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강-YouTube강의(숨소리 시편 104:29)20200720-이 근호 목사
제321강, 제목은 ‘숨소리’. 보통 숨소리라고 하면 살아있는 물질만 숨을 쉰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숨을 쉴 때는 과학적으로 산소를 받아들이고 탄산가스를 내뿜는다. 그런데 식물은 반대가 되어서 산소를 내놓고 광합성활동하면서 탄산가스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과학은 무엇을 해명하지 못하느냐 하면 ‘왜 이 세상은 숨 쉬는가?’ 그런 것을 그들은 몰라요.
왜 숨 쉬는가? 그리고 숨 쉰다는 범주를 사람, 동물, 식물까지 할 것인가, 그보다도 더 작은 것에도 숨 쉰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가? 그런 문제까지는 과학에서 주춤하는 경향이 있어요. 왜냐하면 과학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만 골라서 탐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진리에 대해서는 몰라요. 남겨진 게 너무 많아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숨 쉬고 있습니까? 산소호흡은 안하는데 그냥 움직이죠. 그러니까 전염되잖아요. 옛날 서양의 신화 만화 같은 걸 보게 되면 뿔 달린 악마가 활동하는 것이 꼭 메뚜기 같아. 여기서 구부려서 팔짝 뛰어서 탁 갖다 붙고, 스파이더맨이 이쪽 건물에서 저쪽으로 팔짝 뛰는 것처럼 악마는 재빠르게 사람 손에 잡히지 않고 계속해서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저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달라붙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서양 신화에 보면 그런 게 있어요. 동양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것은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이 소제되었다고 우기지만 친구 일곱 명 데려와서 달라붙는 것, 그런 것을 연상하면서 ‘아, 귀신이나 사탄은 자기 원하는 대로 메뚜기처럼 폴짝 달라 붙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신종코로나도 비슷하죠.
그런데 그 점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마귀가 숨 쉽니까? 귀신이 숨 쉬어요? 그것은 숨 쉰다고 말하기가 곤란해요. 왜냐하면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아무리 작아도 영적존재는 아니죠. 영적존재는 살아있다고는 하지만 숨 쉰다고 말은 못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인간은 과학적 인식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는 인간의 범주를 인간이 알지 못하는 범주까지 모든 것을 확대시켜 버립니다.
시편 104편 29절에 보면 이런 말씀 있어요.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여기 보면 ‘호흡을 취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여기 ‘저희’가 누구냐 하면 그 앞에 보면 땅에 있는 짐승들, 그리고 바다에 있는 여러 가지 동물들, 그리고 악어, 온갖 식물들 다 포함돼요. 동물들 주로 이야기하고, 30절에 보면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식물, 동물 할 것 없이 모든 세상이 살아있게 하시는 거예요, 활발하게.
그런데 시편 104편의 이 대목을 보면 누가 그렇게 하게 하느냐 하면 ‘주의 영’이 그렇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참새가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니고 잡초가 만년동안 있는 게 아니고, 호흡을 취하시면 잡초든 참새든 간에 죽게 되어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주의 영이 임하면 그렇다.
그러면 왜 성경에서는 모든 만물에 대해서, 짐승들이 숨을 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느냐.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성신에 의해서, 하나님이 주신 ‘주의 영을 보내사 그들로 하여금 숨 쉬게 하고있고 살아있는 걸 만들었다’ 이 말입니다.
주의 영이 있는 자들은 이 말을 알아듣는다, 그런 취지로 이 말씀을 주신 거예요. 그러면 주의 영이 있는 사람과 주의 영이 없는 사람과의 차이는 뭐냐 하면, 기본적으로 근본적으로 내가 태어날 때부터 호흡에 대해서,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호흡에 대해서 호흡이 유지되고 중지되고 하는 것이 자기 의지, 선택이나 결정에 의해 마음먹은대로 된다, 안된다? 안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사람이 어디 놀러간다. 밥먹고 싶다. 일단은 뭐가 되어야 돼요? 숨을 쉬어야 되는 거예요. 호흡이 되어야 된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가장 기본적인 것을 주의 영이 쥐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주의 뜻이 있다면, 주의 영을 가져가게 되면 그 사람 나름대로 어떤 거대한 계획이 있다할지라도, 심지어 내일모레 예식장 잡아놓고 결혼한다 할지라도 누가복음에 나오는 말씀처럼 오늘밤 네 영혼 데려가게 되면 네 색시는 누구의 신랑이 되겠냐? 그렇게 되겠죠.
그래서 시편에서 이 말씀 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찬양합니다.” 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네 가슴 쪽에 쿵쾅쿵쾅 뛰는 이것부터 한번 손대봐라. 하나님이 깊숙이 네 인생에 지금도 실제적으로 현실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겁니다.
네 눈에 토끼가 뛰어가고 고라니가 물을 마시고 모기가 윙~하고 날 물려고 달려들 때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이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 모기가, 파리가 윙~하고 날아가는 것도 누가 개입했습니까? 하나님이 그 아무것도 아닌 미물에게 개입했듯이 아무것도 아닌 너를 내가 이렇게 개입해서 계속 살려두고 있으니까 그런 차원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 시편 104편 34절에 보면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한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은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아까 식물이든 동물이든 주께서 호흡 데려가면 죽어버리죠. 하나님께서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는 분이에요.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왜 이 이야기를 우리한테 하십니까? 아, 코끼리를 하나님께서 인도해서 하신다. 그거 이야기하려고 하시는 게 아니고 ‘너’ 이야기, 너. 네 안에서 하나님의 신이, 하나님의 영이 작용하는 것을 네가 늘 상기하고 있느냐. 매일같이 그걸 끄집어내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것도 내 뜻대로 안될 때. 시험쳤는데 시험 성적이 안나올 때,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을 때,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 멀쩡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다 해서 “나 요양병원 갈란다. 내 배 째라. 돈 내놔라.” 이렇게 나올 때. 그 때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원망하겠어요? ‘하나님, 내 인생 이렇게 힘들게 꼬이게 하시다니 너무 합니다.’ 이렇게 되겠죠.
그러나 시편 104편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줄 때 생각해보세요. 바로 그게 악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본을 까먹었어요. 근본을 까먹어버렸어요. 왜 까먹냐? 남들하고 비교하느라 분주했거든요. 저쪽 학원은 아무것도 안하면서도 넓혀 있고 우리는 복음으로 모여도 좁아서 뭐 이거는 이 동네에서 다시는 안한다.
뭐든지 사람은 평소에 툭 튀어나오는 말이 자기가 지금 정신을 어디 팔고 있는가가 여과없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날라다니는 침방울, 비말 속에 바이러스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내뱉는 것 속에 내 인생은 내 것이라는 그 악인과 죄인의 사고방식이 바이러스처럼 섞여서 남들과 주고받고 주고받고 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뭐냐 하면 다시, 다시 네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주의, 하나님의 은혜의 개입이다. 이것을 아는 자가 바로 의인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