것입니다.
”아 나야말로 하나님이 제공하신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가진 자로구나”
신앙생활은 주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질 당하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교회에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현실의 삶속에서, 현실 속에서 진행 중입니다.
-우리교회 주일오전설교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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