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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라는 말이 정신 못차리게 합니다.
과연 성경적인가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중보기도를 주장하는 사람은 이단입니다. 031031
제가 하도 이단, 이단 하니까
제가 좀 심하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신자도 아닌 자들이 목회자가 되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절에 가서 중이 되어야 될 사람들이 절 대신에 유사 절인 교회를 세우고 목회하는데 이단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구약에서 기도 응답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제사드려서 그 제사가 응답 되는 경우에만 기도도 응답됩니다.
이것은 그 성전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곳이요. 그 이름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 외에 그 어떤 자의 기도도 응답은 불가능합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이름'은 다른 이방민족의 신들과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구약 신학 속의 구조입니다.
다니엘서에서도 이 점이 분명하지요.
이것은 신약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주기도문을 1000번을 외우고 반복해서 기도해봤자 기도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기도는, 자기 속에 들어있는 죄를 발산하는 계기가 됩니다.
택한 자의 그 기도 안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침투하십니다.
마치 히스기야의 기도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성도는 자신의 기도 가운데서 성령님의 탄식을 접하게 되고,
더나아가서 십자가 중심으로 일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회개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평소에는 그렇게해서 범사에 감사하지 않고, 자녀의 수능 시험을 위해, 사업을 회생케 하기 위한 기도, 온 식구가 다 예수 믿고 교회 나가는 기도, 개척교회 하는데 있어 교인하나 더 불어나는 기도, 병자가 병이 낫는 기도, 온 교인들이 십일조를 다하게 되는 그날을 위해서 기도, 떠나간 애인이 다시 마음을 바뀌어주기를 기도하는 것, 에배당 짓기 위해 사놓은 터가 땅값이 폭발하기를 애원하는 기도, 남북 통일 기도, 청소년 축구 4강 진입 기도, 등 등, 온갖 기도에 열중하다가
성령님이 탄식이 이 기도 안에 개입하게 되면, 비로소 성경 말씀대로 '범사에 감사해야 된다'는 사실에 접하게 됩니다.
그동안 자신의 죄성이 이런 '범사에 감사'라는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어느 인간이 별 있음을 보고 감사하고, 달 있음을 보고 감사하겠습니까!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36:9)
'하나님이 이름'으로 기도한다면서
실상 '하나님의 이름'이 하시는 기도를 철저하게 가로막고 방해한 자는 바로 자기 자신임을 파악해서
다시금 '하나님 이름'이 해내신 공로와 의로움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 살아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되려면,
그 살아있음을 통해서 인간의 죄를 발산하게 되고,
그 죄를 예수님께서 자기 이름으로 용서가 계속해서 진행된다는
이 두 가지 사실 모두를 알아야 합니다.
중보기도란 지금도 예수님만이 독점하신 기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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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목사님, 성경에 중보기도의 핵심 본문으로 사용되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한 기도는 무엇인가요?
성경에 나오는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중보기도 드리는 것은 무엇을 말함 인가요?
우리 역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본을 받아 이웃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기도와 중보기도는 엄연히 다릅니다.031031
중보 기도란, 구원의 근거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 확보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 의를 근거로 하는 기도는 중보 기도가 아니라 그냥 기도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란 완전히 말씀을 성취하신 분만의 고유 기능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위한 기도는 그냥 언약에 의지해서 드리는 기도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증거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기도를 이용하고 사용하시는 겁니다.
구약의 모든 성도의 기도가 다 그런 겁니다.
그렇게해야 기도 응답의 근거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 안에 있는 자를 그런 식으로 활용하고 계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함입니다.
신약에서는 이것을 '성령 안에서의 기도'라는 겁니다.
즉 성도는 기도 안에서 성령의 탄식에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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