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진

내가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

아빠와 함께 2014. 6. 6. 09:48

[2014년 3월 모임] 에베소서 3장-내가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믿음의 글

박윤진 | | 조회 14 |추천 1 | 2014.06.01. 15:15 http://cafe.daum.net/holyyounger/EodA/171 

아래 두 구절을 읽어보라.

 

에베소서 3:3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에베소서 3:17

믿 계시 하옵시고(하략)

 

계시만 보이니 계시만 읽힌다. 그럼 두 계시는 같은 뜻일까? 앞뒤 문맥이 없으니 알 길이 없다. 이 상황에서 다소 의도적인 질문까지 던져보자. 두 계시는 같은 뜻일까요, 다른 뜻일까요? 대부분 같은 뜻이라고 대답한다. 뭔가 미심쩍지만.

하지만 양자는 전혀 다른 계시다.

 

에베소서 3:3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에베소서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 하옵시고(하략)

 

이제 전후맥락이 분명해졌다. 앞의 계시는 '신이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보여 알게 한다.'라는 뜻이고, 뒤에 계시는 있다의 존칭형 어간이다. 우리는 앞의 계시를 이렇게 알고 있다. 부족한 정보만 알면 구원받는데 필요한 정확한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 본 뜻을 숨겼던 신이 알리고자 설명했는데 인간이 이해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바울조차 아래와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에베소서 3:4)

 

바울의 편지를 교회의 성도들이 읽으면 바울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는지 못 깨달았는지 알 수 있단다. 결국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아닌가? 소위 그 사람이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구원 판정을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기준을 캐내서 암기하여 그대로 읊조리면 구원받은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아래의 구절은 어떤가?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에베소서 3:5)

 

위 말씀의 요지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았다고 판정하는 그 기준이라는 것이 성령으로만 나타나지 사람의 아들들은 알수 없도록 하나님쪽에서 조치하셨다는 것이다. 계시는 몰랐던 전후맥락을 보충하여 그 뜻을 분명히 알게 되었음이 아니다. 성령의 씨냐, 사람의 씨냐의 문제다. 출생의 문제이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계시에 대하여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더 많은 정보만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우리에게 성령은 단언한다. "씨가 다르다!"

 

당연하지 않을까?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셨는데(엡 3:9), 그것이 인간이 가진 언어를 통해 전달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무엇을 근거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주장했을까? 아래 구절에 그 해답이 있다.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3:11)

 

꼭 이런 식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나 비밀을 우리가 알수 있을 것처럼, 지킬 수 있을 것처럼 쓴다. 하지만 한결같이 그 가능성은 단 한 곳이 독점하고 있다. 바로 십자가다. 예수 안이다. 씨가 다르다. 그래서 인간에게 원성을 산다. 속았다, 거짓말이다, 원래부터 없었다 등등.

 

그리스도의 비밀은 십자가를 말한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주님께서 살고 자신은 죽은 자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쓴 그 어떤 말에도 현혹되지 않는다. 죽은 자가 무엇에 현혹되겠는가? 이것이 바로 바울의 자유로운 글쓰기의 원천이다. 바울 서신의 각종 '~하라'와 '~하지 말라'는 바로 이런 샘물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명령들에 대한 해석과 다양한 실천방법은 다시 십자가안으로 부어져 주님의 살과 피에 의해 용서받는다. 결국 모든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이루어져 감을 만끽하게 된다.

예수안은 이런 곳이다. 사람의 아들들이 배우고 실천하는 곳이 아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 태어난 자들의 유일한 DNA이다.

 

믿음이란 이런 예수안에 있는 자의 반응형식이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일 수 밖에 없다. 예수안이란 이런 곳이다. 사람의 아들들의 믿음, 지성, 이성, 양심이 모두 죄로 토설되어 나온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무엇인가는  오직 십자가뿐이라며 그 사랑을 말하게 된다. 죽은 자가 생명을 알게 된다. 죽은 자가 생명을 증거하게 된다. 그제서야 사랑받은 자와 사랑받지 못한 자의 차이를 만들어내신 하나님의 지혜에 놀란다. 이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기도한 것이 아닐까.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