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2014년 12월 15일 오전 08:04 (소유하지 못할 땅)

아빠와 함께 2014. 12. 15. 09:05


아담 속에 암이 들어 있어요. 암이.
무슨 암이냐 하면은, 그냥

”나만 잘 되면 괜찮아. 나만 잘되면 좋은 세상”

이라는 그 부당함이 우리 속에 싹트고 있어요.
이게 점점 자라고 있는 거예요. 암 조직이.
그러니까 우리 행복이라는 것은 그걸 빼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걸 달성하고 그 욕구를 만족시킬 때 행복이라는, 그것이 어느 새 젖어버렸습니다.
목표를 이루고 기뻐하고, 목표를 이루고 기뻐하고. 도대체 그 목표가 어디까지 목표입니까?
애굽에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부당함이지만 그 부당함 때문에
평소에 사는 보람과 희망과 역경을 이길 수 있는 에너지를 거기서 얻는 겁니다.
죄와 한 짝이 되고 한 패가 되는 거예요.

 

이 세상이 나를 위한 땅이어야 한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이 고집.
”저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애썼습니다”

자기 부당함을 자기 정당함으로 고집부리는 그 고집이 자기를 파멸시켜 버려요

십자가가 없으니까 부당함을 부당함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준이 없는 것이죠.

그런 것들은 언약에 의해서 저주받게 되어 있는 에서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주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그 부당함을 지적하십니다.

“니는 살 가치가 없어.” 죽음을 집어넣어버려요.

저들은 저들의 부당함을 껴안고 지옥 가도록 내팽겨 치고
나는 너의 부당함을 부당함으로 십자가 피로써 날마다 지적하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의 아담적 본성과 싸우게됩니다.

“나는 이러하게 살아서 이런 좋은 낙을 누리겠다”

중보자되시는 예수님께서는 그 ‘이상(理想)의 부당함’을 지적하십니다.

‘건전해 보이는 이상(理想)’을 빌미로 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수립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악마가 만든 ‘종교’라는 겁니다.

물에 빠진 자신을 자기 손으로 자기 머리를 잡아당겨 물 밖으로 끌어올리겠습니까?

성령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의 이상과 꿈의 더러운 속성을 깨닫도록 고발하십니다.

그렇게 하신다는 것 자체가 그들 속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점이 없는데 한쪽은 그 부당함을 감추는 식으로 살아가고

                               한쪽은 그 부당함이 날마다 노출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 중보자의 피흘림 앞에서 자신의 건전함을 자랑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일오후설교 ”소유하지 못할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