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상대로 언약을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로 상대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용어, 즉 예배나, 성령이나 하나님나 무슨 용어나 개념이든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십자가 사건의 의의를 드러내기 위한 용어입니다. 성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순종'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를 인간의 행함을 긍정해서 구원받아내기 위한 용어로 사용해서는 아니되는 겁니다. 이 두 가지 차이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의의는 오늘날 미움과 오해와 핍박을 받게 됩니다. "다 이루었다"가 성도에게 적용이 되면, 이 때부터 성도는 "뭘해도 죄가 된다"는 사실이 "다 이루게 된 것이고" 동시에 그런 죄인을 용서하는 바가 "다 이룬 것"이 됩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이러한 위대한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성도는 자신의 평소의 본색이 평생을 살면서 계속 튀어나오게 됩니다. 자신이 거듭난다는 사실을 자신의 행함으로 꼭 간직하는 죄를 짓게 되고, "나는 예수믿고 이제는 복음을 전파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거룩한 행함으로 인식하여 꼭 쥐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몇 날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가면 그 때 그 경험이 어느새 '자기 의로움'으로 변해있음을 알 게 됩니다. 물론 이것도 십자가 사건을 앞 세우고 일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지적받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자신이 참 조심하고 절제하고 진심과 성실함으로 성령의 순종이라고 생각하면서 했던 모든 행위가 뒤돌아보면 '나름대로 막 산게' 됩니다. 이것은 '사후적 해석'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도 모르고 그 당시에는 자신이 마치 훌륭한 일을 한 것처럼 자부심을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에게는 이것조차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이유는, 성도가 정말 훌륭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예전에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죄의 새로운 면면을 발견토록 성령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앞장 세우신 것입니다. 즉 "그 어떤 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대체할 정도로 의로운 일은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성도에게는 그 어떤 일을 해도 행함이 되며 그 어떤 행함도 죄가 되며 그 어떤 행동도 예수님 안에서 의가 되도록 십자가의 은혜는 "다 이루었다"를 적용시키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을 받지 않는 자는 이 모든 성경에 나오는 순종을 자신의 행함을 동원해서 실시해야 하기에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게 됩니다. "첫째, 나는 기어이 구원받아서 지옥에 가서는 아니된다. 둘째, 성경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세째, 성경 말씀을 나는 온전히 지킬 수가 없구나. 따라서 나는 늘 회개해야 하는 순종으로 마음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이런 마음 자세는 아마 성령님의 인도하심일 것이며 성도만이 갖는 바른 태도일 것이다. 네째, 따라서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과 그 믿음에 합당한 행함이 있고 그 나의 행함이 온전치 못함을 늘 반성하고 회개하면 그것으로 아마 구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피만이 다가 아니라 성도라면 필히 거기에 따르는 행함과 열매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과연 열매인지 아닌지는 성경 말씀에 준해서 판단해서 의로운 것은 따로 남겨두고(예를 들면, 복음 전파하는 의로움, 회개하는 의로움, 예수 믿는 의로움 같은 것들) 의롭지 아니한 것은 반성하고 회개해서 고쳐나가면 된다. 따라서 절대로 '막살지' 말고 정신차려서 살아야 한다. " 바로 이것이 악마의 종들이 주장하는 기독교입니다. 이런 주장하는 자들은 지옥갑니다.
-”짧은 답(이근호)”중에서 ”다 아루심과 막 산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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