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5장에 제물을 아브라함이 쪼개지요. 쪼갠다는 말은 없음을 보자. <춘향전> 가사에 나오잖아요. ‘이리 오너라 앞을 보자.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하잖아요. 뭐 보자? 없음을 보자. 아브라함 너는 없음에서 있음이 돼야 되거든요. 없음, 있음을 아브라함은 인정 못해요. 그래서 아브라함에서 나올 수 없는 아브라함의 대행자가 나와요. 그게 누구냐 하면 이삭입니다. 이삭의 특징이 아브라함의 핵심을 차지해요. 본질을 차지한다고요.
그럼 아브라함은 뭐냐? 아브라함은 껍질이 돼요. 오늘 제목을 미리 정해봤어요. [껍질의 역량] 아브라함은 껍질이 되고 안의 속 실체는 누굽니까? 이삭이에요, 이삭.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은 누구한테 인수인계해야 돼요? 이삭에게 인수인계해야 돼요. 이삭을 불러놓고, “내가 하나님께 이러한 언약을 받았거든. 자, 이제 하나님은 네 차례다.”
그냥 말로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이삭을 내 손으로 죽여야 됩니다. 죽일 때 나 있음이죠. 이삭 있음이잖아요. 둘 중에 하나는 없어져야 돼요. ‘있는 내가 있는 너를 내가 없애줄게.’ 없애줌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어떻게 시작하는지 보자는 거예요.
그러면 유대인들이 구원받는 방법은 결과적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원을 못 받아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구원받는데 구원받는 방법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죠. “어찌할꼬?”
자기 손으로 죽인, 있는 내가 있는 나를 보존하기 위해서 하는 극단적인 행동은 메시아를 죽이는 방법이에요. 오신 메시아를 없애버리죠. 메시아를 없애버리면 나는 멀쩡하게 있고 있다가 없어진 분 누굽니까? 메시아죠. 그러면 있는 예수님을 죽였을 때의 인간의 행동은 나는 나를 계속 있음으로 보존해야겠다는 그 의지, 강력한 기대 이런 것이 뭉쳐져서 예수님을 없앴잖아요.
그러면 내가 없는 분이 나를 구원한다는 말은 이제는 역전됐지요. 없는 주님이 진정한 있음이고, 내가 있음은 이거는 사라져야 될 일시적 현상이라고 본 겁니다. 나 자신을. 있더라도 나는 진짜 있음을 훼방했던 방해했던 죄인으로서의 있음이라는 것이 결과적으로 도출되는 겁니다. 그 관계에 의해서 바로 그 양쪽을 다 채택하는 것이 구원의 능력이에요. 한쪽은 없는데 진짜 계시고, 한쪽은 나는 있는데 이건 가짜고. 그 있음과 없음, 가짜와 진짜를 연결시킬 수 있는 그 둘 사이를 매개하는 능력, 이게 바로 구원의 능력, 피의 관계, 십자가의 능력이죠.
“당신은 왜 삽니까?” “죄 짓기 위해서.” “당신은 왜 태어났습니까?” “죄 짓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접근 불가. 오늘 제목을 ‘접근 불가’로 할까? 껍데기의 역량이죠. 껍데기를 최고의 껍데기로 활용해주시는 거예요. 나는 돼지껍데기 별로 안 좋아해요. 하여튼 간에 주님께서 이 껍데기를 철저하게 껍데기로 육신이 있는 한 철저하게 이걸 사용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죄인이고 그 누구 못지않은 극악무도한 살인죄, 간음죄, 산상설교에 있는 모든 죄, 좁은 길로 안 가고 어디로 간다? 넓은 길로 못 가서 환장한 죄, 이 모든 잠재성, 잠복성 이걸 주의 말씀이 안 오면 이게 들춰지지 않아요. 천하의 바리새인 이걸 들춰낼 때 주께서 참 부지런히 저 같은 게 뭔데 부지런히 사용하셔서 주님의 연속성을 유지하시고 활동하는지 나는 죽고 내 안에서 주께서 일하는 것, 내가 믿는 것은 바로 그걸 믿습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있다는 그것을 바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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