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예수님이 나오는 성도

아빠와 함께 2022. 12. 26. 19:51

주님 자신이 자기의 새세대를 위해서 그 성도를, 또 선지자를 어떤 식으로 일을 시켜서 자기 자신만 뽑아내는지를 그 예를 제가 들어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3장입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옛 세대에서 자기를 구원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식으로 구원하면 안 됩니다. 이 옛 세대와 성도는 나와 상관없는 것들이 계속 달라붙는 게 이 세대의 생활이에요. 하루하루 일과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게.

그런데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옛 세대에서 예수님 자신의 일을 뽑아내고, 예수님 자신을 뽑아내고 거기서 새세대, 천국이지요, 천국 생활을 뽑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 예가 열왕기상 13장에 나오는데 제가 이전에 유튜브 강의에서 앞부분을 언급을 했었어요.

이스라엘이 남쪽과 북쪽 둘로 쪼개졌습니다. 북쪽에는 뭐가 없는가? 성전이 없어요. 남쪽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이 있는 쪽의 선지자가 북쪽에 가서 예언을 합니다. 북쪽 여로보암왕이 8월 15일에 벧엘, 북이스라엘에 속해요, 우리나라 같으면 북한에 속하는 거지요, 북한의 원산쯤 되는 지역, 휴전선 가까운 지역인데 거기서 8월 15일에 유사축제를 만들어서 여로보암왕이 제사를 지내고 있을 때 남쪽 선지자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남쪽 선지자가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가요. 북쪽 나라에 가서 그 나라에 대한 아주 불길한 징조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뭐냐? 하나님이 지시하지 않은 제단에서 제사 드렸기 때문에……, 여기 2절부터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다윗의 집은 남쪽입니다. 유다니까 남쪽이에요. 북쪽은 다윗의 지파가 없어요.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여기 요시아가 나오는데 요시아는 몇 년 뒤에나 나올 인물이냐 하면, 약 3백 년 뒤의 사람이에요.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이 활동한 게 1592년이라 하고 300년 더해보세요. 1892년이잖아요.

하여튼 “약 3백 년 뒤의 사람, 어떤 남쪽 왕이 이 엉뚱한 제단에 제사하는 이 제사장들을 이 벧엘이라는 곳에서 다 불태워버릴 것이다. 제단도 불태우고 제사장도 불태워버릴 것이다.” 라고 예언을 했어요. 그러니 여로보암 왕은 자존감이 상할거 아니겠습니까? “어디서 이놈이 북쪽 나라 남의 동네까지 와서!” 하고 “저놈 잡아라!” 하고 손을 내밀었는데 그 내민 손이 다시 원상복귀가 안 되네요.

그러니까 자기가 욕을 했던 선지자한테 부탁하고 빌었어요. 제발 내 손 좀 원상복귀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원래대로 해주니까 그 때 왕이 “아, 네가 진짜 선지자다.” 해서 “내가 너를 후하게 대접해주마.” 할 때 선지자가 하는 말이 “내가 하나님 앞에지시 받을 때 물이나 어떤 떡도 먹지 말고 오던 길로도 오지 말고 다른 길로 빠져서 오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나라의 반을 줘도 내가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안 받습니다.” 하고 나왔어요. 청렴한 선지자 같아요, 청렴한 선지자.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그 소리를 듣고 난 뒤에 북쪽 벧엘에 한 선지자가 있는데 그 선지자는 구라를 쳤어요. 자기는 하나님의 계시 받은 적도 없는데 그 용한 선지자 만났으니까 뭐라고 거짓말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천사가 말하기를, 당신 대접하라고 하더라. 그러니 성의를 봐서라도 우리 집에 가서 떡도 먹고 합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남쪽 선지자가 순진했던지 ‘천사의 계시를 받았어? 계시받았다면 나와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인데. 같은 계시 받았으니 나도 계시받고 움직이는데 저 사람도 계시받고 움직인다면 아, 주의 뜻인 모양이다.’ 해서 그게 거짓말하는 줄도 모르고 그 집에 가서 떡도 먹고 대접을 받았다는 말이지요.

그때, 바로 그때 북쪽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무슨 뜻이냐 하면, 성전이 남쪽에 있잖아요. 지금 북쪽에는 성전이 없어요. 그야말로 지옥이고 죄 밖에 없습니다. 죄밖에 없는 그 동네에서 남쪽의 성전이 있는 그쪽 선지자가 움직인다, 운동하는 것, 움직여서 그 죄만 있는 곳에 갔을 때 그 선지자가 죄만 있는 이 인간세대, 죄밖에 없는 이 세대에서 참된 선지자가 어떤 말씀의 표현을 자기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겠는가?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왔을 때 하나님을 버린 이 세상에서 진짜 메시아, 구원자가 이 땅에 등장했다는 시그널, 그 시그널은 뭐냐? 그것은 바로 자신의 죽음이에요. 크리스마스트리도 아니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아닙니다. 그냥 죽음이에요.

그 북쪽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합니다. 졸지에 생뚱맞게 계시받은 그 선지자가 남쪽 선지자에게 대언해서 이야기를 해요. “네가 내 말을 어겼으니 너는 고향 남쪽에 있는 네 무덤에 못갈 것이다.” 하고 그 계시를 전합니다. ‘미안합니다. 집에 가세요. 내가 구라를 쳤습니다.’ 하고 난 뒤에 보냈는데 그 남쪽의 선지자가 가다가 길가의 사자(lion)가 등장해서 그 사람을 죽여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자가 그 죽은 선지자를 뜯어먹거나 하진 않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시신 자체가 움직이는 성전이기 때문에 필요해요. 그 시신이 필요하기에 훼손하지 않은 거예요. 정말로 선지자는 죽어 있고 사자는 멀뚱히 쳐다보고 있고, 그래서 그 시신을 수습해서 어디에 묻었느냐 하면, 거짓말을 했던 북쪽 선지자의 자기 묘실에 묻습니다. 묻고 북쪽 선지자가 하는 말이, “내가 죽으면 당신 옆에 같이 묻힐래.”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저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왕상 18:31)


선지자 둘을 통해서 예수님 한 분의 행함을, 2가 예수님 한 분인 1을 두 명이 짝을 이뤄서, 한 분이 하신 일이 이 땅에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구약 열왕기상 13장에서 보여줍니다. 내 죄 때문에 죽은 그분 곁에 내가 묻히겠다.

이게 뭐냐? 트럭이 와서 송중기를 밀어치듯이 주의 말씀이 이 세대의 나를 죽여버리고, 내가, 이 세대에 속한 내가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열심히 교회 오고, 이런 방식이 아니라 나를 죽이는 방식으로 나를 구원하는 거예요. 이 세대에서는 죽고, 예수님 세대에서 다시 부활의 능력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열왕기상 13장을 통해서 두 선지자를 통해서 보여주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지자 둘을 장기알같이 다루고 있는 거예요. 선지자만 아니고 오늘날 우리도 다뤄요. 매일같이 이 세대에 살면서 “이 세대 사람과 똑같이 살아라.” 어떤 경우라도 내가 의롭게 되는 남보다 더 뛰어난 짓을 하지 마세요. 왜? 그래야 매일같이 everyday, 매일우유 알지요, 매일우유, 매일같이 나에게 내가 나는 죽으면 안 돼, 나는 성공해야 돼, 하는 쓰레기가 계속 나올 수 있기때문에, 그 쓰레기가!

우리 성도가 할 수 있는 것은 쓰레기가 나오는 그걸 지켜보는 그 즐거움 외에 다른 즐거움은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아~, 쓰레기만 되니 내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네.” 하는 말을 매일같이 하게 만들어요. 내가 삭제되는 가벼움, 무의미한 내가 지금 없어져도 괜찮다는 그 존재의 가벼움, 이게 바로 폭포 안에, 주님의 죽음 안에, 말씀 안에서 복음을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여기는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시는군요, 잘 적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부활하십니다, 여기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성경 알았지요?” 이런 식이 아닙니다. 종교는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게 종교고, 복음은 내 안에 계신, 우리는 껍질이니까 껍질은 버리고, 땅콩껍질은 버리잖아요,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주님 자기가 새롭게 만든, 주님 자신의 말씀으로 지배하는 그 새 세대가 이제 네 속에서 이렇게 내장처럼, 창자처럼 늘 튀어나올 수 있도록 우리는 그 소스, 빌미를, 그 계기를 제공하라고 우리는 평생 죽을 때까지 이기주의로 살아가는 것, 이 이기주의의 가벼움과 즐거움이 우리의 성도의 삶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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