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대는 ‘달리는 세대’입니다. 아무도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시대 정신(세대)이라는 열차에서 함께 달리게 됩니다.
‘투기=투자’를 계속 요청하는 이 자본주의라는 시대 정신에서 누가 초연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한 다음에 행동에 나서는 세대가 아닙니다.
그저 누구나 강권당하고 제촉 당하고 촉구당하는 분위기입니다.
‘육’이란 예수님의 하신 모든 일이 ‘미련한’ 일이라고 보는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벌리신 모든 것이 미련하게 보지 않을 위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마음, 예수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인간들이 다 육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육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육과 영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예수님의 마음, 곧 영적 존재로 달라지지 아니하면 불가능합니다.
성령께서 십자가 사건을 앞장 세우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이란 인간이 신을 심판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육적인 안목이 노출되었습니다.
즉 육적인 안목을 가진 자들에 의해 참된 하나님께서 ‘미련한 존재’ 취급받고 살해당했다면
이는 인간들 스스로 ‘육과 영’을 구분하는 안목을 갖추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십자가 사건의 반복 앞에 자신을 세우지 않고서 자신을 본다면
자신을 마치 영적 존재인 것처럼 착오를 일으키면서 살고 있는 겁니다.
당연히 십자가의 비극적 상황은 오늘날도 여전히 반복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단독적행위가 이 세상에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같은 노선 안에 함께 결합되어 있는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악한 권세’, 혹은 ‘육적인 권세’ 안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이 육적인 세계에서 탈출을 시도해도 권세자가 가만두지를 않습니다.
참된 영적세계 대신 가짜 영적 영역을 만들어서 그 안에 들어오게 해서
그것으로 구원을 대체하는 용도로 종교생활을 권하게 될 것입니다.
즉 흔히 영적 세계라는 것이 실은 육의 확장 영역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육에서 올라오는 아이디어에 불과한 것입니다.
철학과 과학이 미처 따라 올 수 없는 초월적 영역을 따로 구상해놓고,
그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동원해서 집어넣어 줄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영업을 펼치는 곳이 성당과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천국은 결코 개인적 자격을 유지하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자신의 주체성을 유지한 자을 거절하고 거부하는 곳에 천국입니다.
즉 자신이 자신을 설득하고,
교회에서 벌어지는 집단 최면 효과에 부응해서
온갖 종교적 기능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첨가해서
기어이 본인이 사는
그런 세계는 천국이 아닙니다.
육에 근거해서 벌러는 육의 축제판일 뿐입니다.
-주일낮 설교 ”육에 속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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