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으면서

믿는 자와 함께 하지않는 주님

아빠와 함께 2022. 8. 8. 12:58

새로 시작하자. 나의 무가치를 정말 알고있는가

 

죽지 아니하면 복음이 나오지 않는다

 

사도는 알았던 거예요. 사도가 여기에 알았다는 말은, 내가 믿음 있는 한 절대로 주님께는 다가설 수 없고 오히려 주님이 내빼신다는, 도망치고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사도바울은 주님이 찾아올 때 비로소 알게 된 거예요. 믿는 자와 함께 하지 않는 주님을 알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런 고백을 하는 이 사도바울의 고백의 지점, 고백의 지점이 바로 성도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지점으로 복음은 가동되고 있었던 겁니다. 안다는 것은 ‘새로 시작하라’에요. 맨 처음부터 다시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성도는 죄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피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피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피가 나와요. 그 안에 비로소 자기 죄가 나오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자꾸 내가 그 나오는 죄를 측정하려면 이것은 선악 체제에 나오는 악마가 가르쳐준 지식에 준해서 나오는 윤리적 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것은 제대로 된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 아는 지식으로 지금 꼼수 쓰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성도는 죄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피가 나와 버린 거에요. 예수님의 피가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고 이 몸 안에 예수님의 피가 있는데 그 피가 땀샘을 통해서 온몸으로 피가 나오는 거예요.

사도바울이 예수 믿고 난 뒤에 자기 죽은 시체를 통해서 은혜가 나온다는 오늘 본문의 고백, 이미 폭행자 핍박자인 이미 죽었던 내 몸속에서 주의 은혜와 주의 믿음과 사랑이 터져 나오는 것을 목격하는 것처럼 성도도 자기 몸을 계속 유지해가면서 거기서 자기 죄가 나오는 것을 보지 말고 예수님의 피가 나오는 것을 봐야 돼요. 피가 그게 생명이거든요. 그것 때문에 주님께서 복음이 나오도록, 피복음이 나오도록 우리를 찾아오신 거예요. 우리 천당 가라고 나온 것이 아니고, ‘너 이렇게 요령 부리면 천당 간다.’ 그게 아니고 ‘십자가 피 믿으라고 네 죄를 끄집어내고’ 이게 아니라 그냥 피가 나오면 그 피 안에서 이미 애초부터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이 같이 거기에 들어 있는 겁니다.주께서 유대인에게 피신한 것은 믿음 없으라는 확인이지요. 계속 확인작업 하는 거예요.  피가 나올 때 내가 죄인인가 이러면 되는 거예요. 죄가 나와서 죄인이 아니라 피가 나올 때 죄인이 되는 거예요.

 

누가복음 18장 8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성경공부 해가지고 수련회 참석해서 믿음 생길 것 같으면요, 이런 말씀 안 하지요. 수련회 참석을 해야 될 이유가, 내가 믿음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참석을 해야 돼요. 수련회 참석도 안 하지만 “나는 믿음 없어요.” 하는 것은 겸손으로 둔갑한 거예요. 참석을 함으로써 ‘야, 내가 믿음 있다는 이것이 가짜구나.’ 참석해서 들입다 싸우고 험담하고, 그걸 통해서 아, 참석 안 했으면 이런 내 성질이 이 정도까지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너 안 돼. 내가 안 찾아갔으면 너 끝났어.” 하는 내용을 한때가 아니라 천국에 이를 때까지 계속 유지 시켜 주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일입니다.

성령의 일은 개인의 관심을 박살 내면서 주께서 만드는 진짜 현실은 말씀이 작용하는, 말씀이라는, 인간으로서는 죽은 인간들이 발견할 수도 없는 그런 세계의 존재의 활동성을 계속해서 부추기고 그걸 살려내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일이에요. 그게 살려지게 되면 인생을 살면서 가졌던 여러 가지 사소한 일들이 그야말로 미미하고 사소한 일에 불과하고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그냥 가짜현실인 것이 성령의 들이닥침으로 말끔하게 해소가 됩니다.

 

새로움이 그동안 무겁게 느꼈던 나 자신을 하찮게 여기게 만든다는 겁니다, 새로움이. 그렇게 중요하고, 그렇게 대단하고, 그렇게 아까운 나와 내 평생 이 자체가 0.1그램도 안 되는 가볍기 짝이 없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존재, 설탕 한 스푼도 안되는 그런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찾을 수 없는 세계가 들이닥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주 하찮고 가벼운 존재인 것을 아는 그러한 희열과 감격에 휩싸이게 만듭니다. 사도는 자기가 시체보다 못한 것을 알고 감동 먹고 있어요. 감격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는 바람같이 뭐든지 할 수 있는 거예요. 성령의 바람같이 뭐든지 할 수 있는 겁니다. 이 말은,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은 매 순간 그만 접어도 상관없는, 마치 칠판 위에 쓰인 분필 글씨 같아요. 지워 버리면 그만인 거예요. 새로운 세계를 사도는 소개하고 있고 그 사도가 소개하는 세계는 끊임없이 새롭게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겁니다. 그 대단한 활동 앞에서 사람들은 자기한테 관심 둘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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