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사님과의 편지
이장 2006-10-09 10:20:57, 조회 : 150, 추천 : 2
목사님, 안녕하시지요?
오랜만에 안부를 드립니다. 사모님도 안녕하시지요? 일전에 아버님의 부음 소식을 어느 게시판에서 읽었습니다. 늦었지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 밭일하다가 몸을 좀 다치는 바람에 집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불편해진 날들이 꽤 길게 흐르면서 5월도 이젠 그 꼬리만 남기고 있군요
5월이면 어버이날이 오고 이달이 되면 매번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면서 생전의 그 분들에 대한 그리움이 참 깊습니다. 이런 마음과 함께 이 달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듣게 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 현수막과 함께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눈에 번쩍 뜨이는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대구에 있는 우리교회의 "성경신학" 란에서 "십계명"이라는 글을 읽고는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의 맥락을 찾게 되었습니다. 조금 어렵기도 한 내용이지만 에베소서 6장1절2절과 연결하여서 읽어보니 뚫리는 듯 하여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번쩍하면서 그동안 제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말씀에 대해 “잘못 들어 온자" 였슴이 밝혀졌습니다.
말씀이 "네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에서 오직 “주안에서" 만이 말씀과 만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데, 오월이라는 귀 즉 어버이날, 어린이 날, 가정의 달이라는 귀를 가지고 들었으니 “잘못 들은 자" 였슴이 분명해 집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 한다" (엡6-3)는 이 말씀이 가정의 달이라는 귀와 함께 바라보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 같으니 말입니다.
목사님,
출20장12절의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와 엡6장3절의 "이는 네가 잘되고 장수하리라" 의 이 구절들을 어떻게 읽어 내야 합니까? 특히 사도는 왜? 엡6장3절의 말씀을 기록한 것일까요?
(목사님의 답신)
잘 보셨습니다.
성령 받은 신약의 증거자들은 예수를 증거 할 때 언제나 언약의 완성차원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받았지만 이루지 못한 언약(십계명)을 예수님이 이루었다는 차원에서 부모공경을 거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출애굽기 20:12의 뜻은 이렇습니다.
“여호와께 네게 준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약속의 땅이란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거룩한 땅이란 뜻입니다. 거룩한 땅이기에 거룩한 백성일 때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거룩의 유지는 희생제사로 됩니다(출애굽기 19:5, 24:8 “언약의 피”라는 말씀에 유의).
따라서 이스라엘의 부모란 약속을 증거 하는 선지자들과 같습니다(출 13:14). 그런 뜻에서 부모공경의 계명속에는 곧 약속을 받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약속(하나님의 희생의 능력)을 증거 할 때 그 약속을 믿고 사는 자에 한해서만 약속의 땅에서 살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약속이 제대로 지키는 자에 한해서만 약속의 땅에서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간들이 재미 보면서 알콩달콩 가정 이루고 사는 것은 약속의 땅 바깥에서 일어나던 일입니다.
2. 부모공경의 그 계명을 포함한 모든 약속을 제대로 지켜 내신 분은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갈 3:16).
빌립보서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버지를 제대로 공경한 아들이 예수님 한 분 뿐인 것입니다. 너무 건너뛰는 것 같지만 에베소서 6장의 부모공경 본문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에 대한 순종이 십자가의 희생이 된 이유를 혈과 육으로 난 부모 자식 간에서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아들도 제대로 부모공경 못하고, 이 세상에 어떤 부모도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아들의 순종으로만 구원되는 죄인 됨을 아는 부모, 그것을 알고 사는 자식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엡6:3의 땅이니 장수니 하는 표현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약속으로 말미암는 땅은 곧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즉 출애굽기의 땅이 옛언약이 내는 땅, 곧 아브라함 언약이 성취로 주어지는 땅이었듯이, 신약의 땅은 새언약의 성취로 주어지는 땅이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4:3절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합니다. 20절에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하고요. 다시 26절에는 그 처소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합니다. 엡 2:22절에 분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3. 그러므로 에베소서의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은 이렇게 풀이됩니다.
십자가의 피로 구원 된 자들은 그 피의 능력으로 영생에 이르도록 지금도 성령께서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라고 합니다. “주님이 일하시는 영역 안에서” 그런 뜻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부모가 되어서 자식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되어서 부모하나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자기 몸을 다 드려서 순종한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능력으로 영생에 이르도록 언제나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네가 인정하느냐고 성도에게 확인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순간순간 확인하십니다. 자녀들의 불평을 통해서, 부모님의 덧없는 죽음을 통해서, 앞뒤로 여러 관계들이 나옵니다. 모두 다 십자가의 피 공로가 배어 있는 말씀들입니다. 내(예수님)가 너 같은 못난 인간 하나 책임 못 지겠냐? 못난 네 행동을 믿지 말고 나만 믿어라 십자가의 공로만 믿어라 모두 다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면 틀리지 않습니다.
참고로 성령은 꾸중하는 영입니다. 선한가정 이루게 해주고 부부 금슬 좋게 해주는 영이 아니고, 부모자식관계를 개선시켜 주는 일에 동원되는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처소에 들어가면 매사 꾸중을 듣게 되는데 그 꾸중은 행동 잘못한 것에 대한 꾸중이 아니라(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 왜 자기 행동이나 쳐다보면서 예수님의 피 공로를 우습게 여기느냐 에 대한 꾸지람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한복음 16:9)
그런 의미로 신약의 어버이도 자식들에게 선지자 노릇을 해야겠지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복음을 말해주는 어버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미안한 마음 가지고서요. 나 같은 죄인의 죄성을 물려받아서 고생하는 자식들을 보면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줄 것이 있다면 복음뿐입니다.
답을 간단명료하게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반가웠습니다. 불편한 몸 잘 추스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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