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2014년 8월 22일 오전 07:26(2014여름수련회 9강)

아빠와 함께 2014. 8. 22. 08:02

 

내가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으면 내 주체가 이렇게 허접스럽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고, 

밝혀지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찾지 않아도 주께서 우리의 원망과 불평을 유도하면서 다가오시는데, 

이것이 바로 구원자인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럴 경우에 내 마음은 악마의 마음으로 들통 났기 때문에 

옛날처럼 사람이라고 여겨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그런 삶은 살지 않습니다.

만약 제게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위대한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막달라 마리아를 꼽습니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골방에 숨어서 몰래 향유를 주님 발에 부었으니까? 

아닙니다. 지금 자기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어요. 

자신이 행실 더러운 여자라는 것은 온 동네에 다 소문이 난 상태입니다. 

조소와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자신에게까지 들려옵니다.
도대체 얼마나 자신과 마음이 분류가 되었으면 자신을 향한 비난도 전혀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힘든 이유는 따가운 외부의 시선을 본인이 의식하기 때문에 힘든 거예요. 

다른 사람은 나에게 큰 관심도 없는데 본인이 괜히 상상해서 자기를 욕한다고 분노하고 있어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분류 좀 해라. 이 세상은 네가 10년 후에 잘 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은 광야적 상황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여, 지금도 우리에게 만나를 주옵소서. 그러면 얼마든지 주님을 믿겠습니다.” 

이런 요청에 대해 주님은 이런 답변을 주십니다. “네 마음이 낮아지는 것이 만나다.” 


네 마음이 낮춰진다면, 

다시 말해서 네 마음이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어서, 

”내 마음은 원래 내 소속이 아니고 마귀에게 속한 것”을 네가 안다면 

그게 바로 그 나라가 너의 나라라는 그런 차원의 증거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집으로 돌아가시면 여러분 주변에 전부가 광야의 언약적 상황이니까 온 세상에 만나가 깔려 있어요. 

옛날에는 아침에만 만나가 있었지만 지금은 발에 차이는 것이 만나입니다. 

전부가 우리의 마음을 낮추기 위한 조치들입니다. 

아볼로바이러스로 서남아프리카에서 1,000명 가까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않아 다행이다.” 이 생각에 원망과 불평이 담겨 있는 거예요. 

만약 내 친척이 그곳에 여행을 갔다가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었다면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진작 내 안에 괴물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어요. 주님이 건드리니까 불평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주변에 있는 모든 상황들은 출렁이는 바다처럼, 존재의 바다처럼 파도가 쳐서 우리를 아프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서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위상, 우리의 본질, 우리의 주체, 우리의 현실을 똑바로 깨닫게 하는 준비된 하나님의 만나 덩어리입니다.

골로새서 3장에 보면,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세상 것을 탐한다면 그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그 만나가 주어질 때 ‘제가 바로, 제 마음이 바로 우상 숭배자의 마음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되면 

그 사람은 이미 주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성도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 출애굽 되고 있는 중입니다.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마지막 강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