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동류

아빠와 함께 2022. 1. 24. 11:10

여러분은 여러분은 주님과 같은 종류입니까? 아니면 아닙니까? 여러분이 판단하기에는 어떤 경우라도 주님과 너무나 거리 차이가 있어서 주님은 너무 거룩하기 때문에 나 같은 지저분한 인간하고는 같은 종류가 아니라고 여길 겁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오늘 본문 말씀 항상 기뻐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 때문에 항상 기뻐하는 이유는, 본인의 과거가 소급해서 전부가 나는 포행자요 살인자요 죄인이라는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항상 기뻐하는 소스(source)가 된 거예요. 사도바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옛사람과 새사람 둘 다 다 있어요. 그래서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사도바울이 고백하기를 나는 그동안 나를 지키고자, 나를 개선하고자 했던 그 모든 것을 이제는 배설물로 여긴다 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러니까 내 입에서 행동에서 나오는 내 모든 것이 에이 더러워라, 하고 아주 흔쾌히 기쁨으로 아낌없이 보낼 수 있는, 쫓아낼 수 있는 배설물이 내가 죽을 때까지 계속 쏟아진다는 것, 그걸 보고 사도바울은 항상 기뻐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늘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여러분에게 한번 적용시켜 보세요. 자식 꼬라지 보니 이거 기뻐 아니할 수가 없네요. 왜? 내 뜻대로 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편 꼬라지 하고는, 아내 꼬라지 하고는, 집구석 꼬라지 하고는……, 예? 교회 꼬라지 하고는, 목사 꼬라지 하고는……. 모든 게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는 소스(source)에요. 왜냐하면 그때마다 모세의 지팡이, 나로 하여금 땅 밑의 열 내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누가 알려줬겠습니까? 지팡이 없이는, 모세 없이는 그걸 어떻게 알았겠어요, 예? 그 자리가 십자가 자리 아닙니까? 왜? 모세는 하나님과 같이 근접한 자리거든요. 예수님과 함께 있잖아요. 그 함께 있는 것을, 그 십자가를, 십자가의 의미를 내가 이제는 훤히 알게 되었다는 그 사실. 왜 우리가 기뻐해야 되느냐? 율법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을 지키지 못한 그 자체가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이유입니다. 이거 아멘, 나와 줘야 돼요. 오늘 본문 간단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정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항복하라는 말이에요. 어제도 항복했지만 오늘도 오늘치 항복하라. 항상 항복하라. 그게 항복하는 즐거움과 기쁨, 세상일이, 자식 일이, 남편, 아내, 가정 일이, 사회, 회사 일이 뭐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게 있던가요? 우는 것은 이놈의 기억이 그렇게 끈질기기 때문에 그래요. 그 기억이. 1시간 반 동안 신제품 주물럭대다가 사지도 않고 가버린 사람에게 1시간 반 동안 주물러 댔다는 그 기억 때문에 그 옷 안 사고 그냥 가면 욕 바가지로 하고 싶지요. 그러니까 그걸 한 시간 반으로 생각하지 말고 1.5초로 생각하면 안 됩니까? 왔다 그냥 갔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까?

인간의 옛사람은 자신의 옛사람의 기억으로 만들어지고 나의 새사람은 완료된, 이미 돌다리 건너간 구원받은 천국의 기억으로 우리를 새사람 되게 이끄시는 겁니다. 어설프게 인생 요령 부린다고 선악체계에서 균형 맞출 생각하지 마시고요, 나 자신을, 내 피와 내 살을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는 그 정도로, 남들 보기에는 좀 이상해 보이지만 그런 수상한 종류, 주님이 수상한 것처럼,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난 것처럼 여러분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떠난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조차도 항상 기뻐하는 하나의 원료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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