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10/6

아빠와 함께 2024. 10. 6. 21:08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있어 이미 목숨보다 자기 의를 더 챙기고 최후까지 사수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인간들에게 아무리 복음을 말하고 성경 지식을 전해도 먹히지 않는 이유는 ‘자기 의’를 끝까지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의에 도달되는 복음의 능력은 결국 폭력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영생이 이런 폭력을 통해서 구현되었기 때문입니다. 폭력성을 품고 있는 영생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오게 되면 성도의 일평생은 하나님이 주시는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 하며는, 영생은 ‘빈 형식’에 가득 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육신이라는 형식은 이미 자기 잘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을 토하게 하고 게워내는 작업은 영생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다듬이 돌 위에 육신 얹어놓고 평생을 두고 줘 패시는 하나님의 폭력성은 , 나에게 소중한 것과 하나님에게 소중한 것의 차이를 알게 하십니다. 껍질 가지고 너무 서러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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