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2014년 11월 12일 오전 08:33 (생명책)

아빠와 함께 2014. 11. 12. 09:11

①로마서 9장 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 말하니까 앞에 있는 사람이 “아멘” 하는 거예요. 내가 놀랐어요.
방금 어느 대목을 이야기했는지 아시고 아멘 하느냔 말이죠.
뭐라고 돼있어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아멘. 진짜 성령 받은 건지 안 그러면 습관이었는지 둘 중에 하나에요.

여기에서 사도 바울 본인이 저주받지요. 우리는 백 번 저주받아도 괜찮아요.
우리가 있기 때문에. 구원은 우리가 책임지고 내가 책임지는 게 아니에요.
우리를 위해서 내가 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우리는 어디서 나온 우리냐? 1인칭 복수형이죠.
그렇다면 이 우리에 해당되는 단수가 뭡니까? 바로 ‘나’지요. 그 나가 인자되시는 분이에요.
시편 8편 4절에 뭐라고 돼있어요?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알아주시고, 그 다음에 바로 나오는 말씀이 인자가 무엇이관대 이렇게 권고하시나이까.

사람이란 건 없어요. 사람은 없고 흙밖에 없거든요.
흙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사람은 있어야 되고, 사람은 다 죽으니까 없고,
하나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든다는 창조의 원리가 돼야 안식은 완성이 되고,
그럼 그 사람은 누가 만드는가? 그 사람은 인자가 만드는 거예요.
그 인자가 히브리서 2장에 보면, 예수님을 인자라고 합니다.
시편8편 4절에 나오는 그 대목을 히브리서 2장에서 예수님 자신에게 적용시켰어요.
그러면 사람은 누굽니까? 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는 누굽니까? 오직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나가 되면서 예수님이 만들어낸 우리가 따로 있다니까요. 이게 교회에요.

이 우리는 자기 이름으로 살지 않아요. 죽었기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살아요.
그래서 이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도 주의 이름으로.
사도행전 2장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으리라(21절).
로마서 10장 13절에 뭡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바로 나에서 나온 우리를 두고 이야기한 거예요.

②구약을 거쳐야 돼요. 구약 안 거치고 신약으로 바로 오게 되면 내 개인이 예수 믿어서 구원되는 걸로 오해한다니까요.
그런 식으로 자기의 구원의지를 주께서 아마 옹호했을 걸? 니 혼자 옹호해.
주께서는 우리의 구원의지를 옹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가 구원받고자 하는 것조차 죄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겁니다.

구약에서는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말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해요.
껍데기 속에 알맹이가 들어있어요.
껍데기를 껍데기로 드러내면서 알맹이가 알맹이로 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워지는 생명책이 껍데기라면 지워지지 않는 생명책이 진짜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책은 그냥 생명책이 아니고 앞에 뭔가 붙어야 돼요. 어린양의 생명책.
예수님이 오셔서 생명책 명단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지워지겠네요? 그게 맞는 말이 아니라니까요.
그게 틀린 말일 수도 있고 맞는 말인데
왜 틀린 말이냐 하면, 누가 구원받는지는 창세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틀린 말입니다.
이렇게 정리합시다. 창세전부터 이미 택정한 자는 생명책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구약에서 생명책에서 명단이 지워져야 된다. 이러면 맞지요. 아까 모형이야기로서 충분히 이해됐지요.
지워버리겠다는 말은, 모든 인간은 생명책에 남아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뜻이에요.
한 명도 없는데 결국은 나중에 천국 가니까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 다 천국 오게 돼있어요.
누가 그 이름에 대해서 책임졌습니까? 어린양 되시죠.
모든 구약, 신약 전체가 예수님의 활동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구약은 모형으로 그림자로 사용하신 겁니다.

③우리는 주체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됩니다. 결과에 있어야 돼요.

십일조를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우리 자신이 십일조가 되게 주께서 그런 조치를 했지요.

 십일조하지 말라는 것보다 더 기쁜 소식이지요. 우리 자신이 십일조니까.

우리 자신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주께서 조치를 내리신 거예요.

무슨 양념을 쳤어. 닭갈비에 소스를 발랐어요. 피를 발랐어요.
그 피로 말미암아 구약에 있는 모든 말씀들, 십일조고 안식일이고 우리 자신이 주님 말씀에 합당한 사람이 된 겁니다.

이건 횡재한 것이고 이거는 특혜입니다. 진짜 이런 특혜가 없어요.

우리가 목숨을 잃는다할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맙시다.

이런 특혜 받았으면 목숨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됩니다.

그딴 것 아무것도 아니에요. 받은 기능이. 죽어도 괜찮아요.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릴 능력이 그 특혜에 있기 때문에. 

④바다 위에 나뭇조각이고 싶습니까,

아니면 이 나뭇조각을 움직이게 하는 파도이고 싶습니까?

인간은 파도입니다. 날마다 달라져요.

나뭇조각이라고 여겼지만 사실은 나라는 것이 물결 속에 나도 하나의 부분으로 이미 포함돼있어요.

내가 나 되는데 있어서 주께서 만들어가는 건 맞는데

그 만드는 과정 속에서 내가 나름대로 이렇게 되고 싶다는 그런 내용이 항상 교류가 되면서 만들어져요.

이런 식으로 성경을 보면 성경이 다 풀리게 돼있습니다.

 

-울산강의  ”생명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