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꾸만 자신이 높아지는 것을 생각합니다만 하나님은 사람들을 낮추시려 하십니다.
방향이 반대 방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봐서 하나님의 일의 핵심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입니다. 제물이란 제사 작업에 쓰여집니다.
제사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이란 자기 사람을 하나님의 제사법에 따라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평소에 어떻게 하던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과는 정반대로의 성향입니다.
‘죽을 수 없다!’는 게 사람의 고집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언약에 죽음으로 합류된 자만이 천국 간다’는 식으로 나오십니다.
그렇게 되려면 상황 자체를 ‘나의 상황’으로 따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예 ‘주님이 친히 조성하신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즉 ‘주님께서 바칠 제물’에 부합되기 위해 성령에 의해 적절하게 조성된 상황이 현 자신의 상황이라고 인정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생각해놓은 죽음말고 주님에 의해서 생각해놓으신 죽음으로서 구원받을 만한 ‘순수’을 발생하게 됩니다.
참된 극한 순수란 죽음입니다. 제사법에 의한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원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허락된 최후의 광경은 죽음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을 인간이 보게되는 것도 자기 죽음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최후의 어두움입니다. 곧 하나님의 저주요 심판입니다.
인간들이 기대하는 천국은 차라리 함정입니다. 거기서는 ‘제물로서의 인생’이 나타나지 않기에 구원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의 코스는 필히 ‘제물로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을 거쳐야 합니다.
착하게 살아라 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죽여주심 속에 실려있는 ‘최후의 저주’를 맛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받았다는 것은 남들보다 먼저 망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똑같이 보이는 일상이라도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사건의 연발로 느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는 하나님쪽에서 실시된 사건 안에서만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중요하니까. 내 몸, 내 인생이 중요하니까. 구경만 하려고 하는데
주께서는 구경만 하지 말고 너는 산 제물이 되어서 들어오라고 하는 거예요. “들어와! 이리 들어와.”
그렇게 불려 들어와서
주님의 심판에, 주님의 전쟁에 내가 나를 적으로 간주해서 하는 전쟁에 우리가 참전해서 내가 나를 치는 전쟁에
같이 참여하는 그것으로 제사 드리는 행위에 동참시킵니다.
“내가 너 싫거든.” 그런 뜻입니다. “내가 너 꼴 보기 싫거든. 너 죽이 될래. 묵이 될래.”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나한테는 없는 거예요. 우리 자신에게는 없어요. 우리는 평생을 통해서 내가 먼저고 그 다음이 남이에요.
도대체 어디서 나온 발상이고 이걸 누가 가르쳤어요? 이게 주의 원수, 마귀가 그렇게 가르쳤어요.
감사할 것은 뭐냐, 그것을 알게 하는 상황을 유발시켜 주셨다는 겁니다. 유발시킨 거예요.
내 복수가 아니고 주님의 복수가 따로 있다는 사실, 주의 복수가 따로 있고 우리는 거기에 참여한 겁니다
-로마서설교 "제사장직무"
'내 생각 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년 6월 6일 오전 09:23 (0) | 2014.06.06 |
---|---|
2014년 6월 6일 오전 06:36 (0) | 2014.06.06 |
2014년 6월 4일 오전 09:12 (0) | 2014.06.04 |
2014년 5월 29일 오후 08:44 (0) | 2014.05.29 |
2014년 5월 27일 오전 08:30 (0) | 2014.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