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요13;20)
사람은 죄인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주님만 의인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안할래, 가 아니라 죄인인 것 맞는데
죄인을 불러다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통로, 파이프로 사용되는 그 대상을 가지고 진짜 교회라고 해요.
그래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라고 할 때
그 주님이 보낸 자가 잘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복음, 복음 해서 잘 가다가
끝에 가서 다 가짜로 드러나는 이유가 복음을 안다고 해서 잘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복음을 안다고 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수입과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로 잔소리를 많이 듣고 지적질을 많이 당해야 돼요.
왜냐하면 지적질을 많이 당할수록 그 입에서는 오직 예수님만 토해지고 고백되어지기에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기능이 더 중요한 거예요.
말씀의 기능. 나를 영접하는 것이 주님을 영접한 것이 되려면 얼마나 우리가 평소에 얇아야 되겠어요?
습자지보다 더 얇아야 돼요.
옛날에 나오던 카라멜에 덮였던 먹는 습자지 있잖아요. 그것보다 더 얇아야 돼요.
햇빛에 비추면 다 비출 정도에요. 있어도 없는 존재가 돼야 돼요.
사도가 늘 이야기했던 겁니다. 나는 있어도 없는 존재라고.
얇아지려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 다다미돌 위에 놓고 쳐야 되거든요.
옛날에 어머니하고 할머니하고 두 분이 살림 도맡아서 했어요.
일하시는 할머니도 있었지요. 세분이 이불 홑청 풀 먹인 것 두드립니다.
처음에는 각자 두드리지만 공명현상에 의해서 가락이 맞아요. 그게 얇게 뜨인다고요.
음식도 두드려서 요리하는 게 있잖아요.
하얀 뿌리 종류, 그게 두드려서 다 갈기갈기 찢어져야 되는 겁니다.
찢어질 때 먹는 사람은 뭐라 합니까? “야 참 맛있다.” 하지요.
얼마나 찢어졌으면 자기의 겉 맛이 안 나오고 다 찢어져야 나오는 그 속맛이 나오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속에 자신의 십자가 피를 담아두시고 그것을 드러내려 하십니다.
그 십자가 피를 드러내시기 위해서 외부는 찢어져야 되는 겁니다.
열두 사도들과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보세요. 예수님 만나고 나서 가족이고 뭐고 다 찢어졌어요.
하얀 뿌리로 하는 음식, 더덕이지요. 그걸 두드려야 진짜 맛이 제대로 나오잖아요.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가지고 팹니다. 늘 패는데 팰 때
“너는 너 때문에 사느냐? 아니면 너 말고 다른 분에 의해서 살아가느냐?”를 늘 확인시키거든요.
늘 두드려야 돼요. 우리는 얻어맞는 재미로 살아야 되는 겁니다.
나를 그냥 보내지 않고 두드려 패서 인생을 완전히 갈기갈기 찢어요.
요새는 청바지도 일부러 찢어서 입는 사람이 있던데 걸레같이 찢어서 세상에 보내서
“너를 영접하는 자는 곧 나를 영접함이라.” 그렇게 일치시키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강 "참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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