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욥기에 보면 이런 게 있어요. 마지막에 폭풍 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서 욥에게 대화하는데 그 대화 내용이 뭐냐?
“욥아”
“예”
“저 들소에게 자아가 있는가?”
“없습니다.”
“해에게 자아가 있나?”
“없습니다.”
“황무지에 자아가 있나?”
“없습니다.”
“그러면 채소에 자아가 있나?”
“없습니다.”
욥기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식물이든 동물이든 간에 해와 달과 별까지 그 특징이 뭐가 없느냐? 자아가 없어요. 자아가 없는데 누가 기르시느냐? 친히 주께서 관리하시고 친히 주께서 길러주시는 거예요. 이게 이사야 1장 2-4절에도 나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자식을 누가 양육합니까? 부모가 양육하죠. 부모가 양육한다는 말이죠. ‘따라서 이스라엘아, 네가 자아가 있어야 돼, 없어야 돼?’ 그걸 묻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네가 독자적으로 눈이 밝을 게 있어야 돼, 없어야 돼?’를 묻는 거예요. 독자적으로 자기의 눈이 밝으면 안 돼요. 왜? 주께서 친히 양육하고 기르시면 기르신 그대로 있으면 되는 거예요.
내가 나를 기르고, 내가 나를 잘 판단해서 내 인생 산다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부하는 인간, 저주하는 인간상이에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한다’라는 것. 그러면 참새는요? 들풀은요? 해와 달은요? 주께서 운행하잖아요. 인간은 왜 안 돼요? 안 되는 이유가 뭐냐?
인간은 악마의 포로가 되어서 악마의 자아가 인간의 자아로 들어왔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뭐든지 자기 쪽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따로 형성하는 식으로 ‘나 눈 밝다. 나 눈 되게 밝거든!’ 이것을 자랑질한다고 신경 쓰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 자아들이 모인 것이 뭐냐? 이 현실 세계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걸 ‘상징계’라고 했는데 상징계란 말은 굉장히 어렵지만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상징’이라는 말은 자연스럽지가 않다는 거예요. 인위적이라는 거예요. 뭐가 인위적인데? 이 세상에는 각자 각자 자기 의미가 있거든요. 그 의미를 유통하는 세계가 바로 상징계의 세계입니다. 의미가 있으면 안 되는데도 내가 있기 때문에, 나한테 의미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인간들 저희끼리 의미를 만들어낸 세계가 상징계라 하는 겁니다.
의미를 소통하는 세계, 그 의미는 언어를 통해서 유통되는 세계. 그 의미는 일방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그 세계는, 이 현실 사회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냥 허상입니다. 가짜입니다. 가짜 인간들이 의미를 억지로 만들어낸 세계, 이 세계가 오늘날 인간 사회, 인간 세상입니다. 특징은, 아무도 자기 외에는 나를 기르시는 분을 인정하지 않아요.
왜? 너도 나도 다 눈이 밝기 때문에, 눈이 밝아서 ‘내 인생은 내가 단도리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게 바로 범죄 한 이스라엘이고 이게 아람 군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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