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답변

하나님의 형상

아빠와 함께 2022. 7. 2. 19:28

※하나님의 형상

 

질문 : 목사님 아까 인자 말씀하셨죠. 이게 한때 굉장히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이었는데 목사님 며칠 전에 창세기 말씀 이렇게 보면 목사님 이 부분을 거론하셨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이제 뭐 아담한테 니가 동물 이름도 붙여주고 만물을 다스리는 어떤 그런 권세, 근데 그거를 만물을 다스릴 인간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열두 제자들도 막 바다 풍랑 일고 그럴 때 그걸 못했는데 오로지 하신 분이 예수님이시죠. 그래서 그러면은 인자라는 것이 사람의 아들인데 그러면 이제 저희들은 다 사람도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러고 오로지 유일하게 사람이신 분이 예수님.
답변 : 예수님밖에 없어요. 그걸 마지막 아담이라고 합니다. 처음 아담과의 대비되는 마지막 아담 두 번째 아담. 그리고 첫 번째 아담은 모형이에요. 두 번째 예수님을 위한 모형이고 인간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래야 대자연 풍랑과 이 대자연이 그야말로 정복하고 다스리라가 철저하게 인간에게 지배당하고 복종당한 게 맞지요.
질문 : 그러면 목사님. 잘못하다가는 예수님도 창조가 됐다고 그렇게 생각.
답변 : 그걸 창조에서 그걸 피하는 방법은 예수님은 인간이라고 그냥 할 게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 골로새서 1장 15절에. 인자 자체에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어요. 골로새서 1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러니까 형상이니까 사람이지요. 원래 창조, 1장의 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게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앙꼬가 있어줘야 그게 만두라고 할 수 있다. 근데 범죄하고 난 뒤에는 형상 없는데 그 인간이라 할 수 없지요. 그러면 왜 만들었냐? 미리 모형으로 만드신 거예요.
질문 : 결론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아까 예수님 창조 거기.
답변 :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물을 만들었는데 골로새서 1장 16절에 보면 모든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 다 그가 만드셨고 그를 위하여 만들었다 이 말이죠. 사람을 비롯해서 악마부터 천사부터 해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위하여 모든 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골로새서에 보면. 성경책 거기 보면 나와요. 그래서 그분이 사람의 모양으로 와버리니까 기존의 인간들은 뭐라 봅니까? 자기가 인간이라고 보거든요. 왜 같은 인간인데 말이 안 통하죠? 그리고 인간이라 하면서 우리는 육으로 태어났는데 그분은 아빠 없이 태어났어요. 아빠가 없이 태어났어요. 아빠 없이 태어났으면 그냥 하늘로서 떨어지면 되는데 또 엄마는 있어. 마리아라는 육은 있고 또 태어났거든요.
질문 :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그러니까 자기의 형상대로 빚으사 이 땅에 오신 게 예수님이잖아요?
답변 : 그렇죠. 그렇죠.
질문 : 그런데 저는 목사님 설교하실 때 그냥 이 부분을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면 좋은데 특히나 3일째 나올 때 왜 목사님은 저렇게 설명을 하실까? 그냥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해서 그냥 이 땅에 오신 거야. 그러니까 하나님 하나님 예수님은 똑같아. 저는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는데. 삼위일체.
답변 : 삼위일체를 피하기 위해서.
질문 : 어렵거든요.
답변 : 어려운 것은 피하면 되죠. 어려운 걸 껴안을 필요 없고요.
질문 : 그러니까 이게 인간이 만든 거죠?
답변 : 인간이 만든 거죠.
질문 : 이건 말이 안 되죠?
답변 : 말이 안 되죠. 왜 그러냐 하면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형상이 같다 이렇게 했잖아요? 그 하나님이 개념 자체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아닌데요. 삼위일체가 그래서 문제가 돼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게 성경의 이야기예요. 근데 인간들이 사용하는 하나님 용어가 되어 버리면 인간들은 스스로 삼위일체 늪에 빠져가지고 그러면 이 하나님하고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고 왜 두 분이고 세 분이 되느냐? 이거는 인간은 지가 무식하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자꾸 그걸 지가 생각하는 것을 맞춰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아까 했잖아요. 사울이라는 사람이 만난 사람은 나사렛 예수라고요. 출발점을 따라가세요. 그러면 그분은 사람인데 보니까 그게 인자고 그게 하나님의 형상이니까 하나님 쪽에 속하신 분이구나, 하나님이시구나. 그분이. 이렇게 할 때 출발점이 이미 인자로부터 나사렛 예수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딱 잘라 버리고 시작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짐을 피할 수 할 수 있는 거예요. 기존에 삼위일체 설정해 놓고 예수님이 여기다가 어느 지점에 위치하면 우리가 옳은 생각을 합니까? 이래 버리면 기존의 삼위일체의 그 틀이 깨지지 않으니까 용어 혼선이 일어나거든. 용어 개념이 혼선이 일어나요. 용어가 이래 있으면 용어들이 이렇게 용어들이 용어a 용어b c라고 있으면 용어가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이게 자기 영향력을 발산을 뻗어나간다고요. 용어가. 여기도 고정돼 있으면 뻗어 나와가지고 나중에 이 둘이 만나게 되면 여기서 칙칙 막 싸운다고요. 싸울 때에 둘이 모순되는 일이 벌어져버리면 a b c 용어 선정에 모순되는 일이 벌어져 버리면 내가 b를 선택할지 a를 선택할지 그건 최종적으로 지가 또 하나를 또 선택해야 돼요. 삼위일체 모순점이 그겁니다. 3위가 계시다. 3은 3이잖아요. 3은 반드시 용납이 안 돼요. 3은 인간의 이성에 그런 거 없어요. 반드시 인간은 1로 귀환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두 개가 날아가 버리게 돼 있어요. 인간의 한계가 그래요. 예를 들면 사랑은 상대를 이뻐하는 것이다. 이쪽 개념으로 시작합니다. 근데 b라는 개념은 사랑은 희생하는 것이다. 희생하는 것이다. 둘이 만났어요. 카페에서 둘이 만나 이야기합니다. 사랑은 상대를 그냥 무조건 좋게 보고 이뻐하는 것이다. 아니야. 사랑은 희생하는 것이야. 그럼 두 개를 합쳐 봅시다, 못나도 못났는데 사랑할 수 있느냐? 이쁘지 않은데 사랑할 수 있느냐? 이쪽에서 딱 대겠지요. 못났는데 왜 그게 사랑이 되지? 그러니까 내가 말이 맞잖아. 그러면 이쪽에서 못나도 자식인데 희생 안 할래? 그러면 희생해야지. 그래. 내 말이 맞잖아. 그러니까 인간은 자기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그 용어부터 고집을 부려가지고 상대한테 안 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용어 저런 거 치우고 예수님이 십자가부터 출발하자는 게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 받은 사도들의 생각이에요. 그분은 죽었고 그분은 부활했다. 그 말은 뭐냐? 모든 인간은 다 죽어 마땅하고 그분이 살려준 사람은 백성이다. 이게 사도행전에 나온 사도들의 복음이에요. 복음. 그다음에 왜 죽느냐 하는 건 죄 때문에 죽고 죄는 뭐냐? 율법 때문에 죽고 그게 쭉 나오는 거예요. 신학 자체를 사도는 인정을 안 하지 않습니다. 신학 자체는 철학의 일종이니까 인정을 하지 않아요. 신학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그건 신학은 인간의 지혜고 오직 내가 자랑하는 것은 십자가 외에는 다른 게 자랑할 게 없다고 그랬어요. 십자가 사건, 사건화 시키는 거예요. 십자가 사건 자체, 십자가라는 용어를 믿는 게 아니고 지금 십자가로 와서 활동하시는 예수님 자체의 활동이 오늘날 우리를 구원한다. 사도 바울은 그런 쪽으로 나가지요. 삼위일체를 체크하는 것은 그거는 뒤에 이제 뒤에 수습한다고 철학 이용해가지고 뭐가 존재냐 실존이냐 그것까지 동원시켜서 만든 거예요.
질문 : 십자가 말씀하셨으니까 성도가 주님께서 다 이루신 건데 성도에게 십자가라는 것은 복음이 들려지게 하시고 그게 믿어지면서 목사님 하신 대로 그냥 사는 거.
답변 : 바탕이죠.
질문 : 그게 성도의 십자가
답변 : 아까 없는 데서 있게 하고 죽은 데서 살리는데 그게 로마서 4장이 나옵니다. 아브라함 이삭 이야기 하면서 이삭이라는 것은 아브라함이 사전에 예상한 거 없어요. 인간이 예상 못했습니다. 내가 예상하지 않는 일이 나한테 발생된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예상 못한 일이 발생된 거예요. 그래서 이름도 이삭이에요. 농담하십니까, 이런 뜻이라 말이요. 지금 누굴 놀리십니까,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을. 자식 주려면 진작 주시지 왜 이렇게 자식을 못 낳는 시점까지 끌어 당겨서 자식 못 낳는 것을 분명히 하시고 왜 자식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할 정도로 당황스럽죠. 그런데 똑같은 방식이 로마서 4장에 보면 4장 25절에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의롭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심은 우리 죄 때문에 죽었고, 무슨 뜻입니까? 입 다물고 있어. 가만히 있어도 죄야 ,그런 뜻이에요. 예수님이 살아난 것은 부활한 것은 너희 의 때문에 부활했고, 뭔 뜻입니까? 가만히 있어. 니가 의로워.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십자가는 뭐냐? 성도가 성도되게 하는 사건의 바탕이죠. 바닥이죠. 바탕이 되는 겁니다. 사도가 그것을 나는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했다. 그 이야기 해가지고 가까운 사람한테 욕 되게 많이 얻어먹었어요. 많이 얻어먹었어요. 성경에 보면 십자가만 있는 게 아니고 부활도 있고 성령의 열매도 있고 뭐 재림도 있는데 왜 너는 왜 십자가만 주장하느냐? 사도가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로 했다면 출발점이 그건데 너는 출발점을 삼지 않고 이것저것 개념들을 꽃다발을 만든다는 거예요. 십자가도 있고 성화도 있고 자꾸 뭐도 있고 이게 진짜 신학을 배웠기 때문에 그런 후유증이 발생되는 거예요. 내 구원하는 데 좋은 것은 다 챙기자. 빠뜨리면 내 구원에 지장된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출발점이 십자가인데 그게 아니고 좋은 거는 다 끌어 모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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