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2014년 9월 12일 오전 07:42(새영 새마음)

아빠와 함께 2014. 9. 12. 08:40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굳은 마음은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해 보겠다는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이 육신으로서 율법을 지켜보려고 모든 시도를 다 했는데도

율법을 지키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만 유발할 수밖에는 없었다는 그 시점에서

새 영을 준다는 이 예언이 나왔음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렇기에 새 영을 받았으니 이제 새롭게 나의 가치, 나의 행함의 의미를 새롭게 시작해 볼까,

이렇게 나오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새 영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새 영을 줬다는 이것은 우리가 요청해서 주신 것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찾아오신 거예요.

일방적으로 찾아와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낚아채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서에 일방적으로 맞추어서

주님의 레시피가 우리 온 몸에 쏟아져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새 영을 받은 사람이 할 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레시피, 하나님의 이런 요리법에 의에서 나는 다루어졌고 장식되었고

오늘 하루도 주님의 요리하심에 걸려들어 이렇게 관리되었다,

주께서 이런 일들을 벌이셨는데 이런 일들이 성경에 다 나와 있더라,

성경에 이미 나와 있는 계획들이 차질 없이 우리 자신에게, 성도에게 퍼붓더라,

그 고백을 하시면 되는 겁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는 참으로 쉬운 이야기에요.

본인이 해야 될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 쉽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 하면

“목사님, 그것 달성하는데 우리 쪽에서 뭘 하면 됩니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주님께서 새 영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는 것은

천국가고 싶은 사람 모집해서 천국 보내주는 것이 아니고

로마서 9장의 말씀대로 인간의 모든 시도나 달음박질, 노력이나 기대나 애탐, 그런 것과 관계없이

천국 갈 사람은 따로 주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확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확정되었다는 취지를 듬뿍 담은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는 것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나서서 예수님을 영차, 하고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성령께서 성도를 다룰 때 필히 쉬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고
늘 우리를 예수님 죽인 것을 우리 몸에 뒤집어 씌워서 우리를 죽은 자로 만드는 겁니다. 

 

사도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출세와 권리를 주장하고 유지했습니까?

베드로는 원치도 않는 길을 간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그렇게 만들어서 내가 원치도 않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콩 내놓으라, 팥 내놓으라, 내 인생 왜 이렇게 조져놓았습니까, 그렇게 하지를 않아요.

왜? 부드러운 마음이니까. 우리는 지옥가도 할 말 없는 마음이니까.

흙인 존재를 하나님의 성령의 뜻이 있어서 성령을 줬다면 우리는 주님의 뜻만 나타난다면 우리는 오케이, 대 만족, 대 만족입니다.
가끔, 가끔이 아니라 늘 상 우리는 내 주장이 나오지만

그 때마다 주께서는 또 포수처럼 곰 옷을 뒤집어쓰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우겨 쌈을 당하게 만들어요.

세상 좋아하면서 남에게 기죽지 않겠다고 까불다가 된통 터지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낮추면서

다시 한 번 주님이 살려내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사는 방식으로 주께서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 다시 깨닫게 하시는 거지요.

이것은 바로 에스겔 36장에 나오는 이 예언이 지금 현실화 되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 말씀이 그저 이야기로, 문자로 끝나지 않게 하옵소서.

실제로 활동하는 실제 이야기고 현실인 것을 우리가 놓쳤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말씀대로 모든 것이 운영된다는 것을 감사히 받을 수 있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수요예배 설교 "새 영,새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