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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감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식으로 살아가는 노선

아빠와 함께 2026. 5. 11. 10:43

천국 가는 노선은 뭐냐? 마태복음 23장 35절에 보면,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이것은 무슨 이야기냐 하면, 지옥 가는 사람에게는 참 특이한 몸인데 그 몸은 무슨 몸이냐? 안에 들어있는 피를 바깥으로 드러내는 식으로 살아가는 몸이 있어요.

창세기 4장에 아벨, 그리고 제사장 사가랴, 요아스 왕에게 맞아 죽은 그 사가랴, 여호야다의 아들 사가랴의 피, 선지자의 피입니다. 그 노선, 그 DNA의 계열에는 전부 공통점이 있어요. 뭐냐? 자기 속에 있는 죄를 바깥으로 드러내는 거예요. 자기 안에 있는 죄 ‘아담에서 흘러 내려오는 이 아담의 피는 죄악 된 피다.’ 곧 ‘이 죄악 된 피 + 죄를 알리는 몸.’

몸 있고 죄를 짓는 그것은 아니고요, 그것은 유교에서 말하는 거예요. 몸이 있고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 몸이 붙어 있는 식으로 나는 살아간다.’ 따라서 안에 있는 죄가 피 모습으로, 죄는 붉거든요, 죄가 붉은 피 모습으로 나왔다는 것을 드러내는 식, 안감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식으로 살아가는 노선, 그 노선에 누가 끼어드는가? 예수님이 같이 끼어들어서 자기 노선으로 전환 시켜버려요.

‘네 안에 있는 죄가 피로 나올 때 그 피에 내가 합류 해줄게. 그래서 이 천국 가는 노선의 마지막 모습은 내가 일괄해서 총괄적으로 보여줄게.’ 그래서 내 피를 십자가에서 쏟아버리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하나님이 만든 이 인간의 몸이 어디서 마귀의 몸으로 전환되었는가, 그 지점을 찾기 위해 율법을 준 거예요.

이것을 몸이 있는 인간에게만 시켰습니다. 천사는 따라오지도 못해요. 왜? 천사는 똑똑하고 대단하고 영광스럽지만 뭐가 없느냐? 몸이 없어요. 몸이 없으니까 예수님께서 대속할 건덕지도 없어요. 천사는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게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이웃을 한발자국 더 심화시켜서 close 더 가까운 관계로 만들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친구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3-15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이 말은, 천국에 간 사람은 몽땅 다 예수님의 친구며, 그 말을 달리 이야기하면 이 땅에서 예수님의 친구, 예수님의 이웃 빼놓고는 다 몰살당합니다, 몰살당해요. 하나님께서 천사하고 상대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람하고 상대합니다. 그것도 죄지은 사람하고 상대해요. 그냥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실 하나님의 기능이 부여 되는 겁니다. 죄인을 위해서 대속하시는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시는 거예요.

그분을 ‘주님’이라고 하고, 그 주님의 특징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약속에 담긴, 율법이지요, 그 약속에 담긴 내용을 이 땅에서 유일하게 완성시키는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의 그 완성으로 인하여, 친구가 될 수 없고 이웃도 될 수 없는데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된 겁니다. 이웃을 사랑하게 되면 나오는 결과물, 열매가 뭐냐?

‘넌 이제부터 내 친구’라고 이야기하고, 그래서 예수님에겐 친구고요, 그다음에 아버지한테는 뭐냐? 아버지한테는 예수님이 상속자인 것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천국을 같이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죠. 로마서 8장 15-17절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후사, 상속받는 상속자, 하늘나라의 상속자에 합류하게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