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2014년 5월 27일 오전 08:30

아빠와 함께 2014. 5. 27. 08:50

하나님께서 거룩과 비거룩을 구분시키기 위해 절대적이고 최종적 기준을 율법에 담아 내려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할례 언약입니다

근본적인 오해는 우리가 할례를 행해서 구원얻을 수 있다는 나 위주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너 잘되라고, 네가 원하는 복 받으라고 말씀 준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한국교회, 한국교회뿐 아니라 교회사 전체의 교회가 근본적으로 문제에요.
말씀은 말씀 주신 분에 의해서 스스로 성취를 해 나가요.
주님 홀로 이루신 할례언약에 의해 아무 쓸모도 없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할례작업에 참여케 될 때
비로소 거룩한 분을 거룩한 분이라고 소개하는 거룩한 업무, 직무를 할당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이스라엘, 이게 진짜 이스라엘이고 진짜 성도입니다

인간이 지상의 자기존재로서는 할례를 붙잡을 수가 없는 거예요.
할례는 존재론적 할례가 아니고 사건이 일어나야 돼요,
사건이. 존재로서는 유지할 수 없고 붙잡을 수 없는, 계속 소지할 수 없는 사건이라니까요, 사건.
사람이 뭘 행하게 되면 그것이 자기의 추억이 되고 기억이 됩니다.
성도의 삶은 뭐냐? 나로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어떤 사건이든,
나로 말미암지 않고, 날 위해서 일으키지 않은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내가 늘 기억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나는 나로부터 시작된 나가 아니고 나 말고 다른 쪽에서 시작된 그 존재가 나 되는 거예요.
그것이 매일 같이 우리에게 사건이 터지고 또 터지는 겁니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사건적으로 보지 아니하면, 사람은 어제 잘난 것을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어제 은혜 받았기 때문에 지금도 은헤 받은 사람이라고 유지할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사건이 늘 나와 버리면 그 사건 속에서 뭐가 들통 나는가?
나는 나의 존재만 꼭 쥐고 살아가는, 이러한 내 혈통, 내 몸, 내 육신만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고백케 하는 겁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그래서 우리가 그냥 살아가면 돼요.
그냥 살아가면, 계속해서 일을 만들어주시면서
내 잘난 맛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내가 계속해서 고백하도록 할 때
이것이 바로 거룩한 분에 의해서 우리는 더럽다는 것이 매일 같이 고백되어지는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 살아 있다는 증거고 흔적이에요.
할례? 십일조? 율법 지키고 목사? 장로?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돈, 건강,거룩한(?) 삶... 하나님의 흔적이라 우길 수 없습니다
“거룩하지 않는 내가 오늘도 다른 분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거룩했습니다.”라는 고백이 나온다는 것,
이것이 주님이 우리와 함께 있는 증거입니다.


-로마서86강 ”할례의 수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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