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구약적 용어 표현
질문 :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서 본 성전과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사도요한이 보았던 성전의 차이점? 차이나 아니면 같은 점?
답변 : 이번에 수련회에 할 건데 반칙이에요. 미리 수련회 주제 이야기하라고 하는 건데 수련회 때 할 걸 지금 하는 셈인데요. 에스겔 1장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가 나와요. 그리고 에스겔 48장에 보면 성전 나옵니다. 이 성전 없습니다. 없어요. 이 보좌도 없습니다. 누구한테만 있느냐? 에스겔에게만 있어요. 에스겔에게만. 에스겔에게만 보좌가 있고 에스겔에게만 성전이 있습니다. 없는 성전과 보좌가 에스겔에게 포함이 되어버리면 에스겔은 뭐가 되냐 하면 인자가 돼요. 인자. 예수님의 호칭 인자, 개인이 된다. 개인. 개인이 알아버린 그 계시는 꽁꽁 묶여져 있어요. 왜냐하면 에스겔 안에 미래의 이스라엘이 전부가 들어 있기 때문에 현재 이스라엘은 이 이스라엘과 너무나 차이지기 때문에 철저하게 이거는 하나님의 뜻에서 이스라엘이 배제돼야 됩니다. 그러면 배제된 이스라엘 속에 뭐가 있습니까? 성전이 있었지요. 배제된 이스라엘에 옛날에 예언이 있고 하나님 보좌 있고 이런 거 있다고 예언서에 돼 있죠. 이 전체가 인간들이 이해하는 이 성경 해석이 나중에 처참하게 다 깨져야 돼요. 이게 잘못된 거짓된 해석이라는 것이 들춰져야 됩니다. 그래서 이 성전을 짓는 그 치수를 재었는데 이 치수가 누구 치수냐? 이게 바로 예수님 치수예요. 이 치수가. 성전 치수가, 이렇게 장 척 장을 재는, 예수님 치수입니다. 예수님 치수가 나중에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이 되게 되면 이거는 성도의 숫자가 돼 버려요. 성도의 숫자. 기존에 이스라엘이 안고 있는 성전은 이스라엘 멸망과 함께 이건 불타 없어야 돼요. 에스겔은 이게 왜 없어져야 되느냐를 설명하는 겁니다. 이미 잠재적으로 따로 준비된 게 있기 때문에 이거는 아끼지 말고 이거는 날아가 버려요. 그러면 이 보좌는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보좌는 에스겔에게만 나타나고 다른 사람이 나타나버리면 뭐로 나타나냐? 이거는 불심판으로 나타나 버려요. 보좌를 쳐다볼 새도 없어요. 불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불심판이 있는 곳이 보좌가 되버려요. 함축해버리면. 차이점은 하나는 없어져야 되고 하나님의 성전은 이게 없다는 거예요. 없을 때 뭐 나타난다 했어요? 성전과 보좌가 한꺼번에 나타날 때 뭐로 나타났습니까? 인자.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성전의 주인이다. 내가 곧 성전이다.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짓는다. 일반 그 당시에 46년 동안 지은 유대인한테는 이거는 진짜 미친 소리에요. 건물도 벽돌도 없는데 내가 성전이 돼요. 내가. 이 성전이 기존에 있는 성전은 왜 성전이 아니냐? 진짜 성전이 이 땅에서 죽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지어지는 모든 예배당과 모든 성전은 이거는 거짓임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미 그게 밝혀지지요. 왜냐? 왜 그게 없어지느냐? 사람의 손으로 지었거든요. 인간의 행함이 포함된다고요. 법궤 만들 때 누구 손으로 법궤 만들었어요? 그 지혜로운 자들이 만들었죠. 오홀리압이 만들었죠. 그거 다 불타야 됩니다. 그 성전의 그 기구들 다 없어져요. 왜? 모형이에요. 모형에는 반드시 인간의 손이 들어가면 더러워서 안 받아요. 하나님께서.
질문 : 목사님. 근데 언약궤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늘이 열려 있어 언약계가.
답변 : 계시록의 개념은 구약 선지자에 있는 그 개념을 그대로 따와서 설명한 거예요. 그대로 따 와서. 사도 요한이 볼 때 하늘의 언약계가 보인다 했지요. 그 언약궤가 보인다. 언약의 개념을 언약궤ㅏ는 그 단어 자체가 구약의 선지자에 있는 모형적 단어를 그대로 가져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요한계시록이 땅에 있는 성도들에게 인간적 언어로 전파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나중에 보니까 거기에 언약궤만 있는 게 아니고 성전이 있어서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옵니까? 물이 흘러나오죠. 그건 바로 에스겔 47장에 나오는 거기에 물이 흘러나오는 그 대목이 오백 미터 가서 해보니까 이만큼 더 오백 미터 가니까 나중에 더 깊게 깊이 있게 더 들어간다는 거 그걸 신약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그걸 하느냐 하면 바로 요한복음 7장에서 마지막 초막절에 성령 안에를 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성령 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에스엘 인자가 물속에 들어가다가 나중에 물속에 잠길 정도가 되지요. 나보다 성령이 나를 잠식시키고 덮어버리는 그 시대, 그 시대가 올 것이다. 그래서 에스겔의 역할은 예수님 역할로서 다 했고 예수님이 에스겔의 말씀을 다 이루셔서 성도로 하여금 처소를 성령 안을 처소를 만들어 버리죠. 시간이 흐르지 않는 처소를 만들어버리죠.
질문 : 그러면 지금 이제 언약궤는 사실은 하늘에 없다 이 말입니까?
답변 ; 언약궤는 불타버렸죠.
질문 : 그럼 그 순간에 요한계시록에 보이는 언약궤는 구약 그거를 그대로 빌려와가지고. 답변 : 구약적 용어로 묘사한 거예요. 요한계시록에 다 묘사된 거예요. 요한계시록에. 요한 계시록의 지파 12지파도 전부 다 구약 지파로 나온 거고 다 묘사된 거예요. 완성이 들어있는데 그 완성을 구약적 언어로 완성을 표현한 겁니다. 그걸 이제 마태나 요한복음 보면 간단해요. 그냥 사도 바울은 그걸 뭐로 표출하느냐? 그냥 언약궤 안이라 안하죠. 예수 안 또는 십자가 안 성령 안 그렇게 간단하게 표현해버려요. 표현하는 방법이. 완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전제 되어있는 것들을 요한계시록은 동원시켰다 이렇게 보면 돼요.
질문 : 누가복음 17장 마지막에 보면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답변 : 이거는 예언서에 이미 거기에 이사야인가 예언서에 나와요. 예언서에 보면 징후 또는 징조라고 하죠. 그게 뭐냐 하면 자연 세계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인간들만 무식해서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인간 세계가 이미 침울하고 어둡고 어두운 징후를 갖고 있는데 인간들만 모르고 뛰고 까불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연 세계는 이미 파악하고 있으니까 마치 그 땅거미 내려앉듯이 독수리가 어두운 암울한 미래를 이 자연 세계는 이미 알고 있다는 그런 뜻이에요. 또 대표해서 왕장창 깨지실 분?
제가 아까 강의에서 설명하다가 이거는 좀 난해한 부분이라서 제가 주제했던 대목이 뭐냐 하면은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게 뭔가 하면,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관한 문제죠. 조금만 보충하면 이렇습니다. 경제의 핵심은 뭐냐? 자본이에요. 그 자본을 감당을 못합니다. 경제를 핵심을 자본을 감당을 못하고 여기에 반응한 정치가 경제에 경제를 이렇게 보자 했는데 정치가 정치적으로 기껏 해놓은 게 뭐냐 하면 대의민주주의예요. 이것이 자본을 관리가 통제가 가능하냐? 통제가 안 됩니다. 오히려 자본이 대의민주의의 꾀를 통제해버리면 여기서 돈 가진 자가 국회의원이 돼 버려요. 국회의원 되고 대중들의 생각은 차단되고 국회의원들 의원들이 대중들의 의견을 대변해버리는 거예요. 거기에 돈 가진 국회의원들이 돈 없는 대중들의 의견을 대표해서 자본을 더욱더 키워나가는 거, 나가는 거. 그렇게 되니까 이거는 민주주의라는 방식이 뭐가 되느냐 하면은 계급 사회가 돼버려요. 이것을 현대의 경제나 정치에서는 해결이 안됩니다. 이게 해결이 안 돼요. 그래서 이게 요한계시록 17장에 보면 결국은 이 세상에 권력을 쥐는 것은 바로 음녀인데 음녀의 특징은 뭐냐 하면 무역한 거예요. 무역은 세상에 돈으로 통합하는 걸 무역이라 해요. 돈으로 통합하는 거, 니 나라 내 나라 없이 글로벌한 사회에서는 자본이 모든 것이 자본이 말을 해요. 자본이. 어떤 대통령이나 어떤 수상이 말을 하더라도 경제적인 이득을 그 안에 포함시켜서 말을 하고 어떤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서 전쟁을 할 때도 거기에 반드시 경제적인 이익을 내다보고 거기에다가 그 이익을 확대시키기 위해서 군사력을 거기에다가 동원시키는 겁니다. 왜? 군대의 모든 무기는 돈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본질을 뽑아야 될 거 아닙니까? 거기에 무기 생산에 들어가는 투자 비용 그 전쟁을 해서 경제적 이익이 없는데 무슨 전쟁을 해요? 이익 때문에 전쟁을 하는 거예요. 거기 민주주의 하는 게 이게 제 이 말은 뭐냐면 민주주이란 이 말이 다 허풍이다 이 말입니다. 핑계에 불과하다 이 말이에요. 지금. 민주주의가 돼버리면 이거는 각계 국가별이 되죠. 각계 국가라는 것이 이거는 형식이고 실제로 뭐냐 하면은 자본으로 이미 한 통속이 되는 글로벌 사회가 된 거예요. 돈으로. 우크라이나 전쟁하는데 우리나라 채소값 상추값이 오르잖아요. 이거 나라들로 어떻게 이 조치를 할 수 없어요. 관세를 높이고 해가지고 수출입을 관리해도 저쪽 나라에서 우리 쪽에 수출을 관리해 버리면 그냥 항복해 버리는 겁니다. 이 경제는 뭡니까? 돈이거든요. 돈 밑에는 종교도 우습고 과학 철학 이런 것도 다 어떤 화장한 거예요. 그래서 이 바다에서 오는 그 짐승은 이 자본과 결탁하는데 자본은 음녀고 음녀가 경제가 대의 정치, 정치를 하고 있는 짐승을 올라타지요. 요한계시록에. 올라타는데 올라타면서 그 짐승의 글자가 있는데 그게 뭐냐? 복음 그딴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복음을 모독하는 식으로 경제가 발전되는 거예요. 그 경제를 발전시키도록 누가 했느냐? 악마가 했고 악마를 그렇게 활기차게 누가 했는가? 우리 주님이 하시죠. 왜 주님이 그렇게 하시는가? 성도로 하여금 왜 이 세상에 대해서 미련을 안 가져야 될 이유를 성도 보고 알려주기 위해서. 니 마음대로 활개치도록 하기 위해서 주께서 그렇게 악마를 조절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되면 뭡니까? 복음과 무엇과 연관되어 있다? 복음과 경제 자본주의 이론과 그리고 민주주의 형과는 전부 다 같이 연계돼 있죠. 이런 식으로 여러분들이 복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 된다 이 말입니다. 나는 뭐 애널리스트고 나는 뭐 투자 전문가이기 때문에 복음은 거기다가 내가 하는 일은 주의 재능이고 거기다가 복음 하나 추가하면 구원받겠지 이런 식으로 할 수 없다 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