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롬14;14) "I know, and am persuaded by the Lord Jesus, that there is nothing unclean of itself: but to him that esteemeth any thing to be unclean, to him it is unclean."
1.신앙이라 하는 것에 대해서 절대로 우리가 주인의 자리에 앉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은 거예요. 용서를 소유한 내가 된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용서라는 그 사랑으로 늘 얻어맞는 자리에 와 있어요. 용서하시는 분이 우리의 주인이고 우리는 항상 용서가 되는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다시말해 항상 죄가 있는 자리에 있어야 저쪽에서 용서가 이쪽으로 날라 오잖아요. 주 안에서는 다 같이 용서받는 입장에 있기에 어떤 사람도 그 주 안에 있는 원칙을 자기한테 집어넣어서 자기를 절대화 시킬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로마서 14장11-12절에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신자다 혹은 아니다, 이걸 특정한 행위를 가지고 판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직고하리라. 바로 고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아직은 저로 하여금 채소만 먹게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이여, 저에게는 채소도 먹어도 되고 고기도 먹어도 된다고 그렇게 시켰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살아가시라는 말입니다. “아직은 술 먹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해서 그렇게 살게 하셨습니다.”라고 직고하라는 그 말입니다.
2.사람은 자꾸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그걸 주님, 특정목사, 복음 아는 목사를 집어넣는 경향들이 있는데 ‘나는 이제는 술 먹어도 죄가 아니고 마음 놓고 술 먹어도 된다.’ 하는 그 자체가 형제를 자빠트리는 일이 된다는 말이지요. 바로 주님을 보고 해야 할 이야기를, 자랑도 아닌 것을, 그게 무슨 자랑입니까, 그걸 형제를 경유해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자기가 절대적이 돼요. 술 먹기 싫어라 하는데 우연히, 우연히 술을 한 잔 먹은 것이 결코 우리로 하여금 천국 지옥을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다, 라는 식으로 술을 먹으면 되는데 인간이 우연히 한 잔 먹어놓고는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되느냐? ‘술 먹어도 되네?’ 그 다음부터는 술 먹는 공간이 자기의 절대공간, 절대카페가 되는 거예요. 내 공간에는 술 먹어도 되는 공간이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이게 우연이 아니고 절대가 되어서 자기가 신앙의 기준이 되버리는 거지요. 우연히, 우연히 술집에 갔는데 우연히 치맥을 먹었는데, 진짜 우연히 위스키와 폭탄주를 마셨는데, 안 먹으려고 했는데 우연히 손이 갔는데, 안 하려고 했는데 우연히 손이 가서 우연히 손이 그 잔을 들었는데 우연히 그게 목으로 넘어갔거든요. 우연히 넘어가서 우연히 얼굴이 뜨거워지고 벌게지는데, 우연히 비틀거리다가 차 못 몰아서 우연히 대리 불러서 우연히 집에 갔는데 우연히 취중에 떠들다가 잤는지 어쨌는지 우연히 깨보니까 우연히 술을 마셨더라. 그 ‘우연히’만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입니다. 자기 정당성, 이거 먹어도 구원된다, 이런 것 하지 말고 모든 것이 ‘안하려고 했는데.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서 성경말씀 알면서도 우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라고 해야 돼요. ‘내가 이렇게 술을 먹으면 지옥가기에 나는 절대로 술 끊겠습니다.’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술 먹은 적이 있는 형제를 모독하는 것이 되고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고 그것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우연이고 모든 것이 죄를 들추어내는 것이거든요.
3.이런 말이 있답니다. 바람을 안 피운 사람은 있어도 바람을 한 번 피운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바람을 한 번도 안 피운 그런 사람은 있어도 한 번 피워놓으면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두 번 세 번 계속 피운다는 그 말이에요. 왜, 자기의 절대공간, 절대시간, 자기 자신을 절대적인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그래요. 세 번을 피우든 네 번을 피우든 이것도 우연이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항상 말씀 앞에 우리는 어린양의 보좌, 어린양의 보좌가 아니면 여러분은 망해요. 어린양의 피가 보이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지금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하여튼 어린양의 보좌가 보이는 곳에 가면 여러분은 안전 빵입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거예요. 그 배를 탔으면 이미 용서받고 시작된 일에 있어서 우연히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바로 내 잘남, 내 정당성, 나의 의, 나는 신앙에서 마치 해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처럼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부추기고 자기를 절대화시키는 나 자신이 내 구원을 방해하는 하나의 재난이고, 그것이 바로 죄였구나 하는 것을 되돌아서 깨닫게 하시고 그렇게 이끄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주님 앞에서 제발 입 좀 다물라는 겁니다. 그저 모든 것에 핑계, 핑계, 변명, 변명, 한평생 변명과 핑계로 된 이런 죄를 이미 용서했기에 ‘아, 내가 핑계 대는 이런 죄가 살아가면서 날마다 나오는구나.’ 깨닫게 하시는 어린양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용서받은 것에 감사하고 새 언약에 감사하는 바로 그런 모임이 형제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복음이고 뭐고 다 까먹어버리고 같이 호들갑을 떨면서 주께 원망하고 불평하고 어느새 우리가 절대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악마의 앞잡이가 되어서 나를 위한 하나님, 나를 위한 바다고 세상이어야 되는 것처럼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갔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