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다니엘 12장(한때 두 때 반 때)140320-36강a-이 근호 목사
오늘 다니엘 12장 마지막으로 끝냅니다. 그동안 길게 달려왔는데 그 다니엘이 오늘 강의로서 일단 다니엘 강의를 그만하면서 다니엘이 얼마나 어려운 책인가를, 중요한 책인가를 제가 언급을 하고자 합니다. 다니엘 12장 1절부터 보는 게 아니고 11절부터 봅시다. 왜 11절부터 보느냐 하면 거기에 날짜가 나와요.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여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45일 더 길죠.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다니엘 12장, 마지막이 이렇게 끝납니다.
이걸 지금 누구에게 이야기했죠? 다니엘보고 이야기했죠. 여기서 1290일, 이게 뭐며 1335일, 이건 또 뭐냐, 이걸 설명을 해야 되는데요. 그 힌트가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11절에 보면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라고 그렇게 1290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걸 지금부터 설명할 텐데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제 강이 들은 가운데서 제일 어려운 시간은 오늘 보내야 될 것입니다. 너무너무 난해해요. 난해할 때는 제가 미리 하는 방법이 있죠. 쉬운 것부터 이야기해서 어려운 것으로 나아가는 제 방법을 쓰겠습니다.
제가 오늘 새마을 기차 타고 수원에 오면서 7호 칸 34번이 제 자리였습니다. 그러면 봅시다. 제가 시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성경 다니엘에서 묵시 세계에서 시간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여기 새마을이 1, 2, 3, 4, 5, 6, 7 … 앞에는 열차가 있고 뒤에는 객차가 있죠. 1, 2, 3, 4, 5, 6, 7 … 제가 여기 7호 칸에 있었거든요. 동대구에서 기차 섰을 때 이렇게 들어가서 이렇게 갔습니다. 그러면 보세요. 4에서 5를 거쳐서 6 거쳐서 7호 칸에 갔죠? 자, 1을 과거라고 보고 7을 마지막 종말로 봅시다. 그러면 우리의 시간은 뭐냐 하면 저는 4에서 5, 6, 7을 갔기 때문에 이 시간대에서 종말로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구미 지나면서 보니까 열차가 이렇게 앞으로 달리니까 7호 칸에서 분명히 나는 4, 5, 6, 7로 분명히 이렇게 방향을 4에서 7쪽으로 이렇게 갔다 말이죠. 그런데 열차 전체는 앞으로 이렇게 가더란 말이죠. 특히 철로가 휘어지는 대목에서는 7호 칸의 차 안에서 보니까 앞의 열차가 방향을 트는 것까지 다 보이더란 말이죠. 나는 방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4에서5, 6, 7 쪽으로 갔는데 전체 열차는 내가 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이렇게, 이렇게 가는 거예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역사라 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서 미래로 이렇게 가는 겁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라고 돼 있다 말이죠. 1290일 이니까 1290일이라는 것은 1200도 아니고 1280도 아니고 1290이 될 때 이게 완료가 되죠. 제 말이 뭔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1290이라고 했을 때는 1270도 아니고 1285 이것도 아니에요. 점점 더 4에서 5, 6 점점 더 가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이렇게 종말을 이야기했던 그 전체가 거꾸로 간다면 새마을기차처럼, 거꾸로 간다면 우리가 기다리는 방향으로 가는 겁니까? 역사는 반대로 가는 거예요? 전체는 반대로 간 거죠.
자, 그래서 제가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로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사중심, 시간 중심은 내가 여기 있기 때문에 내가 가는 방향으로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한 방향밖에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방향을 우리 인간들의 방향을 인정하면서 그걸 허용하면서 전체는 거꾸로 다른 방향으로 반대로 했을 때 우리의 시간 개념은 차질이 발생되는 거예요. 우리의 시간 개념은 차질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럼 어떤 차질이냐 하면 1290일 자체를 도달지점으로 보는 것은 우리지만 그걸 도달지점으로 보지 말고 이걸 출발점으로 보자는 거예요.
마치 겨울에 엄마가 뜨개질할 때 고양이 좋아하는 둥그런 실 뭉치 있잖아요. 실 뭉치가 어느 날 보니까 하나의 스웨터가 되고 실 뭉치는 날라 가 버리죠. 그 실 뭉치를 1290일, 또는 1335일로 보자 말이죠. 보게 되면 그 실에서 솔솔 풀리면 이게 어디까지 풀리느냐 하면 창세기까지 도달되겠죠. 왜? 시간이 거꾸로 흐르니까.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흐른다고 하잖아요? 만약에 그게 진짜 시간이 그렇다면 어떻게 해요? 누가 거꾸로에요? 우리가 거꾸로인 거예요. 열차가 지금 이리 가고 있는데 나는 나 혼자 4, 5, 6, 7로 가고 있기 때문에 열차는 반드시 내가 가는 방향으로 같이 가야 된다고 고집을 부리면, 이건 내 고집이라니까요. 일방적인 내 고집이지 이건 열차 기관사 뜻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내 고집이거든요.
그럼 내 고집은 꺾여야 되고 기관차 운영에 따라 줘야 되죠. 지금까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창세기가 시작이고 요한계시록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왜 그렇게만 생각했느냐 말이죠. 그런 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조지기 위한 덫이라는 생각을 못해봤어요? 인간이 스스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유를 대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시간을 흐르게 했다는 생각을 못했습니까?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을 뭐라 합니까? “나는 시작이요 끝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끝이요 시작이 되는 거예요. “나는 알파요 오메가”만 생각하지 말고 오메가와 알파인 분이 예수님이다 말이죠. 이렇게 갈 수도 있는 거지만 이렇게 갈 수도 있는 분이란 생각을 왜 미처 못 했느냐 말이죠.
그러니까 이 1290일이 아무리 봐도 풀리지 않는 거예요. 요렇게 따져도 저렇게 따져도 1290일 푼 주석 책이 없습니다. 글도 논문도 없어요. 이 대목에서 손을 놔버린 거예요. 70이레도 못 푸는데 1290일을 어떻게 풉니까? 풀 수가 없어요. 주석 찾아보세요. 아무도 설명 안 해놨어요. 요한계시록 논문 보세요. 설명 못합니다. 도대체 이게 뭔지.
발상의 전환을 못하니까, 발상의 전환을!! 주님한테는 얼마든지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느냐 이 말이죠. 세례요한이 말했죠? 내 뒤에 오실 분은 나보다 앞서다는 이야기를 왜 세례요한은 알고 있는데 우리는 왜 미처 알지 못했느냐 이 말이죠.
미리 아시고 아담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우리는 왜 못하느냐 말이죠. 주님이 미리 아시고 아담을 만들어 놓고 미리 아시고 뱀에게 보냈고 미리 아시고 선악과 따먹게 했다는 사실을 왜 몰랐느냐 이 말이죠.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했잖아요? 우리가 알기는 선악과만 따먹지 말지 생명나무는 따먹으라는 나무라고 알았죠.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졸지에 무슨 나무도 못 따먹는 나무가 됐어요? 생명나무를 따먹을 줄 알았던 생명나무가 선악과 따먹는 순간 생명나무가 ‘이거 따먹기만 해봐라.’ 이런 나무로 바뀌었죠?
우리는 미처 몰랐죠. 선악과 생명나무가 한 뿌리로 배후에 숨어있는, 그렇게 엮여져 있다는 걸 몰랐죠. 우리는 나무가 두 송이인 줄 알았죠. 선악과하고 생명나무가 이게 두 나무가 아니고 그 밑바닥에는 연결된 나무라는 사실을 이걸 아담이 건드려줘야 돼요.
전에 있던 교재 ‘복음이냐 교회냐 그 제일 마지막 논문에 뭐가 있습니까? 선악과를 건드려줘야 생명나무가 그 가치를 보여준다고. 아담이 선악과를 건드리기 전까지는 생명나무가 뭔지도 몰랐어요. 선악과를 건드리니까 ’생명나무 따먹지 마라.‘ 고 돼 있어요.
그러면 순서가 우리 인간 순서는 선악과 건드리고 생명나무 못 따먹게 돼 있죠. 주님의 순서가 반대라면 어떻게 됩니까? 생명나무가 뭔지 보여주기 위해서 미리 선악과 덫을 놓은 거예요.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죠?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어놨잖아요. 그러면 하나님한테는 모든 것이 ‘아니요’란 게 있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하나님이 뭐가 무서워서 ‘아니요“가 있겠습니까? ‘그거 해서는 안 돼.’ 부모가 자식보고 ‘이거 먹어서는 안 돼.’ 이 말은 다른 말로 부모도 무서운 게 있다는 말이죠. 행여나 애가 이거 먹어서는 안 돼. 부모가 스스로 공포를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는 셈이 되거든요. 하나님한테 그런 게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무섭고 두려운 게 있습니까? 하나님이 마귀가 무서워서 ‘어머나’ 하고 이런 하나님이십입니까?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선악과 먹고 정녕 죽으리라 이 말은 그건 덫이었고 다른 진짜 실상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건드리면 걸려드는 것, 건드리면 덫에 걸려드는 다른 비밀이 있었던 거예요. 그 비밀은 인간은 모르고 성부와 성자 사이에 창세전에 이미 모든 게 확정 나버린 그 비밀, 그래서 성경에서는 복음을 뭐라 합니까? 비밀! 그것도 에베소서 보면 창세부터 숨겨온 비밀! 누굴 상대로? 인간을 상대로.
보험회사 직원이 보험 가입하면서 ‘그런데요. 이 보험 가입하면 내가 만약에 암에 걸리면 얼마 받습니까?’ 하면 ‘ 그거는 비밀’ 이러면 보험 가입하겠어요? 내가 미리 알아야 가입할 게 아닙니까? ‘그거는 걸려봐야 아는 거예요.’ 이러거든요. 암에 직접 걸려보면 당신이 액수를 얼마 받느냐? 그건 그때 안다는 거예요. 그래도 말합니다. ‘가입할 거요? 말거요?’ 다시 말해서 ‘믿을래? 안 믿을래?’ 예수 믿을 거야? 안 믿을 거야? 아니 미리 예수 믿으면 이런 거, 이런 거 있다고, 이런 혜택 준다고,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예수 믿으면 지옥 안 가고 이런 걸 줘야 우리가 ‘아하 좋구나.’ 하고 그걸 받아들여서 믿죠. 그 믿음이 가짜에요. 그게 걸려든 거예요.
사람이 따져서 믿는 것은 가짜입니다. 그거 누구 좋은 거예요? 자기가 평소에 결핍된 거, 모자란 거, 사실은 죄악 된 본능에서 요거만큼은 얻었으면 좋겠는 거,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는 고생하지만 죽어서는 좋은 나라에 가고 싶은 그런 탐욕, 죄, 그런 것들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데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 하니까 ‘옳다구나, 예수 믿는 걸 믿어야지.’ 그거는 덫에 걸린 거예요. 그게 가짜 믿음 이예요. 유대인들이 걸려든 거예요.
율법 지키면 뭐준다? 복 준다. 이거 유대인들이 걸려든 거예요. 율법 지키면 복 분다 하니까 자꾸 율법 지키는 거예요. 자꾸 율법 지키니까 점점 더 깊이 걸렸어요. 얼마나 깊이 걸렸으면 메시야를 죽였겠습니까?
신명기에 보면 이 말을 지키면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죠. 못 지키면? 못 지키면 저주 받는다. 이건 들리지도 않고 나중 문제고 무조건 따내야 하니까 한 구찌 따내야 하니까.
동네 보면 뽑기 있죠? 뽑기 실패하면 200원 그냥 날리잖아요? 그런데 200원 날리는 건 생각 안하고 눈앞에 뭐가 보입니까? 살림살이, 인형들이 있고, 애들이 ‘엄마, 아빠, 이거 뽑기 해줘. 못하면 아빠 바보야.’ 이렇게 놀리고 있으니까 아빠 자존심 때문에 하는데 200원만 날리는 게 아니고 하루 종일 하다 보면 2천 원, 2만원 날린다 이 말이죠. 도박이 그런 거 아닙니까? 도박을 한방이거든요. 그저 한방만 바라보고 도박하고, 로또도 결국은 뭡니까? 로또 1등하면 2천 원. 이러면 누가 합니까? 아무도 안 해요. 로또 1등하면 50억, 이거는 자기가 50억 더 써도 할 거예요. 이게 바로 인간입니다.
미래는 1290일 지나고 1335일 지나면 뭐 있겠지? 없어요. 이 바보 같은 인간이 1290일 지나면 없어요. 왜, 1290일 지나면 뭐가 기다리느냐 하면 바로 ‘십자가’가 기다린다니까요. 이리 와, 너 죽었어.‘ 이 십자가가 기다려요. 1290일 기다린 유대인들은 결국은 무슨 사건 일으켰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사건을 일으켰죠.
이 다니엘 1290일 지나면 구원 온다. 천국 온다. 하는 이것이 하나의 미끼라니까요. 미끼! 미끼인데 왜 미끼를 던지느냐 하면 그 미끼에 걸려들어야 그동안 감추었던 비밀이, 주님이 준비해 놓은 비밀이, 복음의 비밀이, 걸려듦으로 말미암아 나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개그 콘서트 보면 어떤 코너에 보면 후궁들이 ‘왜 이리 시끄러우냐?’ 하니까 ‘말 못할 아픔이 있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어떻게 말 못할 아픔을 내 앞에서 하느냐?’ ‘말 못할 아픔이 뭔지 알려드려요? 오골, 오골.’ 하면서 하죠. 그러니까 그 후궁들은 뭘 몰라요? 자기 존재에서 나오는 아픔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몸이 아프고 어쩌고 저쩌고 돈이 없고, 하는데 주님은 뭐라 합니까? ‘말 못할 아픔을 진짜 알려드려요? 하고 내신 게 십자가에요.
우리는 나름대로 고생한다고 여기는 것과 인간들 위주로, 같은 몸을 지닌 예수님의 아픔, 진짜 말 못할 아픔을 알려드려요? 하고 십자가! 우리는 이 죄악 된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 될 벌인데도 불구하고 이 억울해 하는 못 된 나밖에 모르는, 나의 존재만 챙기는 이런 어설픈 나의 고통과 거기 따르는 어떤 해방을 기대하는 그 구원론과 진짜 모든 것을 완료해서 아버지만 아시고 아들은 반드시 십자가 죽어야 되는 것이 이미 확정된 지경에서 아버지께 버림받아야 될 예수님의 십자가의 아픔, 그 아픔 사이가 1290일입니다.
날짜로 계산해서는 이게 안 나오죠? 그래서 제 말은 이거에요. ‘시간은 없다.’에요. 시간의 형식은 1290일, 하루하루가 1290일 동안 반복한다는 거예요. 형식은 나와요. 하루 해 뜨고 해 지고 하루잖아요. 그게 1290일 이 말 아닙니까? 우리가 아는 형식을 사용했는데 실제로는 시간은 없습니다.
왜 시간이 없느냐? ‘왜 목사님 시간이 없습니까?’ 1290일 기다려도 메시야가 안 와요. `16년 동안 해도 애인이 없는 것처럼, 1290일이 돼도 주님이 안 와요. 그러면 이 1290일 계산은 맞았다는 거예요? 틀렸다는 거예요? 틀린 거죠. 내가 4호차에서 5호차 6호차 7호차 가니까 열차도 내 맘대로 저리 가야 된다고 그거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온몸에 흐르는 시간 시간개념입니다.
우리는 내가 눈 떠서 해 뜨고 해 지면 하루에요. 주님은 그런 하루 인정한 적 없습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자체가 의미가 없어요. 시간 자체는 메시야의 오는 걸 봉사하도록 돼 있는데 우리의 시간상 백날해도 백날 천날 봉사해도 메시야가 우리 시간 따라 오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없다? 시간은 없는 거예요. 시간은 주님을 요청하는 그런 기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은 주님의 완성에서 새삼스럽게 터져 나와야 돼요. 아시겠습니까? 제 말이 어려운 거예요. 제 표현이.
지금까지 생각한 것은 시간은 누구에서 나와요? 내가 여기 있으매 내가 생각하는 내가 알고 있는 시간도 하나님이 같이 알아야 된다고 말도 안 되는 내 중심으로 우기는 거예요.
인간은 항상 진리에 관심 없어요. 자기만 관심 있어요. 이걸 가지고 뭐냐 하면 그걸 실천적 유아론이라 해요. 유아론이란 말은 자기밖에 몰라요. 세상에, 세상에 진리를 외치지만 막상 세상에 나가면 모든 살아가는 모든 삶은 누구만 배 채우면 돼요? 나만 배 채우면 행복해요.
우리가 집에 키우는 강아지나 개 보면서 개가 참 무식하게 산다고 욕하죠. 왜, 개는 사료만 주면 되니까. 개가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고민한 적 있습니까? 없잖아요. 개는 안개 꼈다고, 스모그 현상 있다고 고만하지 않아요. 개는 오뉴월만 되면 팔자 늘어져요. 배 쩍 벌리고 이건 옷도 안 입었어요. 옷 입혀주는 착실한 주인도 있습니다마는 옷도 안 입고 그냥 자고 있어요. 그게 오뉴월의 개 팔자입니다.
인간은 어때요? 인간은 자기밖에 모르잖아요. 개나 인간이나. 차라리 진짜 ‘제가 갭니다.’라고 고백했던 수로보니게 여인의 말이 맞아요. ‘주님 보시기에 저는 개라고 할 수 없어요. 개라고 하면 개가 화냅니다.’ 개보다 더 못하죠. 개가 예수님을 죽이지는 않았잖아요. 인간이 죽였죠.
정리합시다. 인간은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고 자기중심으로 시간을 조작해 냈고 하나님은 그걸 이용해서 1290일 이라고 덫을 놓았고 1290일 지나면 메시야 온다고 생각했는데 오지도 않았고 1335일, 45일 차이가 나거든요. 1290일이면 1290일이지, 45일 추가해서 하는 건 뭐에요? 장사해서 그냥 팔려니까 아까워서 45일 추가해서 팔려는 거예요? 어떻게 된 거예요?
45일 추가의 의미가 뭐냐? 다시 합니다. 진정한 시간이라 하는 것은 메시야를 모실 수 있는 시간일 경우만 진정한 시간입니다. 왜냐, 모든 시간은 주님께 봉사하기 위해서 주께서 만들었기 때문에. 골로새서 1장 16절, 세상의 모든 것들은 주님을 위해서 있는 겁니다. 시간이든 공간이든.
자,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알았다치고 내가 보니 전혀 아는 얼굴도 아니지만, 그 다음에 더 어려운 거 해봅시다. 그러면 주님의 시간을 알아채면 간단한 문제네요. 모든 시간은 다 창세전에 예정된 것이다. 오케이, 창세기에 있는 성부와 성자의 뜻을 위해서 시간이 지속된다. 그러면 그 시간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종말론부터 거꾸로 창세기로 찾아간다. 오케이. 이렇게 된다 이 말이죠.
그런데 ‘오케이’가 아니에요. 뭐가 있느냐 하면 여기 11절에 보면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이거든요. 11절에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이니까 결국 시간이라 하는 것은 지금 우리는 건방지게 하나님과 우리를 직접 상대하려고 건방을 떨었는데 주님께서 우리의 건방짐에 동조하지 아니하시고 뭘 앞장세우느냐 하면 악마를 앞장세웁니다. 우리 인간은 여기 있는데.
우리는 주님과 직접 상대하려는데 중간에 주께서 뭘 집어넣는다? 미운 물건이죠. 마귀, 악마를 중간에 집어넣어 버려요. 그러면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면, 시간이란 악마를 체포하기 위한 용도로 집어넣은 거예요. 우리는 지금 구원받고 싶어서 시간만 알려주시면 시간 알아서 구원받겠습니다. 메시야 오시는 시간 알아서. 이 우리의 구원 자체가 이미 인간은 어디 속했다? 악마에게 속한 인간이기에 그따위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줄 아시고 이 인간을 직접 상대하지 아니하시고 인간을 다스리고 통치하고 있는 공중권세 잡은 이 악마를 체포하는데 소비되는 시간이 1290 이예요.
어려운 거 하나 해봅시다. 이 세상의 시간 따라서 모든 것이 변합니까? 안 변합니까? 변하죠. 변할 때 모든 것이 쇠퇴합니까? 쇠퇴하지 않습니까? 다 쇠퇴하죠. 그러면 돈 봅시다. 동전이란 것이 물질이죠. 물질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동전이 100원 짜리든 10원 짜리든 500원 짜리든 동전이 닳으면 변하죠. 그럼 집사님, 동전이 500원 짜리가 닳으면 은행에서 400원 쳐줍니까? 200원 쳐줍니까? 똑같죠.
이게 신기한 거예요. 이 세상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인간들이 아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잡히지 않는 게 있어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이상하게 원래 동전, 돈, 지폐, 이거는 찢어지고 후패하고 썩어야 되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썩은 500원 짜리도 500원으로 바꿔주고 생생하게 갓 구워 낸 500원 짜리도 1000원 쳐주는 게 아니고 500원 쳐줘요.
그럼 인간 머릿속에 물질 이상의 가치를 돈에서 구성하고 있잖아요. 시간의 변화에도 변화하지 않고 있는 것, 이건 인간의 역사와 시간으로 포착이 되거나 체포가 불가능합니다. 수갑에 묶을 수가 없어요. 인간 위에서 노는 거예요.
한번 물어봅시다. 집사님, 10만 원 짜리 물건 2개 있는 게 좋습니까? 20만 원 현찰이 있는 게 좋습니까? 돈이 더 좋죠. 20만 원 있으면 이 물건 싫다고 다른 걸로 바꿀 수 있잖아요. 돈이 더 좋죠. 그러면 사람이 사는 데는 물건이 필요하지, 돈이 필요합니까? 농사짓는데 호미가 필요하지, 돈으로 땅이 갈리지 않고 호미가 필요하잖아요. 필요한 것을 마르크스는 사용가치라 하는데 사용가치가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가치를 원하는 게 아니고 교환가치, 시장에 나가서 바꿀 수 있는 걸 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물건 바꾸는 건 괜찮아요. 문제는 자기 자신을 바꾼다니까요.
자, 이건 성경에 나온 이야기니까 보세요. 사람이 살기 위해서 삽니다. 그러면 사람이 살기 위해서 살 경우에 누가 중요합니까? 내가 중요하죠. 내가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살아야 돼요. 내가 살기 위해서 삽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가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농사를 착실하게 짓는 남편인데 나라에서 차출해서 전쟁에 나가서 전사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못 지었다 말이죠. 농사는 못 지었는데 애들은 무럭무럭 자라니까 그 식대를 벌기 위해서 농사는 힘센 남자가 지어야지, 여자가 하니까 이건 비료 사야하고 농사해봤자 팔아도 장사를 못하고 사기를 당했다 말이죠. 그럼 어떻게 합니까? 자기 몸을 바치는 거예요.
자, 여기서 모순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내 몸을 비싼 부잣집에 자기를 돈 받고 팔아버렸어요. 그러면 나는 그 집에 하나의 가구가 되고 물체가 되죠. 그 집이 어렵다 하면 나를 또 다시 팔아버립니다. 이게 ‘노예 12년‘이란 요번에 아카데미 상 받은 영화 주제에요. 그걸 내가 비행기에서 봤어요. 돈 주고 못 보고 비행기에서 봤는데 재미가 진짜 없지만 이게 비극이거든요.
이게 모순된다 말이죠. 살기 위해서 몸을 팔았는데 자기가 이제는 물건이 돼 버리면 물건은 산다. 죽는다. 성립이 안 돼요. 이 안경, 안경이 살았니? 죽었니? 이 묻는 자체가 내가 나빠요. 안경은 죽었다. 살았다. 성립이 안 돼요. 노예는 죽었다. 살았다. 그걸 말할 권리가 없는 자가 노예에요. 주인이 살면 자기도 살고 주인이 어려우면 자기도 물건이 돼서 다시 팔리는 거예요. 팔려서 노예가 말 안 들으면 죽여도 괜찮아요. 왜, 노예는 인간이 아니고 노예 붙어 있는 값이 문제에요. 그 값이 노예가 아프면 어떻게 됩니까? 아프면 약값이 들어가니까 주인이 약값이 없으면 어떻게 돼요? 죽이는 것이 헐하게 친다니까요. 그때는 죽여 버려요. 심지어는 주인이 춤추고 있는데 노예를 싣고 가다가 노예가 시끄럽게 하니까 노예가 상품이니까 노예를 반짝 들어서 물속에 집어넣어버려요. 내 물건 내 맘대로 하는데, 내가 내 물건 내 맘대로 벗는데, 안경인데, 네가 왜?
노예 입장에서는 자살 안 했죠. 왜냐, 노예지만 내가 살려고, 내가 스스로 내가 살아보겠다고 한 거예요. 이게 ‘노예 12년‘의 미국 이야깁니까? 오늘날 우리 자본주의 사회 이야깁니까? 우리 사회, 우리 이야기라고요. 자기를 사물로, 상품으로 팔아먹어야 이 세상은 내가 살아요.
성경은 뭐랬는가? 성경은 이렇습니다. 참, 귀한 거 나왔네요. ‘50년 희년’ 이야기가 있습니다. 50년 희년이 뭐냐 하면 7X7=49+1, 아닙니까? 49년 다음에 50년이 되면 네가 주인이 어떤 식으로 노예를 갔던 간에 다시 땅 다 돌려주고, 땅 안 돌려주면 소용없어요. 또 팔리니까. 땅 다 돌려주고 그 사람 다 돌려줘라. 이유는 너희들은 애굽에서 종 되었던 사람인데 누가 값을 치르고? 이 주의 이름이 주님한테 자기 어린양의 피라는 것을 문설주에 발라서 값을 치르고 피 값으로 애굽에 있던 히브리인 자기 사람으로, 품꾼으로 삼아서 약속의 땅이라는 그 가나안 땅을 자기 임대차 한 거예요. 세금이 십일조고. 레위기 25장에 보면 나옵니다. “너희들은 나의 품꾼이고 내가 너의 주인이다.”
나봇이 자기 포도원 땅을 값을 쳐준다 해도 아합 왕에게 안 판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 땅이 누구 땅입니까? 그 땅이 여호와 땅이기 때문에 이미 주인이 따로 있어요. 자기 주인이 주님이라면 우리는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나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늘의 태양이 두 개가 될 수 없어요. 집사님 주인이 주님이십니까? 그러면 어떤 누구도 나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노예의 죽고 사는 것은 누구 손에 달려 있습니까? 우리 주인님에게 달려있지 나한테 달려있는 게 아니에요. 노예가 살려준다고 살려줄 줄 압니까? 죽여 버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스스로 살려고 시도합니까? 기껏 스스로 살아봤자 기껏 하는 것이 살기 위해서 내 몸을 물건으로 내 놓아야 될, 진열장에 내놓듯이.
제가 그런 데는 안 가봤습니다마는 TV에서 옛날 청량리에 보니까 여인들이 한복을 입고 밤중에 쇼 윈도우에 죽 앉아 있어요. 손님이 뷔페 고르듯이 고르고 있어요.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애들 연수 보내고 애들 유학 보내는 것도 결국 시장에서 그거 내놓은 거예요. 자기를 상품으로 내놓는 거예요.
지금 희년 이야기했죠? 자, 보세요. 희년은 뭐냐 하면 우리는 시간을 7X7+1=50이잖아요. 어디서 어디까지 흘러갑니까? 내가 여기 존재한다. 앞으로 49년 지나고 1년 지나면 희년 된다. 방향이 내 쪽에서부터 방향이 어느 쪽으로 갑니까? 희년으로 이쪽으로 가죠.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합니까? 희년부터 시작해서 거꾸로 소급하죠. 다시 너희 땅 다 내놔, 저 사람 땅 주인 다 돌려줘. 왜? 처음부터 이 땅의 주인은 내가(하나님) 이 땅의 주인이었어. 어디 네 맘대로 팔아먹고, 어디를 누구 땅이라고 해. 내가 그동안 땅을 넓게 해주니까 네 땅이라고 해? 다시 원상대로 돌아가.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 보세요. 하나님의 시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시간도 원래 없고 우리 시간도 원래 없어요. 왜냐, 감추었던 비밀이거든요. 잘 들어요. 어려우니까.
㉮우리가 시간을 따지는 순간 그 자리에 중첩되어서 뭐가 등장합니까? 주님의 시간이 등장해요.
㉯등장하면서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돼요? 방향이 정반대가 되는 거예요.
오늘 강의 어렵더라도 여러분이 녹음되고 하니까 잘 들어보세요. 처음에 주인하고 노예하고 땅 흥정할 때는 인간 대 인간하고 따지는 거예요. ‘몇 년간 쓸 건데요?’
몇 년간 쓰고 돌려주고 갚아야 돼.‘ 그들의 시간은 뭐냐, 인간과 인간들끼리 자기중심적 시간만 논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 위에서 팔짱만 끼고 있는 거예요. ’누구 맘대로? 시간이 누구 건데? 누구를 위한 시간인데?‘ 누구를 등장시키기 위한 시간인데 자기들끼리 몇 년 지나고 몇 년간 쓰고 돌려주고, 누구 건데? 네 몸 자체가 누구 거냐 말이죠. 그래 놓고 나중에 49년 지나고 50년에 오시는데 ‘다시 돌려줘’라고 하는 겁니다.
다니엘 마지막 시간이기 때문에 제가 마지막을 어렵게 끝나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하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 해” 주의 무슨 해라 합니까? 주의 은혜의 해. 이게 희년이거든요.
희년 때가 되게 되면 그동안 시간은 주님의 메시야를 반기기 위해서 메시야가 털실이고 그 짜여 진 스웨터가 인간의 남아있는 역사입니다. 아까 새마을 기차에서 나는 4, 5, 6, 7로 갔잖아요. 그래서 맨 끝에 탔잖아요. 타고 보니까 열차가 1호 쪽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종말은 종말이 아니었고 종말이라고 여겼던 그것이 시작이었던 거예요.
그러면 그 종말은 뭐냐, 종말은 내가 가면 되느냐? 내가 가는 것이 아니고 그동안 나를 지배했던 마귀가 우리한테 그렇게 속여 왔던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체포하는 것이 아니고 뭐가 먼저 체포가 성급한 겁니까? 악마를 체포해야죠. ㉱악마를 체포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1290이고 1335일이 되는 겁니다.
다니엘 12장 오늘 마지막입니다. 악마를 체포한다? 그 악마를 체포하는데 그게 되느냐? 제가 악마를 체포하는 인간의 시간은 안 된다 했죠? 왜냐, 아까 동전 이야기 했잖아요. 흙 묻는 500원 동전도 500원이고 오래된 동전도 500원이고 방금 나온 동전도 500원이고, 이거는 동전 자체가 상품가치가 있다? 없다? 없고 우리는 동전을 상품이상으로 보는 거예요. 뭔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시간이 흘러도 영원한 500원. 그런 게 인간 세계에 있는 거예요.
따라서 인간은 20만 원짜리 물건 두 개 있는 것보다도. 두 개 있어봐야 얼마 안가면 고물 돼서 10만 원도 못 받습니다. 20만 원 짜리 두 개 보다도 20만 원 현찰이 더 좋은 거예요. 왜, 돈은 영원하니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해서 하나님의 라이벌로 이 땅에서 유일하게 되는 것이 바로 돈 이예요. 사람은 이유도 목적도 없이 돈을 좋아해요. 우리의 상식은 사람은 물건을 좋아하게 돼 있어요. 밭 있는 사람은 호미를 좋아하고 또 쟁기도 필요하고 컴퓨터도 필요한데 더 나아가보니까 컴퓨터 살 돈이 더 좋고 호미보다 호미 살 돈이 더 좋고, 돈이 좋다는 말은 뭐냐 하면 바로 내 식대로 살기 위해서는 쟁기나 컴퓨터보다도 변하지 않는 것을 내가 소유할 때 나는 그 돈과 더불어 나도 영원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 가능성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힘! 자본주의에서는 돈이지만 힘에 의해서 종속되게 돼 있는 인간이 되라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게 한 겁니다. 따먹으라고 부추기는 그 악마가 사실은 우리가 직접 주님을 애초부터 상대할 상대는 안 되고 중간에 집어넣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상대하려고 하나님께서 임의로 집어넣은 덫과 같은 존재가 뭐냐 하면 바로 뱀이었습니다.
뱀이 선악과를 건드려줘야 비로소 잠자고 있던 생명나무가 꿈틀거리는 거예요. 이는 덫에 걸린 거예요. 그럴 때 우리는 감추었던 비밀! 창세로부터 감추었던 비밀! 창세전에 나타나지 않아요. 감추었던 비밀이 어디에 나타난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났잖아요. 그러면 감추었던 비밀이 주님께 나타난다면 그럼 주님은 아직 안 나타났다고 해서 주님이 안 계신 것은 아니죠? 주님께서 팔짱 끼고 이미 지켜보고 있던 거죠.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십자가로부터 시간을 거꾸로 흘러 보내야 된다. 십자가가 수원지에요. 십자가가 물 저수지고 저수지로부터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죠. 십자가로부터 위에서 걸쳐놓고 고랑을 파서 물이 졸졸 흘러가게 되면 우리는 물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 가게 되면 우리는 뭘 만납니까? 원초적 뱀을 만나죠. 원초적 뱀을 만나면서 주께서 뱀을 잡기 위해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인간을 활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을 만듦으로 말미암아 뱀이 인간을 건드리도록 해서 왜 인간을 건드리느냐를 빌미로 해서 뱀을 잡는 그러한 전략으로 하나님께서는 시간이란 것을 계속 길게 이어져 나간 겁니다.
■그러면 1290일은 뭡니까? 1290은 창세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 시간을 말합니다. 왜, 거기에 바로 뱀이 있었기 때문에. 뱀이란 존재는 아까 한 거와 같이 시간에 따라 매이지 않습니다. 뱀이, 악마가 받은 형벌은 몇 년 언도 받았습니까? 악마가 지옥 갈 때 수행년도가 몇 년 입니까? 무한대죠.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죠.
뱀은 인간의 시간에 얽매이지 않아요. 10년, 20년 매이지 않아요. 인간의 육체는 길어봐야 1000년이 못 됩니다. 창세기 5장에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내세워도 결국은 몇 년을 못 넘어요? 1000년을 못 넘겨요. 이미 1000년은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실질적 일은 어디서 합니까? 1000을 넘어선 그 동네에서 다 이루어져요.
■요한계시록 20장에 천년왕국이란 말 들어봤죠? 요한계시록 20장에 천년왕국이 있는 이유가 뭡니까? 그리스도가 뭐하기 위해서? 왕 노릇하죠.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누굴 잡습니까? 바로 뱀의 삼위일체, 악마, 거짓 선지자, 그거 잡기 위해서 왕 노릇하잖아요. 그러면 거기 당한 사람은 누구냐? 우리 성도는 목 베인 영혼이 돼 버려요. 그러니까 성도 하나 미끼 던져서 뱀이 걸려들게 만들어서 성도를 고생시켰다는 이유 때문에 뱀을 영원한 형벌에 집어넣어 버리는 거예요. 뱀을 집어넣는 그 지옥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무한대에요. 시간 자체가 없는 게 돼요.
그럼 시간은 왜 있는가? 뱀을 잡기 위한 한시적으로 만든 포승줄이라니까요. 뱀을 어떻게 잡는데? 인간을 만들어서 뱀이 인간을 관리해서 인간을 악마, 뱀이 건드리게 해서 인간에게는 뭐가 있어야 적용돼요? 인간은 날짜가 카운트가 돼요. 하루, 이틀, 사흘,… 1290일, 카운트가 되는데 카운트 되는 인간을 하나님이 심판하면서 그 현장에 있던 뭐를 덮쳐요? 악마를 덮쳐보니까 악마는 이렇게 시간에 체포가 될 때 비로소 짐승으로 드러나요. 내가 어렵다 했으니까 여러분이 이해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다시 천천히 해볼게요. 빨리 한다고 이해될 문제가 아니고.
지금 짐승이란 말을 했잖아요. 짐승이 실제로 누굽니까? 짐승은 왕들 이예요. 어디? 바벨론, 바사, 헬라 마케도니아, 마지막에 로마. 이 짐승들이 왜 다니엘에 나옵니까? 자기 나라 지배한다고 나옵니까? 자기 나라 지배하면 자기 역사에요. 왜 이방 역사가 의미가 없느냐 하면 이방역사는 자기들끼리는 인간의 역사뿐 이예요.
일본의 천왕부터는 연도가 다르잖아요. 세종 몇 년 나오잖아요. 왕이 등장하면 거기 따라 자기 왕 된 역사 새로 시작하잖아요. 나중에는 통합되면 서기를 쓰지만. 옛날에는 왕이 등장하면 역사 새로 가는 겁니다. 자기들끼리 시간개념이라니까요.
그러면 뭐가 포착이 안 돼요? 악마가 포착이 안 되죠. 이해되시겠습니까? 모든 다니엘이 짐승 이야기한 것은 그 안에 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자의 나라와 관련돼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성도가 있어요. 누구? 다니엘과 몇 친구? 원, 투, 쓰리, 세 친구 있어요. 느부갓네살이 이걸 잘못 건드린 거예요. 건드릴 걸 건드려야지요. 다니엘 세 친구보고 뭐라 했습니까? ‘금 신상 섬기면 살려줄게.’ 다니엘 세 친구 하는 말이 ‘아이고,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죽을게요.’ 죽잖아요.
자기는 왕 대 그냥 포로 잡혀 온 세 명이예요. 집어넣었잖아요. 거기에 네 번째 사나이 등장했죠? 그 네 번째 사나이가 악마를 잡을 사나이라니까요. 큰 소리 안 쳐도 이해되죠? 다시 합시다. 지금 인간은 미끼라니까요. 미끼! 다니엘도 미끼고 다니엘 세 친구도 미끼에요. 인간 백날 모여보세요. 박근혜 대통령 회의하면서 ‘여러분, 지금 국정원 통해서 악마를 잡읍시다.’ ‘악마를 잡읍시다.’ 하면 악마가 뭘 잡아요? 지금 국정원이 뭐냐? 간첩 잡으려 하는 것이지 악마 잡는 게 아니잖아요.
악마는 인간들끼리는 악마가 체포가 안 돼요. 자기가 악마 속에 있으면서 무슨 악마를 잡아요? 지금 악마 못 잡으면 우리 부활 안 됩니다. 당신 어떻게 장담하는가?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해야 그게 구원이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 인자가 오지 아니하면 우리는 부활도 안 되고 천국 못 가요. 그런데 사람들은 뭐라 합니까? ‘날짜 계산하면 그때 되면 오겠지. 1290일 되면 오겠지.’ 1290일 와도 인자 안 옵니다. 안 생겨요. 16년 동안 여자 밝혀도 여자 안 생깁니다.
이게 얼마나 다니엘이 어려운지 몰라요. 그래서 다니엘 푸는 주석이 없어요. 1290일 지나면 오겠고 1335일 되면 오겠지. 안 와요. 유대인이 이거 기다리는데 실패했어요. 아이고, 한 때, 두 때, 반 때, 기다리면 오는가? 안 와요. 7절에. 42달? 42달 지나도 안 생겨요. 주님이 안 온다니까요. 42달, 1290일 계산하면 비슷하게 3년 반입니다.
3년 반 지나도 안 와요. 왜, 3년 반이 누구 숫자기 때문에? 4, 5, 6, 7로 가는 나의 숫자, 내 몸에서 나온 인간들이 통용하는 인간들의 역사 숫자라니까요. 그런데 인간은 숫자가 없어요. 없는데 하나님께서 만들어 버렸어요. 왜, 악마를 잡는 미끼로 사용하기 위해서. 오늘도 하루가 지났네. 내일은 또 어떻게 될까? 내 나이는 50이고 60이고, 이게 누구 계산입니까? 자기중심 계산이라니까요. 제 나이 벌써 60이 넘었어요. 왜 이런지 몰라요. 늙은 것은 죄가 아니라 했습니다. 늙은 것은 죄가 없다고 은교란 영화에 보면 나와요. 아픈 것도 죄가 아니에요.
마리아 마르다 오빠 죽은 게 죄가 아니에요. 나사로 죄 맞아요. 하지만 죽은 거 자체는 죄가 아니라니까요. 죽음을 통해서 미끼죠. 이 세상에 믿음이 있다? 없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왜, 악마가, 마귀가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 놨어요. 기다려라. 올 것이다. 뭐가 오는데?
세례요한은 말합니다. 내 뒤에 오실 분은 이미 오신 분이 온다는 거예요. 이미 계신 분이 오신다는 거예요. 우리만 괜히 호들갑 떨었지, 애초부터 이미 계셨던 그분이란 말이죠. 우리가 만날 수 없지만 우리 때문에 숨어있던 그분이 등장된 거죠.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우리가 마귀한테 잡힘으로써 비로소 감추었던 비밀이 노출되면서 실상 길과 진리와 생명은 드디어 우리 앞에 확연히 다 드러난 겁니다. 마귀는 마귀 짓을 해야 돼요. 예수를 잡아 죽여야 됩니다.
그럴 때 그 기간이 뭐냐 다니엘이 예언했던 1290일입니다. 다니엘을 봤던 모든 사람들은 1290일 오게 되면 메시야가 온다고 봤거든요. 그게 아니고 메시야가 오게 되니까 1290일은 이건 사람이 기다릴 시간이 아니고 마귀가 마귀 정체를 폭로하는 그 순간이 1290일이고 동시에 그 현장에서 비로소 숨겨졌던 메시야가 누구고 진짜 하나님이 누구냐? 예수님이 하나님이죠. 그게 드러나는 그 때가 뭐냐, 1290일 마감될 때에요.
그러면 1290일은 뭐냐, 그때로부터 다시 하게 되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전체가 1290일이 되고, 1335일이 되는 겁니다.
10분 쉬고 합시다.
가락-다니엘 12장(한때 두 때 반 때)140320-36강b-이 근호 목사
첫 번째 시간에서 11절에 보면,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러한 짐승이야기라든지 이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는 이스라엘 그러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와 관련되어서 비로소 마귀가 나오지 그 다니엘 세 친구 말고 세종대왕 집어넣으면 마귀이야기 안 나옵니다. 1290일도 안 나와요. 1290일이 마지막 때다, 하는 언급은 항상 이 세상 전부 어느 지점의 아무 지점에 파서 나온 게 아니고 특정 지점을 파고 들어가 봐야 그게 1290일이 의미 있게 나온다 말이죠.
그 지점으로 삼은 것이 뭐냐 하면, 멸망당할 이스라엘이고 다니엘과 그 세 친구, 다니엘 이라는 그 인자라고 하는 다니엘에다가 이 예언을 드리는 겁니다. 그러면 다니엘 눈에 뭐가 보이느냐 하면, 매일 드리는 제사가 폐한다는 것이 다니엘만 알고 있어요. 이게 무슨 뜻인지를. 그 다음에 멸망케 할 미운 물건도 다니엘만 알고 있어요. 아무도 모르고 다니엘만 알고 있어요. 그렇게 될 때, 뭐도 아느냐? 1290일도 일반인이 알고 있는 1290일하고 달라요. 일반의 1290일은 자기 몸의 시간이 1290일 지나면 되겠지. 그건 아니거든요.
다니엘이 알고 있는 1290일은 다니엘에게서 일어난 특이한 언약사건,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서 새롭게 등장한 시간이 1290일인데 그 1290일은 어떤 시간인가 하면, 짐승이 자기 역할 다하고 이제는 짐승이 체포돼가지고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서 이제는 네가 짐승으로서 나를 꾀고 인간을 지배했던 그 기능은 이제는 종결된 그 시간이 1290일입니다.
그렇다면 1290일을 이미 완료된 상태서부터 미리 그걸 출발점으로 해서 창세까지 한 번 깔아보자 말이죠. 아까 털실에서 실하나 뽑아 나오면 스웨터 되듯이. 털실 1290일로 빨간 털실로 간주하고 거기서 스웨터를 한 번 짜보자 말이죠. 짜보면 그게 인류의 역사가 되는 거예요. 그럼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1290일 때 잡혔던 마귀가 이미 에덴동산에 있었다? 없었다? 있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여기서 뭐가 밝힙니까?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으로만 짜여 진 역사가 의미가 있지요. 누구는 빠진다? 인간아 너는 빠져라, 이 말이죠.
여자의 후손은 메시아고 뱀의 후손은 마귀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너희들은 빠지는 거예요. 빠지지만 막상 인간은 역사를 느낍니까? 안 느낍니까? 느끼지요 내가 누구를 낳고, 내가 누구를 낳고, 이것은 우리 경주이씨, 안동 권씨 역사 아닙니까? 모든 역사가 다 있지요. 그 역사는 왜 있느냐, 그건 미끼라니까요. 그게. 그러면 그 미끼를 깔았던 이유가 뭔가, 이 역사가 있어야 시간계산이 되거든요. 시간 계산이 되면 인간들은 마귀한테 매여가지고 “그래, 몇 년만 지나면 천국 되고 몇 년 만 되면 주님 오시고 몇 년 지나면 몇 시에 오실거야.” 마귀한테 매여가지고 자기 몸이 생각하는 시간 계산을 하나님도 적용되리라고 상상을 하게 만들지요. “조금만 기다려. 메시야가 오신다고. 1290일이니까 지금은 1285일이니까 조금만 하면 오겠네.” 이걸 계산해서 나 좋아라고 나를 구원하는 메시아를 고대하게 만들어요.
사실은 배후에 누가 시키는가 하면 마귀가 시킨 거예요. 하나님은 마귀가 시킨 것을 알고 마귀하고 인간하고 한꺼번에 다 잡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겁니다. 막상 1290일이 올 때, 온 것은 마귀가 패망하는 순간이 아니고 누가 지는 순간이에요? 메시아가 패배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게 뭐냐,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와가지고 마귀를 이기기를 기다려서 다니엘 예언대로 기다렸는데 막상 온 메시아는 이기기는커녕 어떻게 돼요? 패배정도가 아니고 귀향조치도 아니에요. 주리를 틀어라 그 정도도 아니고 아예 죽어버렸어요. 죽는다는 것은 소멸된 겁니다. 없어진 거예요.
월급 올려달라고 했는데 자존심 상해서 나왔잖아요. 나중에 다시 찾겠습니다. 했는데 나중에 가보니까 회사 자체가 없어졌어요. 그러면 내가 기다렸던 내 시간, 나에게 돈을 주는 그 때는 어떻게 됩니까? 날아가 버린 거예요. 메시아가 죽음으로서 누가 죽느냐, 인간도 같이 죽은 겁니다. 예수님이 죽었을 때, 모든 인간도 다 죽은 거예요. 살아있는 건 뭐만 살아있어요? 마귀만 살아있어요. 이제는 포착할 게 제대로 표면에 다 드러난 거예요. “요거 잘 걸렸다!” 그래서 인간인줄 알았더니만 짐승이었고 세상인줄 알았더니만 바벨론 이었고 어떤 왕인 줄 알았더니만 음녀고 요한계시록 해석이 그대로 용어가 다 적용되는 겁니다.
우리 마음대로 매매할 줄 알았더니만 짐승의 허락이 없이는 매매가 안 된다는 사실을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지요. 그 기간을 가지고 뭐냐 하면 42달이라고 하는 겁니다. 또는 한 때 두 때 반 때라 돼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봅시다. 이제 다니엘하면서 요한계시록도 겸해서 해석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3장5절 읽어보세요.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42달 나오지요. 42달이 3년 반이에요. 3년 반을 분해하면 한 때 두 때 반 때에요. 한 때 두 때 반 때, 42달, 1290일도 비슷해요. 한 달 차이 나는데 그것은 비슷하다고요. 이건 뭐냐 하면 결국은 시간이 어떨 때는 한 때 두 때 반 때고, 42달이고, 어떤 때는 3년 반이고, 어떤 때는 1290일이고, 어떤 때는 1335일이고, 이렇게 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바로 인간들이 느끼는 시간이 한 때 두 때 반 때 다르고 42달 다르고 1290일 달라요. 어쨌든 인간이 자꾸만 자기 구원을 기다린다는 사실이고 그 기다림이 짙을수록 점점 더 마귀의 하수인으로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보니까 42달 동안 어떤 기간입니까? 짐승이 설치고 다니고 촐삭대고 깐족대는 그 기간이 42달이죠. 그러면 마귀가 깐족대고 활동하고 하나님의 허락에 마음대로 설치는 기간이 42달 돼있지만, 따지고 보면 언제부터 언제까지입니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잖아요. 그러니까 1290일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인 거예요. 어째서? 붉은 실타래로 스웨터를 만들어 깔아버리면 그 스웨터를 풀어서 실 뭉치로 만드나, 실 뭉치가 먼저 있고 스웨터를 만드나 전부다 보면 42달, 1290일 안에 포함이 되는 겁니다. 마귀의 깐족거리는 기간. 깐족거리는 잔혹사에요.
우리는 그 기간 동안에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살다보면 모든 게 끝! 모든 게 끝나는 거예요. 이렇게 42달 1290일이 지금부터 남아있는 메시아 오는 기간이 아니고 창세기부터 전 기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우리가 알게 됐느냐 하면 바로 미운 물건이라는 이 사실이 다니엘에게만 눈에 보인다는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니엘을 하나님이 뭐라고 부릅니까? 인자라 하지요. 인자라는 용어는요, 보통 용어가 아닙니다. 마지막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모든 일을 종결할 때 그 때 메시아에게 주어지는 호칭이 뭐냐 하면, 인자입니다. 그러니까 인자라는 말 자체가 이미 종결된 거예요. 종결되면 종결은 역사의 끝이 아닙니다. 역사의 위에요. 참 어려운 말해서 죄송합니다만, 이 표현밖에 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밑에 일본식 방에 다다미가 깔려 있잖아요. 출입구의 끝이 어디입니까? 요 맞은편이지요. 그럼 이것이(출입구) 창세기라면 끝은 어디입니까? 맞은편 벽이 끝이겠지요.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 요 출입구 끝이 어디인가 하면, 2층이에요. 2층. 그럼 요 출입구에도 2층이 있어요? 없어요? 2층이라 하는 것은 1층하고 똑같이 면적을 올리잖아요. 출입구에도 2층이 있었고 1m 가서도 2층이 있었고 3m가서도 2층이 있었고 끝에도 2층이 있었지요. 요 끝의 출입구 세상을 1층에 있는 인간들이 알고 있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시간적 언어로 표현하게 되면 42달, 한 때 두 때 반 때, 1290일이 되는 거예요. 삼년 반이 되는 겁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봤다니까요. 다니엘이 누군데? 인자에요. 인자.
다니엘서에 보면 느브갓네살 우상이 자빠지지요. 자빠질 때, 돌이 하나 날아오잖아요. 날아와서 다 태산이 되는데. 이게 자빠지고 태산을 이룰 때, 그 기간을 다니엘은 70이레로 본 거예요. 그 때 태산 같은 나라가 인자의 나라에요. 인자의 나라. 다니엘은 지금 호칭이 인자에요. 인자야. 다니엘의 나라입니까? 다니엘은 미끼라니까. 뭘 추가하는 이끼? 짐승을 드러내는 미끼라니까요. 다니엘을 관계했던 모든 나라가 다 짐승이에요. 그런데 사람보고 짐승하면 이상하지요? 그러니까 다니엘에 비해서 짐승이 아니고 다니엘이 품고 있는 인자의 호칭에 대하여 짐승이에요.
짐승은 뭐냐 하면, 마귀입니다. 마귀는 인간과 인간에 대해서는 말을 못 쓰고 예수님이 등장했을 때 비로소 마귀가 나와요. 다니엘은 예수님이 아니지만 명칭이 인자라서 다니엘에게 짐승이라는 표현을 한 거예요. 그리고 다니엘이 형성했던 고난의 자리에 다니엘이 봤던 매일 드리는 제사가 폐하는 것 다니엘이 70이레가 일일이 예언된 거거든요. 그 다음에 멸망케 하는 물건, 이것도 다니엘이 예언한 것입니다.
다니엘11장31절에 보면,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이걸 이미 다니엘을 통해서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 70이레 가운데에 62이레에 해당돼요. 그 물건 세워지면서 드디어 1이레가 되거든요.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역사 속에서 찾아도 의미를 발견하지를 못해요. 누가 이 예언을 했느냐, 다니엘이 한 게 맞는데 인자라고 하는 다니엘이 한 거예요.
아, 인자를 왜 집어넣었느냐? 인자를 집어넣어야 나머지 모든 세상이 짐승의 세계가 사단의 세계로 밝혀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거 밝혀서 뭐할 건데? 사단의 세계가 밝혀져야 예수님이 온 세계, 단지 예수님 혼자 온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가 짐승의 나라를 겨냥해서 왔던 게 되지요. 와서 뭐할 건데? 원래 두 나라가 싸웠어요. 짐승의 나라하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창세기3장15절에 싸우잖아요. 싸운다고요. 그러니까 출입구부터 이미 2층이 있었던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2층이 1층은 2층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1290일, 한 때 두 때 반 때, 42달, 삼년 반을 언급한 겁니다. 아까 42달이 무슨 기간이라고 했습니까? 마귀가 깐족 되는 기간이라 했지요. 애초부터 깐족된 거예요. 이걸 요한계시록 해석한 사람, 다니엘 해석한 사람들 전부다 이런 해석을 해요. 예수님 오시고 난 뒤에 그 다음부터 교회가 핍박 받는 고난이라 하는데 아닙니다. 창세기부터에요.
그것은 왜 그리 해석하느냐 하면, 자기 몸을 중심으로 해서. 지금까지는 수천 년 살았고 인류역사가 수천 년 됐고 수만 년 됐다는 것을 그 시간을 긍정하고 인정하면서 그런 시간을 따라서 앞으로 남은 것이 1290일 이리 계산하니까 내 몸 중심의 시간을 그대로 사용하니까 이것은 마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밖에 안돼요. 그 해석이. 사실은 마귀의 해석이에요. 마귀 좋아라고 드러내는 해석입니다. 결코 마귀를 드러낼 수 없고 마귀를 못 드러내면 그리스도를 못 드러내서 감추어진 비밀이 안 드러나는 해석을 그들은 하고 있는 셈이 되는 거예요. 지금 주석들이 그래요. 기다리자! 기다리면 오는가? 안 오지.
아니 성령이 기다린다고 옵니까? 성령은 그냥 오게 되면 받는 거예요. “아이~ 좀 있다 오시라니까 왜 미리 왔습니까?” 이렇게 할 수 없는 게 성령이에요. 임하니까 성령이 그냥 오잖아요.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은 어디서 옵니까? 인자의 영이거든요. 예수님의 영이라고요. 예수님이 왔다하면 인자의 영이잖아요. 인자의 영이 왔다는 것은 인자의 백성, 다니엘이 말한 영원한 나라의 백성이 이미 되었음이라는 거예요. 되어라, 가 아닙니다. 아예 아래층은 위층의 그림자에요.
아브라함이 누구를 봤습니까? 이 말은 내가 해도 참 어렵다. 아브라함이 누구를 봤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아브라함은 이웃집 아저씨밖에 안 봤어요. 아브라함 시력이 잘 나와야 2.0이거든요. 그러면 아브라함이 그 때 봐봐야 이웃집 아저씨와 아줌마가 보이지 언제 아브라함이 시력이 좋아서 예수님을 봤습니까? 그런데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봤잖아요. 그거 한 번 설명해 보라 하세요. 신학 교수한테. 미쳤다 합니다. 미쳐도 할 수 없어요. 성경에 나오니까. 평소에 여러분들이 이순신장군을 보는 게 취미입니까? 아니잖아요. 혹시 목사님, 아인슈타인 만나본 적 있습니까? 아니지요. 아브라함이 어떻게 허깨비를 보는 취미가 있어요?
“베드로 사도여, 혹시 엘리야 만나 본 적 있습니까?” 그 변화산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같으면요, 그 질문한 사람에게 멱살 쥘 거예요. 니가 물어 볼 것을 물어봐야지. 엘리야가 언제적 사람인데 이 베드로 아저씨가 보겠느냐 할 때, 베드로는 “아서라 말어라 그래, 내가 봤어!” “어디서 봤습니까?” “변화산에서 봤어.” “그런데 혹시 모세 본 적 있습니까?” 그럼 유대인들이 모세를 보다니! 하잖아요. 그러니 베드로가 모세도 봤어요. 엘리야도 봤어요. 예수님도 봤어요. 초막 셋을 짓겠다, 했잖아요. 그러던 베드로가 어떻게 했어요? 예수님을 모른다 했지요. 그렇게 보고서도 이 세상의 권력이라는 것이, 마귀의 권세라 하는 것은 그만큼 셉니다. 봤다고 해서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마귀하고 이기기 없어요. 우리는 우리가 마귀와 이겨서 일단 준결승에서 마귀를 이기고 그 다음에 귀신을 이기고 마귀를 이겨서 결승전 예수님한테 가는 이런 거 없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못 이깁니다.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어요.
자, 베드로가 예수님이 죽는다 할 때에 “예수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하고 베드로가 나섰거든요.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베드로야 했습니까? 사탄아 했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했거든요. 아브라함은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은 베드로 뒤에 있는 사탄을 보았고, 결국은 뭐냐 이것은 1층밖에 모르는 우리에게 뭐가 작용한다? 2층이 작용하는 거예요. 2층이 작용하니까 그 작용은 베드로 때 처음입니까? 이미 창세기부터 그렇게 됐습니까? 천지를 창조할 때부터 이미 그 작용이 있었던 거예요. 그 작용을.
이 마지막 때 주님이 오시면 사실 요한계시록이 다 풀리는 거예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게 맞습니까? 틀립니까? 질문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태초에 천지를 창조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으면 정답은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정답 되는 거예요. 정답이 이미 2층이잖아요. 정답을 1층이 알아 그냥 연결시키는 거예요.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무얼 부정해야 되겠어요? 뭘 인정해야 됩니까? “저희 인간들은요, 그동안 마귀한테 꼼짝 달싹 못하고 세상을 역사적으로만 내가 보고 내 중심의 시간으로만 따졌던 그런 죄를 지었습니다.” 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예수님께서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누구 좋아라고? 예수님이 주되시라고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저희들도 포함해서. 이렇게 되는 겁니다. 골로새서1장 16절.
사도바울이 알았다는 게 보통 안 게 아닙니다. 어디 사도바울하고 철학자하고 견줍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바울이 누구하고 논쟁을 했느냐 하면 스토아학파하고 에피쿠로스학파하고 논쟁하지요. 논쟁 레벨이 되겠어요? 아이 성령 받은 사람하고 악령한테 묶여있는 사람하고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야기합니다. 다니엘의 숫자는 뭐냐 악마를 묶는 포승줄이다. 악마를 왜 묶어야 되느냐, 악마를 묶는 포승줄이 됨으로서 시간이라 하는 것은 인간들이 계산하는 1290일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메시아가 어떤 일을 드러내느냐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동안 꾸준히 인류의 역사는 진척되어 왔는데 그걸 예수님이 드러낸 시점에서 숫자로 표현한다면 한 때 두 때 반 때고 3년 반이고 42달이고 1290일이고 1335일 이라는 말입니다. 휴~ 숨 한 번 쉽시다. 지금 60분 동안 이야기한 게 요렇게 결론짓습니다.
다니엘 시작하면서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1장부터 시작 안하고 뭐부터 시작했습니까? 1290일부터 시작했지요. 그 다음부터는 12장 1절부터 보시면 됩니다. 거기에 보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1절 봅시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미가엘의 조상이 누구죠? 어느 동네의 고조할아버지입니까? 미가엘이 미국사람이에요? 누구입니까? 천사지요. 천사가 왜 역사에 끼어듭니까? 반칙 아니에요? 간난 아이들 권투 시합하는데 어른이 나서서 때리면 게임 자체가 안 되잖아요.
다시 말해서 이 말은 뭐냐 인간들이 하는 모든 게임, 짐승게임, 베드로 이겨라! 바사 이겨라! 이 게임이잖아요. 그 모든 것을 드디어 중지시키겠다는 거예요. 이제는 게임이 더 이상 필요 없다. 왜? 인간들 잔챙이들 뛰놀게 아니라 “마귀 너 나와!” “마귀 나와! 마귀 나와!” 그럼 이쪽에서 누가 나옵니까? 이제는 미가엘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오겠지요. 다니엘 때는 미가엘 나와요. 그러나 종말 되면 드디어 예수님 나와요. 진짜 진검승부입니다. 아까 했잖아요. 마귀하고 예수님하고 붙어서 누가 이겼어요? 마귀가 이겼지요.
마귀가 이김으로서 박수를 쳐야 돼요. 왜? 드디어 덫에 걸려들었어요. 마귀가 이김으로서 이제는 마귀는 그 범죄를 지울 길이 없습니다. 끝났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자. 그야말로 미운물건이에요.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한다는 말은, 제사를 폐한다는 게 두 가지 의미가 있거든요. 제사를 못하도록 폐하는 것과 이미 종결됐기 때문에 제사가 필요치 않는 거예요. 그런데 악마는 매일 제사를 폐지해 버렸지요. 안티오쿠스4세가. 폐지했는데 주님도 제사를 역시 폐지해 버렸지요. 그게 히브리서에 나옵니다. 주님은 제사장들이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해 버렸어요. 왜? 젤콤, 하나만 있으면 기생충, 편충, 요충 다 끝내니까. 십자가 한 번으로 끝나버렸죠.
마귀고 같이 했어요. 마귀도 폐지해 버렸지요. 왜냐, 제사에 의미가 없고 힘 센 자가 왕이거든요. 제사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힘이 승리해야 될 세상이어야 돼요. 그래야 마귀가 포승줄에 묶이게 되는 겁니다. 마귀는 힘이 있습니다. 그럼 누가 이기느냐, 마귀가 이겨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유대나라가 이겼습니까? 바벨론나라가 이겼습니까? 바벨론이 이겼지요. 분명히 역사 속에서 바벨론이 이기고 유대나라가 패배했잖아요. 그럼 누가 삼켰습니까? 바벨론이 유다를 삼켰지요.
그런데 다니엘서에 보면 누가 누구를 삼킵니까? 분명히 삼켰는데 삼킴을 받은 다니엘과 그 세 친구가 누굴 뒤엎어버립니까? 못되게 굴던 왕후가 힘센 왕후가 오히려 뒤집어져가지고 교수형 당하는 그렇게 돼버리죠. 이렇게 뒤집어지는 거예요. 또 우리나라의 춘향전 있지요. 분명히 생일날 춘향이를 엎어놓고 패므로 말미암아 권세 잡은 자의 왕의 신체는 초월적 신체라고 보여줬는데 그 때리는 순간 갑자기 들리는 소리가 있었으니 “암행어사, 출두요!” 해가지고 사랑하는 애인을 암행어사 앞에 데려놨어요. 춘향이는 몰랐지요. 오늘날 교인 같아. 몰랐지요. 그 이몽룡이 하는 말이 “춘향아, 니가 나를 수청 들겠느냐?” 하니까 춘향이가 하는 말이 “온 놈이나 간 놈이나 똑같은 놈이다.” “고개를 들라.” 하니까 님이거든요. 보세요. 인류역사도 반전이 있잖아요.
성경도 완전히 엎어져버려요. 분명히 다니엘 세 친구를 잡아 삼켰는데 그래야 가고 새로 다니엘 세 친구가 엎어버리니까 누가 위에 있고 누가 밑에 있다는 말입니까? 다니엘 세 친구와 함께 있는 분이 위에 있지요. 그러면 질문 드립니다. 왜 그러면 유다나라가 멸망당하게 했는가? 그럴 것 같으면 아예 그렇게 예수님이 십자가질 것 같으면 지지 말고 아예 처음부터 내 나라에 속하지 않다 해가지고 천사를 보내가지고 빌라도 완전히 다 뒤집고 성전 할 때는 그렇게 하더니만 잡힐 때는 곱게 잡혀가지고 왜 하느냐 말이에요. 도살하는 양같이 왜 그리 아무소리 못하고 잡혔느냐 말이지요.
이게 뭐냐 하면, 1290일 +45일 = 1335일이죠. 요거 45일을 추가로 함으로 말미암아 짐승 잡히고 메시아가 영광스럽게 암행어사 사또 될 때까지 너무나 짧은 거예요. 45일이라 하는 것은 1290일에 비해서 그냥 잠깐 할 정도의 기간이에요. 그래서 예수님 오시고 재림기간이 우리 보기에는 너무 길어요. 하지만 주님보시기에는 이건 곧 오신다는 거예요. 곧 오시는 거예요. 전체 역사에 비해서 1290일이란 인류 전체의 역사에 비해서 요것은 아주 급작스럽게 오시는 거예요.
마귀가 잡힐 때가 1290일 이잖아요. 그러면 그 다음에 완전히 끝나는 것은 1335일, 마귀 잡히고 약간은 여유가 있는 거예요. 여유가 있고 주께서는 마지막 최종 선지자로 인자의 나라가 오시는 겁니다. 하지만 기간이 1290일, 1335일 정해졌다는 말은 마귀는 이미 2층에서 볼 때 체포가 된 거예요. 집에서 형하고 동생하고 싸울 때, 형이 못돼서 동생을 때리는 거예요. 동생이 엄마한테 일렀어요. 하니까 아버지한테 일렀어요. 아버지가 형 이놈! 하고 형을 붙잡았습니다. 붙잡으니까 형이 자존심이 있어가지고 몸체는 상체는 붙잡혔고 발은 아직까지 안 붙잡혀가지고 발로 동생을 마구 차지요. 그게 45일이에요. 이게 요한계시록 이야기입니다.
이미 몸통은 잡혔고 기껏해야 발길질 하는 거예요. 요게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잖아요. 이미 예수님은 하늘로 놓쳐버렸고 남아있는 것이 뭐냐 하면 여자의 남은 자를 향하여 총 힘을 다하여 마귀가 자기 세력들을 모아서 공격을 해대지요. 요한복음12장 31절 봅시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지요. 보세요. 이게 얼마나 다니엘서 적입니까? 예수님의 한 마디가. 세상 임금이라 하는 것은 결국 그 바벨론 임금의 새끼들이에요. 큰 짐승 밑에 있는 작은 새끼들이에요. 금, 은, 동, 철 그리고 철과 진흙이 섞여져 있는 건 금신상이잖아요. 아시지요. 백날 역사가 길어봐야 그 짐승의 사지의 신체에 불과한 거예요.
온 나라 임금이 심판에 이르렀으니 쫓겨나리라, 그 다음에 32절,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끌지요. 이끌 때, 곱게 이끌지 않고 순교당해서 이끈다는 것이 요한계시록18장에 나옵니다. 왜 순교 당하느냐, 순교이야기 한 마디 해야 되겠는데 요한복음15장에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때 너희들 미워서 미워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미워서 미워한다고 함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아! 세상 볼 때 사람으로 보지 말고 짐승한테 하수인으로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을 좀 가져라. 나는 그런 안목으로 보는데 너희들은 그런 안목을 못 갖느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잡히기 전에 이야기하거든요.
그래도 베드로는 그 이야기를 들어놓고도 뭐합니까?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세 번하잖아요. 닭이 울 때 깨닫지만. 12절 보세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자, 그림으로 그려봅시다. 완전히 스파이더맨이에요. 스파이더맨에서 거미줄 나오지요. 뉴욕건물들이 있습니다. 스파이더맨이 위에 있습니다. 스파이더맨이 칙하면 손목에서 뭐가 나와요? 거미줄이 나오잖아요. 거미줄이 막 나오면 걸려들지요. 걸려들면 거미줄에 회수가 되잖아요. 칙하고 잡아당기잖아요. 걸려들면 어디로 갑니까? 이게 휴거잖아요. 휴거. 요 과정을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요런 방법 외에는 구원하지를 않습니다.
이걸 걸려들게 하면서 뭘 보게 합니까? 요 코스가 주께서 이 땅에 태어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그 코스를 답습하게 돼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뷔페에 가가지고 제일 먼저 잡은 것이 잡곡밥 담고 김밥3개하고 잡채 좀 하고 그리고 LA갈비 두 개들고 뒤에 딸기 3개하고 갔으면 우리도 고대로 가야 돼요. 왜? 그래야 우리가 그동안 살았던 것이 짐승의 나라이고 인자의 나라 영원한 천국이 아님을 지옥임을 우리가 만끽하면서 가는 안목 눈이 열려야 돼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도살할 양이 되고 우리는 힘을 쪽 빼는 거예요. 승리는 누가 해라? 너희들 다 가지고 가라. 교인들 다 가지고 가고 예배당도 혼자 다 짓고 부흥 다하게 하라 해요. 우리는 두 세 사람이 모일 테니까. 사모님하고 둘이 모일 테니까. 사모님도 이혼하고 갈 수도 있어요. 어쨌든 다 가라해요. 바로 그 과정을 밟음으로서 죽기까지 승리하게 하시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 그들은 목숨을 죽기까지 하면서 그들은 복음을 견뎠느니라. 이게 요한계시록입니다. 그게 45일이에요. 그 차이가 45일.
짐승은 잡혔다는 것을 누구만 알아요? 바로 성도만 아니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만 45일의 차이를 알아요. 생명책이 어디에 나오느냐, 다니엘 12장에 봅시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보세요. 약을 올려도 너무 약을 올려요. 환란 없이 구원할 문제인데 꼭 환란을 주고, 지금 1절을 보세요. 지금 미가엘이 왔잖아요. 미가엘은 뭡니까? 천사잖아요. 여호수아 때 전쟁을 여호수아가 했습니까? 천사 군대장관이 했습니까? 약속의 땅을. 누가 차지했어요? 군대 장관이 앞서서 전쟁했기 때문에 갑자기 우박도 내려오고 갑자기 해도 멈추고, 여호수아도 놀랬을 거예요.
그러면 미가엘이 왔으면 우리가 편안하게 구원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뭡니까? 환란이 있고 그 다음에 뭡니까? 환란에서 구원받는 것은 책에 기록된 사람만 오는 거예요. 그러면 책, 미가엘 보내신 분, 환란 누가 조장했습니까? 이미 마귀를 체포하고 이미 하늘에 앉으신 분이 45일 동안 뭐합니까?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서 고생했던 고난에 동참케 하기 위해서 십자가 지는 것은 너희들도 나를 따라오기 위해서 십자가 졌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이에요.
내가 십자가에 진 것은 너희들이 본을 보고 그대로 십자가 지고 따라 오라고 한 거예요. 세상이 항상 찐득한 세상이거든요. 떼어야 된다 말이죠. 그래서 잡아당기는 거예요. 누구만 온다고요? 뽑힌 사람들이? 책에 기록된 사람만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한계시록13장에 666나오지요. 666앞 구절에 뭐가 있느냐 하면 바로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짐승이 이런 짓하고 있다는 것이 들어오고 그 외에는 몰라요. 참, 답답한 게 여러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짐승이니 이런 게 없어요. 그냥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일상의 생활만 할 뿐이에요. 일요일 되면 어디 가고? 교회 가고. 김일성이가 짐승입니까? 없는데요. 자기 돈 떼어먹으면 짐승이구나. 이빨 잘못했다고 막 대들면 그거 짐승처럼 보이지요? 전부 다 자기중심이에요. “아이고, 지겨워라. 일찍 오신다고 하더니...” 전부 다 자기 몸에 관한 시간 개념이에요.
그런데 환란을 당해보세요. 갑자기 주님 오신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갑자기 보증을 잘못 서서 부도를 당해보세요. 아내가 갑자기 가출한다던지 갑자기 혼자 죽고 싶어요. 그 때는 주 믿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게 순교에요. 주님이 크게 보이면 순교고, 세상이 크게 보이면 순교 아니고.
그러면 환란을 설명해야 되는데요, 이 환란이라 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이것도 어려운데요. 환란은 부활될 시점에서 봤을 때만 환란이에요. 그러니까 부활될 시점에서 봤을 때, 그동안 환란 속에 내가 살아왔구나! 비로소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있으면서는 전혀 환란을 느끼지를 않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쉽게 예로 드는데 우리 집에 치매에 걸린 어머니계시거든요. 어머니가 계신데, 목욕탕을 안 가려해요. 들어가면 냄새 나거든요.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목욕 했다고 하거든요. 목욕했다고 우기거든요. 그래서 제 아내하고 짜가지고 돈을 드려가지고, 냄새나면 자식들 안 옵니다, 하고 협박하니까 갔다 말이죠. 목욕을 하게 되면 3시간씩 목욕을 하잖아요. 오게 되면 또 기분이 그렇게 좋아해요. 날듯이 좋아해요. 목욕했으니까. 깔끔하니까. 그런데 다음에 또 10일 만에 목욕 보내요. 10일되면 또 안 가려해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지금 목욕하기 전에는 지금 목욕탕에 안 가는 게 제일 편해요. 그런데 목욕을 갔다 오게 되면 목욕한 게 그렇게 좋아요. 하지만 막상 10일 지나면 또 목욕가기 싫어요.
우리가 부활됐을 때 부활이 크게 보이고 주와 함께 거하고 있을 때는 세상사는 게 다 환란이에요. 하지만 4월초 되면 류 현진 공 던지지요. 6월달 되면 월드컵 한다고요. 지금 재림하면 월드컵 깨져버려요. 지금 젊은 애들 삼성 라이온스, 롯데 자이언트, 프로야구 기다리는 애들에게 예수님 소식하면 별로 안 좋아해요. 프로야구가 남아있기 때문에. SK가 우승할 것인지 어느 팀이 우승할 것인지.
사람이 나중에 부활되게 되면 SK 응원하고 그게 환란입니다. 목욕탕에 가가지고 “아, 시원하다.” 이게 환란이고 돈 많은 여자분들 엎어가지고 마사지 받는 것, 세상에 그런 환란이 없어요. 왜냐 하면 죽어서 천당 가는 게 낫지 마사지 받아봐야 별로 재미없어요. 고 때는 재미있을 뿐. 그래서 제가 이 말하는 것은 환란이라 해가지고 목 베이고 교도소가고 이런 것만 일부러 연출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돈을 교회에 바치고 혼자 결식하며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이죠. 진짜 환란은 지금이 환란인 줄 몰라요. 사기나 당할 때, 공부 못 할 때, 갑자기 직장에서 잘릴 때 환란을 느끼는데 나중에 자기 이빨이 아파도 그것도 환란 측에도 안 들어가요.
어쨌든 이 땅에 사는 자체가 환란입니다. 어떤 평수 100평에 살고 복음을 알아도 환란이에요. 왜? 그 하늘나라보다 못해요. 어떤 여자가 남편 일곱 명이 되는 여자가 있었어요. 일곱 명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기분 좋았겠어요? 천국 가는 게 좋았겠어요? 바리새인이 이야기했어요. 어떤 형이 자식이 없어서 동생 7명하고 결혼했는데 나중에 천국가면 누구의 남편이 되겠느냐고 할 때,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천국가면 그깟 결혼 재미없어. 그거 재미하나도 없어요. 너무 좋아서. 그 때는 천사하고 하기 때문에 천사가 뭐가 답답해서 결혼합니까? 지금 그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고, 교회 갈 데가 없다, 그런 고민하지 마세요. 지금 바로 2층 올라가면 되지 1층의 어느 동네에 가면 돼요? 이거 걱정하지 맙시다.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어느 교회 가느냐 그거 큰 문제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처럼 우리의 소원이 이거야 돼요. 죽어서 빨리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게 최고입니다. 그걸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안식이라 해요. 편히 쉬는 거예요. 이 땅에서는 편하지 않아요. 뭘 해도 편하지 않아. 이 땅에서는.
다니엘 12장 이야기는 마지막 때가 되게 되면 역사가 응축이 되어가지고 이제는 역사가 흘러도 의미 없는 시대가 온다. 그건 왜 그런가 하면 마귀가 숨겨져 있는 두 개의 정체가 드러나요. 창세기3장에서 여자의 후손도 그동안 감추었고 동시에 뱀의 후손도 악마도 감추어 있었는데 마지막 때가 되게 되면 주님이 의도적으로 인자의 이름을 걸고 이 땅에 옴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숨어있는 마귀가 왁 달려들어서 예수님을 공격하게 되어 있어요. 동방박사 공격했지요. 베들레헴의 아들 2살 아래 다 죽였지요. 여러분, 이게 우연한 사건입니까? 아니면 세상이 누구중심으로 돌아간다? 세상이 예수님 중심으로 돌아가고 예수님은 신구약 완성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마귀는 알기 때문에 예수님을 공격하게 돼있지요. 지금도 예수님을 공격하지요. 예수라는 사람은 4대 성인 중에 한 사람이다. 교과서에 나오지요. 그 분의 정신은 사랑이다. 우리도 그 분처럼 희생하자. 이래요. 희생한 게 기독교라면 차라리 겨울왕국이 렛잇고가 더 복음이에요. 보셨잖아요. 희생해서 사랑 쟁취하는 영화잖아요. 만화영화.
지금 마귀는요, 온갖 사랑과 윤리를 총동원해서 어쨌든 간에 택한 자만 구원받는다. 이걸 창세전에 있었던 계획을 어쨌든 간에 그걸 안 들키려고 그리고 자기들이 마귀라는 사실을 정체를 폭로하지 않기 위해서 온갖 교회 세우고 경건하고 베이스 오르간해가지고 파이프 오르간해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하여튼 할 수 있는 짓은 다해요. 예술적으로 건축학적으로 도덕 윤리적으로 남을 봉사하는 교회, 섬기는 교회, 사랑을 베푸는 교회, 온갖 것 다 해보세요. 그게 마귀 아닌지, 마귀의 전당인지.
그 다음에 5절에 봅시다.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편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편 언덕에 섰더니” 이 두 사람 누굽니까? 천사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때에 활동은 누가 한다는 말입니까? 사람이 한다는 말입니까? 천사가 한다는 말입니까? 천사가 하지요. 천사는 누구의 지시로 나타납니까? 요한계시록 1장 1절 생각해 보세요. 사도요한의 계시가 오기 전에 누구 통해서 왔지요? 그리스도의 계시가 천사를 통해서 오지요. 그리고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사도요한이 “아이고, 오셨습니까?” 절했지요. 절할 때 그때 뭐라 합니까? “왜 저보고 절합니까?” “저는 당신 같은 일꾼입니다.” “저보고 절하지 말고 이 모든 계획하신 분은 우리 예수님입니다.” 라고 소개하지요.
요한계시록에서의 활동의 주인공은 누굽니까? 분주하게 누가 움직여요. 7인 7나팔 불때마다 누가 등장해요? 천사가 등장하지요. 인간은 뭡니까? 그냥 이 땅에 지옥에서 그냥 누리세요. 돌아보면 환란인데 이 땅에 살면서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악착같이 내 몸을 하나의 노동시장에 내놓고 “저, 이만한 가치 있습니다.” 내놓고 살아야 되는 거예요. 화요일 아침에 아침마당을 보게 되면 나이 60넘은 분들이 다시 여자 짝맞는다고 짝짓기 하고 있어요. 짝짓기 하는데 특징이 있어요. 남자는 하나인데 여자는 세 명 나오거든요. 그런데 시청자들은 알아요. 어떤 여자를 택할 것인지 다 압니다. 세 명이 붙었을 때, 가장 예쁜 여자 간택됩니다. 예쁜 여자.
그럴 때 그 프로에서 마귀이야기 합니까? 안 하지요. 그 프로에서 예수님 이야기 안하지요. 우리가 만약에 그 프로에 나갔다 하면 거기서 예수님, 마귀 이야기합니까? 실례지만 복음을 아십니까? 그런 소리합니까? 그러면 방송 안 나갈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 자체가 성도는 하지 말라, 하라가 아니라 그 자체가 성도는 거기에 나가도 괜찮아요. 나가면서 이 모든 것도 천국보다는 못하다는 거죠. 주님은 바로 이런 경유를 거쳐서 천국 갔다는 사실을 아는 겁니다. 누구에게만? 택한 자에게만. 그렇다면 그 프로에 나오게 누가했는가? 천사가 한 거죠.
두 사람, 아까 미가엘, 그럼 반대편에 누가 있기 때문에? 바로 마귀가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마귀를 이긴다? 못 이깁니다. 돈을 미워한다. 미쳤나? 돈이 왜 미워요? 뭐든지 할 수 있는데. 완전히 올 마이티인데. 전지전능한 힘인데. 그걸 왜 놓칩니까? 돈을 갖겠다는 자체가 주님보시기에는 그게 환란을 유발시킨대요. 우리가 몸이 육신을 입어서 돈을 밝히게 돼 있어요. 돈 없으면 못 삽니다. 이 자체가 주님이 보시기에는 성도한테는 환란이고 지옥 갈 사람한테는 자기 인생이고. 그런 거예요.
모든 것을 환란으로 해석하도록 천사가 활동해 주신다니까요. 그래서 그런 안목을 가지고 자신을 보시기 바랍니다. 뷔페에 가서 너무 많이 먹어가지고 배가 터지는 것도 환란이에요. 조금 먹을 걸 괜히 많이 먹어가지고 다이어트 실패한 것도 그것도 환란이에요.
택한 자는 어차피 한 때 두 때 반 때 내에서 일어난 일이고 어차피 삼년 반에 일어난 일이고 어차피 1290일 이내에 일어난 일이고 어차피 그것이 예수님 때에는 환란이라는 기간으로 잡은 거예요. 창세기부터 지금까지 창세기 아담은 아담시대의 환란이고 그리고 엘리야는 엘리야시대의 환란이고 지금 이 시대에는 우리시대의 환란이고 모든 게 성도한테는 다 환란 때, 그 때가 뭐냐 한 때 두 때 반 때입니다.
7절 봅시다. 이것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누가 이긴다는 말입니까? 이 땅에서 누가 이긴다? 성도가 지고, 누가 이겨요? 짐승이 이기지요. 성도가 져주세요. 그래야 세상이 이긴 게 아니고 짐승이 이긴 걸로 드디어 감추어진 비밀이 악마의 비밀이 노출되는 겁니다. 힘 빼고 사시기 바랍니다. 힘 빼고 사시되 있는 힘에 대해서 감사하면 되고. 쓸데없이 남에게 힘은 주지 마세요. 집에 돈이 있는 걸 왜 남에게 줘요. 힘들게 번 건데. 다만 힘 빼고 사시고 돈 좀 있다고 깐족대다가는 당합니다. 돈 있어도 없을 때를 생각하고 늘 힘 빼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굉장히 연약하게 살았어요. 왜? 약한데서 강하기 때문에. 사도바울도 마찬가지고요. 항상 마지막 때거든요. 마지막 때는 시간이 마지막 때라, 모든 정체가 들통 난 그 상황이 바로 마지막 때에요. 그 마지막 때문에 우리가 어떤 사람이다. 마지막 때에 성도가 되는 거예요.
드디어 내가 몇 년 믿었느니 몇 살 되었느니 그건 의미 없어요. 그냥 마지막 때를 우리는 주께서 예수님 마지막 때에 우리가 마지막 때 성도로 엘리야는 마지막 때아닙니다. 왜냐? 예수님이나 그 때 안 살았잖아요. 마지막 때에 메시아가 나타났고 메시아의 마지막 나타남을 증거 하라고 우리가 마지막 때 등장했기 때문에 우리가 마지막 때의 성도, 다니엘처럼 마지막 때의 성도가 되는 거예요. 사실은 다니엘은 마지막 때가 아니고 예수님 오시기 전이니까. 예언만 그렇게 했을 뿐이지요.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마지막 때지요.
그리고 4절에 보면,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지식이 더해봤자 어디에 쓰여 진다? 메시아 죽이는데 활용될 거죠. 빨리 왕래해봤자 활동성이 많아 봤자 결국은 짐승이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에, 짐승이 시키는 대로 매매하기 때문에 결국 메시아 죽이는데 한 거예요. 이제 다니엘을 끝내면서 하니까 다니엘 끝내니까 별로 할 일 없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했잖아요. 그 안목을 가지는 거예요. 우리가. “주님이여!” “왜?” “다 이루었네요.” “다 이루었지!”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지요.
우리는 지는 것은 잠시 있어야 될 세상 환란 속에 있는 거고 우리는 떠나면 어디가고? 주와 함께 사도바울처럼 소원처럼 주와 함께 거하게 되고, “아무것도 아니네.” 아무것도 아니지요. 5초간 침묵!
아무것도 아닌데 다니엘은 끝나면서 결국은 구약의 아무리 성도가 똑똑해도 신약의 성령 받은 어린아이보다 못하지요. 왜? 우리는 이미 누리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마지막 때라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새삼스럽게 할 것도 없고 우리는 믿을 것밖에 없음을 감사합니다. 이 땅에 2층의 하늘나라에서 오셔가지고 모든 정체 다 밝혀주시고 세상 자체가 악마가 설쳐대는 세상인 것을 그래서 떠나야 될 세상이고 잊어야 되고 미련두지 말아야 될 세상인 것을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자신이 이 땅의 육신이 되어서 어떻게 살더라도 주께서 지켜주시고 천국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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