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2014년 12월 9일 오전 07:48 (명령으로서의 구원)

아빠와 함께 2014. 12. 9. 08:24

요한복음 5장에서 제가 첫째 시간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겁니다.
‘중심은 없다.‘입니다. 제가 서울에 오면 어디서 왔습니까? 대구서 왔죠.
그리고 후딱 대구로 내려가잖아요. 후딱.
그러면 남들 보기에 중심이 어디가 있습니까? 대구라고 하겠죠.
사실은 대구가 중심이 아니에요. 대구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그거는 안 됩니다.
그저 자주 중심이 되었던 곳이지, 중심이라고는 이 땅에 없어요.
중심이란 걸 하나님이 이 땅에 용납을 하지 않았어요. 돌아갈 곳이 없어요.
히브리서 11장 말씀처럼 돌아갈 곳이 없게 만들어요.

중심이 있어 버리면 심리적 안정이 되고 이 세상에 눌러 앉고 싶어 하고
그 중심에 누가 앉아 있습니까? 그 사람은 스스로 우상을 지금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내 중심의 자리를 자주 전화하고 자주 돌아보라고 요청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딸아 너 시집가도 친정엄마 잊지 말고 자주 전화해라.”

성도가 이 땅에서 중심이 없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중심이기 때문이예요.
주님은 이 땅에서 정처 없으셨죠.머리 두실 곳 없죠.
지금 예수님이 어디가 계십니까? 하나님 우편에 계시잖아요
골로새서 3장 3절에 우리의 생명은 땅에 있지 않고 어디 있다?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있는지라. 우리의 생명이 거기 간직돼 있다 했죠.

그러면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중심은 위에 있기 때문에
시계추처럼 중심은 위에 있고 밑에서는 진자의 추처럼 흔들리고 있는 거죠.
여기 갔다가 오늘은 내려갔다가 서울 대전 부산 찍고 목포로 그냥 그저 다니는 거예요.
정처 없이 거처 없이 그냥 가는 거예요. 중심이 없을 때만 가능하겠죠?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예수님 이야기에요. 인자는 머리 둘 곳 없다 했잖아요.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라.”
중심 없을 때만 우리는 내 중심이 아니고 예수님 중심으로 증거가 될 수 있어요.
중심이 예수님 계신 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중심이 없다는 말은 ”주께서 저를 구원했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주의 명령대로 구원된 것이라는 고백이죠.
”내가 믿어서 구원이 아니고 주님 홀로 이루셨습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그래야 환란 날에 우리가 버텨낼 수가 있습니다. 환란 날에.

-가락강의 ”명령으로서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