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2013년 7월 4일 오후 12:01

아빠와 함께 2013. 7. 4. 12:03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람을 만들기 전에 빛부터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인간 마음에 빛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사람 취급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통합니다. 즉 사람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 ‘빛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빛된 사람일까요? 빛된 사람의 흔적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자는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청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릴 때와 지금의 때를 비교해보라고 하십니다. 그동안 우리 내부에서 빛이 얼마나 소멸되었으며 마음이 흐릿멍텅했는지 한 번 보라는 겁니다. 도대체 우리의 어릴 때와 지금 청년 때와 차이가 난다면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겁니까?

어떤 분에게 저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복음 알고 막 살면 됩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답변했습니다. “귀하께서는 본인이 막 살 수 있는 능력이나 권한이 있다고 여기십니까?” 지금 우리의 문제점은 도리어 막 살지 못해서 문제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보세요. 걔들은 자신의 느낌대로 그대로 외부로 표현하고 방출합니다.

울고 싶을 때 막 울고, 웃고 싶을 때 막 웃습니다. 그들이 왜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막 살 수 있는 겁니까? 그것은 그들에게는 ‘자아’가 아직 형성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형성되지 않으면 그들의 자아를 대신하는 분들이 그들의 부모들입니다. 그러니까 부모 믿고 아이들이 막 사는 겁니다.

그런데 점차 걔들이 성장하면서 서서히 자아가 형성되고 그 자아는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으로 뭉쳐지기 시작합니다.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점차 강렬해지기 시작합니다. 행동에 스스로 자제하고 조심스러워합니다. 충동은 죽이고 이성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결국 부모로부터 결별 수순을 밟는 겁니다. 독자적으로 살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점에 충실합니다. 믿음 생활이 아니라 자립 생활을 들어가게 됩니다. 전에는 부모에게 어떻게 생각하고 부모를 어떻게 기쁘게 할까가 우선이었는데 청년이 되면 ‘나를 어떻게 기쁘게 하고 나를 어떻게 만족시키느냐’에 우선 관심사가 있습니다.

전에는 부모가 자기를 지켜주었습니다. 하지만 청년이 되면 내가 나를 완벽하게 지키지 아니하면 자아는 허물어진다고 믿게 됩니다. 따라서 스스로 ‘막 사는 것’을 자제하게 됩니다. ‘막 사는 것’을 흉보게 되고 나쁜 짓으로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참으로 막 사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 안에는 창조의 빛이 가득했습니다. 따라서 그 분만이 ‘빛으로 오신 분’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빛이 사라져버린 어두움 지경이었습니다. 빛으로 오신 분을 영접하기는커녕 배척하는 것이 비른 도리라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막 사셨습니다. 빛이 인도하시는대로 막 사셨습니다. 말씀을 이루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40일 금식하라면 하셨고, 마귀의 제안을 거절하라면 주저 없이 거절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목숨을 잃는 일에 자신을 그냥 맡겨 버렸습니다. 허무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허무하지 않은 삶을 사셨습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지 못하는 겁니까? 왜 우리는 어린아이의 삶을 잃어버린 것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주인을 자기 자신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의 심판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이미 우리는 ‘죽음’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즉 ‘나’라고 할 자리에 ‘죽음’이 들어앉아 있는 겁니다. 죽음에 의해서 진행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바로 이점을 우리가 놓치고 ‘자아’를 대신 주인으로 신봉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큰 착각입니다. 자아가 주인노릇하게 되니 자연적으로 자아의 영광을 고려하는 인생을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죽음이 이미 주인이 되어 있는 입장이기에 나이가 들면 그 ‘자아의 영광’이라는 단념해야 합니다. 거동도 허술해주고, 목소리도 갈라집니다. 즉 전체적으로 허물어지는 집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주인 되시는 죽음이 이미 철거작업에 돌입한 것입니다. 과연 이런 판국에 ‘빛 안에서 막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고린도전서 7장에서 보면, 결혼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결혼을 하고자 하는 자는 육신의 고통이 뒤따른다는 겁니다. 즉 결혼을 당연히 할 일이라든지, 마땅히 할 일이라고 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것보다 ‘주를 섬기는 것’이 빛 가운데 막 사는 일이라는 겁니다.

만약에 결혼을 하게 되면, 주를 기쁘시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둘로 나뉘어져서, 배우자를 기쁘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주님에 대한 사랑이 소홀히 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혼인하는 것이 죄 짓는 일은 아니지만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5: 32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어떻게 하든지 그는 죄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처지에 놓여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자립심에 충만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어린아이가 마치 부모를 즐거운 마음과 편한 마음을 가지고 의식하듯이 하나님에게 모든 것일 일임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어린아이같은 심정으로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빛 가운데 막 사는 것이요 의를 나타내는 삶입니다. 허무를 느끼는 그 근원을 제거하셔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은 모든 것이 허무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귀를 만드신 분과 눈을 만드신 분이 따로 있음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전도서 설교중 '청년들아'라는 제목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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