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성도는 뿌리부터 머리끝까지 말씀이 통으로 들어있음을 나타냅니다. 즉 성도와 함께 계신 주님께서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내시는데 그 모든 일은 오로지 ‘다 이루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현존성의 양상입니다. 성도가 따로 일을 꾸밀 필요가 없이 모든 상황에서 주님께서 일을 벌리십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더는 자기를 위한 삶이 존재하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성도가 뭐냐. 기록된 말씀이라는 공간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고 거기서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자가 성도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죠. 예수님은 부활 되신 거예요. 미진한 일이 남아있으면 예수님은 아예 부활 되지도 않았습니다. 성도가 부활 되었다는 것은 부활 된 성도 안에 모든 말씀이 다 이루어진 거예요.
새로운 존재, 새로운 피조물 성도는 기초부터 위에 지붕까지 전부 다,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으로 통으로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서 검증할 수 있느냐. 그것은 그 사람의 몸에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어요. 통으로 기초부터 머리까지 전부 다 말씀으로 무장되었기 때문에, “다 이루었다”가 되었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동이나 일상의 사사로운 일 가운데서도 무엇이 섞여 나오느냐 하면 “다 이루었다”입니다. 평소의 우리 마음가짐이 통으로 말씀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떤 사태가 일어나도 “다 이루었다”라는 것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다 끝났죠.
성도는 네 것이 아니고, 내 것이라고 이미 다 이루었다는 확정, “너는 네 것이 아니고 내 것이다”라고 확정 지으신 그분이, 그냥 내 것이라고 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고 같이 계시면서 일을 벌여나가고 예상 못 한 상황이 터지면서 ‘함께 있음, 함께 있음, 같이 있음, 같이 있음’이라는 상황을 계속 드러내는 그런 상황 속에 성도는 놓여있습니다.
그래서 이건, 바로 성도 개인이, 개인의 계획, 미래 계획은 더 이상 없습니다. 하나하나, 전부다 “말씀대로, 말씀대로”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의 일환으로써, 하나의 양태와 양상으로써, “다 이루었다”의 하나의 파도로써, 물결로써, 사도바울은 그걸 체험하기 바빠요. 어떤 일이든, 내가 어디서 돌이켰느냐를 보는 거죠. 나는 딱 어둠이죠. 죄의 무게를 감당 못 해서 혼자서 자기 잘난 체하고, 그저 입만 열면 자기변명, 자기 핑계, 자기 의로움, 누구를 만나도 그것만 튀어나오고, 자기 자랑만 나오는 거예요.
“아직도 네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막 얻어터지면서 ‘주께서 살아있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해도 “아직 멀었어. 더 으깨져야 해”라고 하시면 말씀으로 팍팍 으깨시죠. 항상 내가 현존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현존한다고 생각하면서 주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타고난 우리의 죄 성이요, 육신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게 해 주시고,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을 십자가로 감당하셔서, 다 감당했다는, 다 이루었다는 소식이 매 순간 지옥 삶을 통해서도 늘 일어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