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사만사천
2026년 9월 20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7:2-8
(7: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7: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7:5)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8) 스블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천사의 선교나 전도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에서 빠져 나온 내용을 가지고 여전히 시간이 흐르고 있는 이 세상을 향하여 일하게 됩니다. 이 작업을 위하여 잠시 정숙할 것을 바람을 일으키는 천사에게 지시합니다. 분주함과 요란함 속에서 ‘시간이 빠진 요소’의 복음을 천사를 알리며 일합니다.
그 일은 바로 천국 백성에게 도장을 찍는 일입니다. 이 도장을 찍는 차원은 모든 시간이 종결된 사항에서 나타나는 결과에 해당됩니다. 시간이 이미 지나간 내용이 도장 안에서 포함되어 있으니 천사로부터 도장을 받은 그 존재의 운명을 시간을 초월해서 확정된 겁니다. 이점을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간결하게 표현해주십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 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1-4)
곧 시간이 완료되면 열매 맺음도 완료되고 열매없는 가지 처리로 완료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여기는 우리는 이 하나님의 열매에 무슨 내용이 품어져 있기에 열매로서 조금도 하자가 없는 걸까요? 우선 숫자로 하나님께서 나타내어 주십니다. 숫자로 나타내셨다는 말은 더는 인간의 이름이 지닌 개성은 하나님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개별적 개성 말고 그 대신 숫자로 표현하십니다. 이는 숫자가 특정 대상을 규정한다는 것은 그 인간의 육적 본질은 ‘죽은 자’로 다루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루어진 숫자가 바로 ‘12’입니다. 그리고 원형적 숫자인 ‘12’로부터 새끼를 치면서 모든 천국 백성의 수에 부합될 때에 멈추게 되는데 그 최종점을 숫자로 표현해서 1,000이 됩니다.
그래서 12×12×1000=144,000이 됩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12가 천국 백성의 원형적 숫자가 되는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부여하고서는 직접 죽여버린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야곱입니다. 그때 야곱에게는 이미 11아들이 있었고 그리고 나중에 한 아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 32:26-30) 이 대목에서 야곱이 하나님의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언약을 지닌 야곱이 하나님과 만나는 일은 인간 속에 하나님께서 쳐들어 온 바가 됩니다. 그러면 야곱이라는 인간은 죽게 되고 그 죽게 된 인간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사시면서 하나님으로 일하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야곱이라는 육신을 통해서 태어난 12아들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즉 육적인 인간이요 육적인 자식을 가진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서 육적인 것은 죽고 영적, 곧 하나님이 안에서 실질적으로 살게 되는 존재로서 다루어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는 이스라엘 자체가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되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혈육적으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전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야곱 후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언약을 주시게 됩니다. 이는 ‘다윗의 자손’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다’는 언약입니다. 이를 분명히 설명하게 되면 ‘다윗의 자손이 되시는 왕’이 ‘이스라엘’이라는 백성을 구성할 자격과 권한을 지니신다는 말이 됩니다. 여기서 야곱 언약에 추가되는 사항으로 다윗의 언약이 천국 백성을 만드는데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시편 87편 전편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 그 기지가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셀라) 내가 라합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셀라) 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는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시편 87:1-7)
천국의 기초되는 구역이 ‘시온’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윗 언약에 의할 것 같으면 전에서 이스라엘은 12지파에게만 해당되는 자만이 거룩한 시온을 찬양을 자격이 있었던에 그렇지 않고 그동안 이스라엘과 괴롭히고 압박을 가했던 다른 이방민족까지 시온 중심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조건에 부합되는 자가 다윗 혈통의 왕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왕이 등장하므로서 ‘천국 백성의 근원’이 성립된다는 겁니다. 야곱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하나님의 천사가 12지파의 가치 교체를 정당화했다면 다윗 언약에 와서는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이방민족 내에서도 천국 등록자가 생겨난다는 겁니다.
이는 기존의 모든 혈통적 조건으로부터 다윗 후손으로 오신 왕께서는 벗어나 계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12×12×1000이라는 형식 안의 내용에는 다윗이 왕으로 계실 때의 구성 요소가 가미되어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역대상 24:17-19에 보면, 다윗 왕의 위치가 24 순번으로 해서 돌아가는 제사장들에 의해 둘러쌓여 있습니다.
즉 언약에 의한 왕은 필히 24라는 숫자로서 자신의 이름으로 대신하는 존재에 둘러쌓여 구조다는 말입니다. “열일곱째는 헤실이요 열여덟째는 합비세스요 열아홉째는 브다히야요 스무째는 여헤스겔이요 스물한째는 야긴이요 스물둘째는 가물이요 스물셋째는 들라야요 스물넷째는 마아시야라 이와 같은 반차로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희 조상 아론에게 명하신 규례대로 수종들었더라”(대상 24:15-19)
이는 24는 제사장들 뿐만 아니라 찬양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물한째는 호딜이니 그 아들과 형제와 십이 인이요 스물둘째는 깃달디니 그 아들과 형제와 십이 인이요 스물셋째는 마하시옷이니 그 아들과 형제와 십이 인이요 스물넷째는 로암디에셀이니 그 아들과 형제와 십이 인이었더라”(대상 25:28-31)
요한계시록 5:7-10에 보면,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왕과 그 주변의 위치는 다윗의 통치구조로 미리 보여준 식대로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대자연 환경은 천지창조에서 시작했기에 숫자로 7로 표기되지만 그 내용은 인간들이기에 12 숫자 중심으로 표기됩니다. 따라서 완결된 천국의 모습은 야곱언약+다윗언약으로 구성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언약 달성에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우리의 행함이 낄 여지가 없음을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5강-요한계시록 7장 2~8절(십사만사천)260920-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7장 2~8절입니다. 신약성경 381페이지입니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아멘.
여기 두 가지로 이렇게 나누어서 생각하면 됩니다. 활동은 천사가 해요. 천사가 활동한다는 것은, 천사는 뭐를 전혀 못 느끼느냐 하면,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은 천사에게는 성립되지 못합니다. 전도나 선교는 시간이 멈췄다고 생각할 때 움직이는 것이 전도와 선교입니다. 그래서 전도나 선교는 이미 모든 것이 종결된 상태인 것을 전제로 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직 시간이 흐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서 천사들은 뭐로 공격하느냐 하면, “흘러봤자다, 얘들아~ 끝났다!” 그게 전도입니다. 그게 선교입니다. 인간이 뭘 할 수 있느냐는 그런 것은 시간이 흘러봤자 그거는 전혀 소용없는,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주님이 다 이루었으면 그걸로 끝난 거예요. ‘주님이 이루신 것 속에서 우리와 관련된 것은, 그러면 어떤 것이 관련돼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그거는 요한복음 15장에서 너무나 명쾌하게 주님이 미리 알려줬습니다. 제가 이제 말씀드릴 테니까, 이게 시간이 있는지 없는지를 여러분 한번 구분해 보세요.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1~2절)
이 대목에서 시간 요소가 어디 있습니까? 주님이 차츰차츰 포도나무 되는 겁니까? 아니죠. 예수님의 아버지가 차츰차츰 아버지가 돼 가는 거예요? 지금은 덜 아버지였지만, 진짜 나중에 가야 아버지가 되는 겁니까? 아니죠. 관계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에요. 삼촌과 조카 사이도 그렇잖아요. 알아서 삼촌 되고 조카 되고 그런 건 없어요.
이미 그 관계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겁니다. 시간 요소를 뺍시다. 우리 인생에서 시간 요소를 빼야 우리 몸 자체, 생활 자체가, 전도가 되고 선교가 되는 겁니다. 마치 천사가 움직이는 것처럼.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천사가 움직인다. 어떻게 움직이는가? 천사가 땅에 바람을 보고 하는 말이, “잠깐 기다려, 잠깐 스톱해! 설치지 마라.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모든 게 멸망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뭐냐. 시간과 구애받지 않고, 시간과 관련 없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도장을 받은 사람에게로 가서 도장 찍으러 가자. 도장 찍으러 가겠다. 이렇게 천사가 와서 도장을 찍습니다. 그게 인 맞은 사람입니다. 여기에 인맞은 사람들은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그의 열매가 되는 사람들”을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하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 13장에 비유도 똑같은 차원이에요. 씨뿌리는 비유에서 시간 요소를 빼버리면 간단합니다. “내가 씨를 뿌리매, 너희는 열매가 되었도다. 끝!” 내가 뿌린 씨앗이 열매가 되는데, 어떤 훼방자나 방해자가 더 이상 내 일을 중지시킬 수 없다. 실패로 끝날 수가 없다.
씨를 뿌리매, 씨 안에 열매가 있어서, 열매를 100배, 60배, 30배 맺었는데, 그 결과가 바로 하나님의 주님이 주신 열매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힘들게 살고, 스스로 자신은 참 괴롭게 산다는 이런 사람한테는 전도, 선교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맨날 자기 간증 집회하고 돌아다니죠. 어떤 분이 총신 교수까지 하시고, 신학 교수하시고, 신학 박사고, 키는 조그만 해서, 우리 다닐 때 신학 교수였는데, 그 사람이 지금 죽고 난 뒤에 천국을 봤다고 하면서, 간증 비슷한 그런 집회를 해서, 그게 지금 유튜브에 소개돼 있어요.
자기가 천국 갔는데, 며칠인지 몇 분 동안인지 죽었다고 하는데, 죽었다가 깨어나 보니까, 천국이 있고, 많은 목사들과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모여있더라. 그런 간증을 이렇게 들어 보면 이상한 게 있어요. 꼭 천국 못 오는 사람들 중에 유명한 사람들이 있어요. ‘조용기 목사는 천국 못 간다, 어느 목사도 못 간다’라고 왜 천국 못 가는 사람들이 조용기 목사가 천국 못 간다는 말을 대신 해야 합니까?
이건 자기 착각이에요. 죽었다가 지옥 가서 다시 깨어나도 그거는 간증이 아닙니다. 그거는 누가복음 16장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런 일이 없다고, 죽은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도 그거는 주께서 계시로 쳐주지를 않아요. 나사로가 중요합니까?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한 게 중요합니까? 나사로는 말씀의 완성자가 아니에요. 말씀의 완성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시간이 끝났으면, 이미 끝난 거예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건질 때, 건짐을 받는 내 쪽에서 뭔가 살아서 뭘 보태고, 더하고, 이게 있으면 주께서 안 건집니다. 그거 왜 건지겠어요? ‘주여, 이렇게 하면 저는 앞으로 잘할 수 있겠죠?’ 거기에 시간 요소가 들어가는데, 왜 건지겠어요. 이미 시간을 끝낸 걸로 간주해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도장 찍어 가지고, 이렇게 구원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구원받고 난 뒤에, 우리는 중첩된 이중의 자아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이미 시간이 끝나서 우리의 생명이 하늘에 있는 생명 하나, 이건 시간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언제 죽어도 괜찮아요. 그다음에, 아직도 이러한 다 이루심에 대해서 훼방하고, 방해하는 용도로써, 우리의 시간에 접해 있는 우리의 육신, 이 육신 속에 있는, 빨리 벗어버려야 될 자아, 이렇게 두 개를 다 겹쳐서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죄 많은 죄인이고, 죄에서 의로 옮겼다는 거. 출발점과 도착 지점을 한꺼번에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직도 육신으로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니 마음대로 사세요’라는 뜻이에요. 네 마음대로 사세요. 그래야 우리 마음대로라는 게, 성경에서 어떤 식으로 죄라고 규정되고 있는가를 성경과 관련이 되거든요.
요한계시록의 오늘 본문 7장은 6장과 관련돼 있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리고 5장과도 관련돼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8절에 보면,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여기 장로들의 숫자가 나옵니다. 24명입니다. 이름은 없어요. 우리 인간의 이름은 시간이 있을 때나 쓸모 있는 것이지,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할 때나 있지, 이미 구원받은 사람한테는, 이거는 우리 이름이 주의 이름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미완료 이름이 완료 이름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에게 속했다는 자격으로 우리가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내게(자기 자신에게) 속한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이게 바뀌어져야 해요. 주님의 이름으로 호명이 되면서 구원받습니다. 호명될 때 어떻게 하느냐 하면, 12로 호명이 됩니다. 12로 호명되는 근거는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죽일 때, 누구를 죽이느냐 하면 야곱을 죽여요. 하나님이 죽인 인간 안에서 하나님은 그 인간을 가지고 자기한테 입혀서, 그 인간의 이름 안에서 자기 이름을 바꾸는 작업을 가지고 살아납니다.
하나님이 죽인 이 사람 이름이 야곱이고, 그 야곱을 죽이고 야곱의 이름을 바꿔버리죠.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그러면 이스라엘로 바뀌어 버리면, 나머지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이 뭐로 바뀌느냐 하면, 하나님 백성의 12지파로 바뀌게 되죠. 12지파, 이스라엘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로 행세하는 예수님께서, 제가 지금 구약 성경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진행 중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구약 성경을 염두에 둬야 해요. 야곱의 육적인 열두 아들을, 아버지 되는 시조 야곱을 죽임으로써, 인간적인 열두 지파의 육적인 요소는 죽은 걸로 간주 되고, 그 아버지 자리가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뀜으로써, 덩달아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로 바뀌어져서, 지금 구약 전체를 이야기하려니까, 여러분이 감당해야 해요.
왕 되심, 메시아의 왕 되심에 예속이 되는 이스라엘 왕국의 구성원이 되는 겁니다. 한꺼번에 이스라엘 역사, 12지파의 역사가 확 지나갔죠. 초반에 야곱 때는 아버지와 육적인 열두 아들 관계, 그런데 그때는 이스라엘 없어요. 그냥 야곱의 식구들이에요. 그런데 그들을 애굽에 집어넣지요. 애굽에다가 집어넣으면요, 시편 87편 6절을 보면, 이 말이 이스라엘 역사를 함축해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시편 87편 1~7절까지 전체를 읽어 보겠습니다.
“그 기지(기초)가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셀라), 내가 라합(애굽)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셀라), 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는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이게 시편 87편인데, 이게 무슨 뜻이냐 하는 거예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요, 시간이 흐르는 이 땅에, 예루살렘 있잖아요, 유다 이스라엘. 그 이스라엘, 그걸(시온) 지켜낸 이스라엘이나 그걸 공격한 주변 사람이나 그 시온,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시온이 나중에 하늘로 올라가요. 하늘로 올라가서 육에 속한, 이 지상에 속한 인간들이 천상의 시온, 예루살렘의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해서, 순서상 먼저 땅을 통해서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게 되는 겁니다. 땅을 통해서.
그런데 올라갈 때, 조건이 있어요. 그냥 올라가는 게 아니고, 조건이 있습니다. 그거는 뭐냐 하면은 야곱을 죽여서 이스라엘을 만들었던 조건에 같이 동참하는 조건 하에, 그 사람이 유대인이든, 필리핀 사람이든, 중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북한은 좀 곤란한데, 그냥 북한도 넣어줍시다. 북한이든, 나고야 사람이든 관계없이, 육을 제물로 삼아서, 육이 제물이 되어서 영적 존재가 되는데, 그동안 이스라엘 역사를 충실하게 활용하셨다는 말이에요.
지금 우리가 보는 본문이 요한계시록을 보잖아요. 그 앞에 뭐가 있느냐 하면, 이스라엘 역사가 있고, 시편이 있다는 이 말이죠. 그걸 제가 지금 한꺼번에 말하는 거예요. 한꺼번에. 그렇다면 인간이 이용당했네요. 그렇죠. 이용당했죠. 피조물인데, 이용당해야죠. 이용당하는 걸 감사해야죠. 그럼, 이스라엘이 하나님 믿고 구원받으려고 한 것도 이용당한 겁니까? 이용당한 거지요.
그러면 이스라엘을 핍박해서 저주받았다는 그 사람도 완전히 지옥 가는 건 아니군요? 아니지요. 그들도 악한 역할로 이용당했으니까. 영화에 나쁜 역할로 들어갔다고 해서 개런티(출연료) 안 주고 그런 거 없어요. 나쁜 역할도 다 개런티 (guarantee) 줍니다. 출연료 다 주거든요. 왜? 그 역할을 했으니까요. 인간 중에 착하다, 악하다고 하는 것은 선악 체계이기 때문에, 그건 마귀가 집어넣은 거고요.
착하면 되겠다든지, 인간이 어떻게 해서 천국 가는지, 이 질문은 애초부터 성립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 이용하는 건데, 거기에다가 왜 의미를 두냐는 거죠. 이용하는데. 하나님께서 천국에 등록시키는 그 숫자 등록할 때, 그 원형을 이스라엘에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 12지파가 되었다는 그 점을 주께서 참작해서, 이 세상에 어떤 족보든 관계없이 천국의 백성, 12지파가 되게 하셨다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1만 2천이요”라고 하는데, 여기서 숫자가 몇 명이냐면, 12예요. 근데 아까 요한계시록 5장 8절에 보면, 장로들 숫자가 12가 아니고 24명이에요. 왜 24명이냐? 왜 12명이 아니고 24명이냐? 24명은 뭐고, 여기에 또 14만 4천은 뭐냐? 14만 4천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오늘 14만 4천이라고 해놓고, 그걸 오늘 본문에서, 5절~8절까지 풀이해 놨어요.
거기에, 1만 2천 곱하기를 열두 번 하니깐(12000*12) 14만 4천이 되었다고 아주 친절하게 소개했단 말이죠. 그러니까 14만 4천이라고 보지 마시고, “12가 12로 새끼 쳤다고 그렇게 보세요”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면 처음에 12에서 새끼 치는 거, 원형 12, 12 지파죠. 12 지파가 새끼 친 그것이 12가 되겠죠. 합쳐서 뭐가 되느냐. 24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24가 이미 구약에서 어디에 나오냐 하면, 역대상 24장에 보면 24라는 숫자가 이미 나옵니다. 나오는데, 그 24라는 숫자가 나오는 조건이, 다윗이 왕이 되어서 다윗 왕국이라는 조건 하에, 24가 되는 거예요. 역대상 24장 15~19절에 보면, “열일곱째는 헤실이요 열여덟째는 합비세스요 열아홉째는 브다히야요 스무째는 여헤스겔이요 스물한째는 야긴이요 스물둘째는 가물이요 스물셋째는 들라야요 스물넷째는 마아시야라 이와 같은 반차로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희 조상 아론에게 명하신 규례대로 수종들었더라”
역대상 24장에, 뭐 첫째, 둘째, 셋째,...스물 넷째까지 제사장이 24차례 번갈아 가면서 그렇게 했고, 찬양자들도 마찬가지인데, 25장 28~31절에 봐도, “스물한째는 호딜이니 그 아들과 형제와 십이 인이요 스물둘째는 깃달디니 그 아들과 형제와 십이 인이요 스물셋째는 마하시옷이니 그 아들과 형제와 십이 인이요 스물넷째는 로암디에셀이니 그 아들과 형제와 십이 인이었더라”
근데 요한계시록에 5장에 5절에 보면, 유대 지파의 사자가 그 두루마기 책의 인을 얼마를 떼시는가 하면, 일곱 인을 떼신다고 했어요. 그래서 지금 복잡한 거 정리합니다. 7이라는 숫자는 환경을, 주께서 다 이루신 천국의 환경을 이야기할 때 7이고, 그 7이라는 환경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12라는 것이 중심이 되는 거예요. 12.
‘12는 어디서 나왔습니까?’라고 물으면, 야곱의 아들이 열둘이라서 12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하나님께서 천국을 구성하는데, 왜 굳이 아브라함도 있고, 이삭도 있는데, 왜 야곱의 아들 12명을 가지고 중심으로 삼았습니까?’라고 물으면, 새로 구원받은 이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왜 다른 민족 놔두고 이스라엘 민족입니까?’라고 물으면, 이스라엘은 육적으로 왕이 있고, 육적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왕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 잠정적으로 시간이 “다 이루었다”라고 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흘러가면서 발생된 언약적 나라가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로 이스라엘 백성도 구원받고 나머지 이방인 중에서도 구원받는다. 오케이?
그건 인정한다면, 그러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해서 거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그 취지는 뭐냐? 그 취지는 에스겔 제일 마지막에 나옵니다. 에스겔 48장 10절에 보면,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찌니 북편으로 장이 이만 오천척이요 서편으로 광이 일만척이요 동편으로 광이 일만척이요 남편으로 장이 이만 오천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라고 쭉 나와요.
에스겔 마지막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을 이렇게 보여주는데, 그 이스라엘 땅이 무슨 중심이냐 하면 성전 중심으로 돼 있어요. 성전 중심으로, 그때 12지파가 땅을 분배받는 식으로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 중심이 뭐냐? 시온이고 예루살렘이에요. 이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열매로 인을 박아서 구원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에 의해서 자기 백성을 모집하는데, 그 모집하는 중심이 되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분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천국을 이루십니다.
근데 이스라엘 왕이 되려면 다윗 언약이라는 거, 예루살렘에 거처를 두고 있는 왕이 등장하는 그걸 최정점으로 해서, ‘천국의 백성들은 이런 방식으로 구성됩니다’라고 하는 설계도는 전부 다 갖추었어요. 다 갖춘 겁니다. 그러면 그 다윗에게 약속하신 예루살렘의 왕 되심이 다윗 언약대로, 딴 언약 말고 다윗 언약대로, 예수님께서 다윗 언약에 의한 왕으로서, 다윗의 자손으로서 오셨습니다.
그럼, 왕이 왔으면 그다음에 남은 것은 뭐냐. 왕이 왔으면, 이스라엘 백성 모집의 원칙이 있거든요. 그 원칙이 바로 구약 이스라엘 때, 12지파 이스라엘을 형성한 그 원칙의 중심점에서, 왕이 먼저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는 왕이 그들에게 인을 박아서 내 백성이라고 구성을 하게 되면, 천국은 끝난 겁니다. 천국은 완성되는 거예요. 그게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거기는 완전히 12예요.
문도 12개고, 그 문은 열두 사도의 이름이 거기에 있다고 이렇게 나와요.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계21:12~14)
그래서 어떤 사람은 왜 24냐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어요. 구약에 열두 지파의 12하고, 신약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12라서, 그걸 더하기하면 24가 된다는 거예요. 더하기하든, 빼기하든, 그것은 더하기라고 하지 말고, 원형이 12지파이고, 위에 원형 맞추어서, 이방인들이 거기에 맞추어서 같이 겹친, 이 육의 것은 이제 필수가 되니까, 원형 그대로, 주께서 그 원칙대로, 이방인 가운데서도 12라는 원칙을 살려서 구원받으니까, 이게 12안에 중첩된, 그렇게 모집된 주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자, 그게 바로 24 장로라고 하면 되고요.
그들의 파생된 구체적인 것은 바로 14만 4천이라는 이름의, 언약의 사람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열매는 예수님의 왕 되심에 따라서, 구약 이스라엘에 만들어졌던 그 원리에 따라서, 정확하게, 어떤 누구도 취소되거나 빠진 거 없이 완벽하게, 이미 다 하늘나라에서 설계도는 끝마쳤습니다. 끝마쳤어요.
그래서 주님의 다윗 언약, 주님은 왕이시라는 언약, 야곱의 열두 지파의 언약대로,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 왕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성하는 것이 나의 행함도, 나의 열심도, 시간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반성함도 아니고, 이스라엘에게서 왕이 뽑혔던 그 언약대로 저희들을 백성으로 삼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예수님이 언약대로 이루어진 우리의 왕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천국 백성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언약 달성에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우리의 행함이 낄 여지가 없음을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