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강-YouTube강의(천사들 이사야 37:36)20250617-이 근호 목사
제501강, ‘천사들’. 천사들의 존재가 우리 인간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황스러워요. 천사들이 물체가 아니고 물질이 아니고 사물이 아니에요. 활동하는 거거든요. 일종의 유령이라고도 할 수가 없어요. 죽은 자의 귀신이 아니니까. 보이지 않는다 뿐이지 똑같으니까요.
마노아 가정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삿 13:3, 9). 마노아 가정에 천사 나타났을 때 특징이 있어요. 천사가 임한 마노아 가정과 천사와 생각의 핀트(초점)가 안 맞아요. 그러니 천사가 온다는 것은 핀트가 맞지 않음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키는 의도를 가지고 천사가 옵니다.
우리가 알아서 하면 다 잘되는 이럴 땐 천사가 올 이유가 없죠. 끝났다. 절망이다. 그러니까 베드로나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 누가 찾아옵니까? 천사가 오죠. 옥에 갇혀 죽게 됐는데 천사가 옥문을 활짝 열어버려요. 사도 바울 같은 경우는 옥문 열어줘도 나가지를 않아요. 베드로는 좋다고 나왔지만.
천사가 하는 일에 대해서 당황스러운 이유가 얼추 인간하고 비슷한 일을 하게 되면 천사에 대해서 예상을 한다든지 천사가 이렇게 이렇게 할 거야,라고 되는데 천사는 전혀 그런 게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천사 같지 않으면서 천사처럼 대우받는 존재가 뭐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요.
천사는 하는 일을 모르는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있어요. ‘울면 안돼. 울면 선물 안줘.’ 이건 다 알고 있는 거예요. 굴뚝타고 온다는 거. 그리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선물의 특징이 있어요. 저렴하다는 거. 고급진 선물 안줘요. 이게 가난의 균등화라 할까요. 선물은 받았는데 얼마든지 돈 주고 살 수도 있는 문제에요. 엄마, 아빠가 돈 주고 살 수 있는 선물을 산타클로스가 굳이 굴뚝타고 얼굴 시커매져서 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특징은 천사,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예상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는 인간 중에 한 사람으로 인간세계에 같이 섞일 수 있는 천사 같은 존재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요.
그런데 천사는 그게 아니고 특이성을 갖고 있어요. 도저히 어떻게 포섭이 안 되고 붙잡을 수도 없는데 주제넘게 인간들 혼자 활동해야 될 세상을 설치고 다니는 것. 상당히 난감하죠. 그래서 삼손 아버지 마노아 가정 같은 경우에는 천사가 다녀갔을 때 그들은 어떤 위기를 느낀 거예요. “우린 죽었다. 하나님 만나면 죽는다고 하는데 하나님 왔다는 것은 우린 이제 심판받는다는 뜻이구나.”라고 하니까 마노아 부인이 “그럴 것 같으면 진작 죽이지. 왜 우리한테 제물을 받고 가느냐? 그것은 우리를 사용하기 위함이지, 우리를 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삿 13:22-23)
어쨌든 간에 천사는 우리 인간에게 일을 시키되, 인간은 천사를 붙들고 일을 시킬 수 없다는 거예요. 천사는 가정부가 아닙니다. 월급주고 일 더 시키거나 알라딘 램프에서 올라오는 우락부락한 머슴이 아니에요. 독단적으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죠.
그런데 그것이 인간들 세계에서는 이러다 보니까 결국 인간에게 포섭되지 않고 인간이 붙잡을 수 없다는 말은 곧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천사 같은 것은 있다 할지라도 일상생활에서 천사는 부재하는 것, 없는 존재로 치고 인간들은 인간들만 붙들고 활동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를 불러낼 수 없으니까. ‘천사님, 도와주세요. 뽀빠이.’ 뭐 이럴 수 없잖아요. 난데없이 무례하게 침투할 뿐이지, 인간이 요청한다고 쪼로록 달려와서 ‘주인님, 무얼 도와드릴까요?’ 이러는 건 아니란 말이죠.
이사야 37장 36절에 보면 유대나라가 굉장히 궁색하게 되었습니다. 앗수르라는 그 대국이 조그만 나라, 하나님 믿는 것 외에는 아무 볼품없는 유다민족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때 유다민족의 왕이 히스기야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썼죠.
여기서 우리가 또 주의해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섬기고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자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덤으로 ‘옛다, 내 능력을 이제 네가 가져라. 넌 가질 자격이 돼.’ 이건 아니거든요.
순종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까지는 순종했을 뿐이지, 순종한 보상으로 미래까지 자율적으로 돌파할 수 있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에요.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큰 대국, 앗수르라는 대국이 쳐들어와서 랍사게가 와서 협박을 하는 거예요.
랍사게는 앗수르 왕의 밑에 있는 군대장관쯤 되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협박을 하는데 이 사람은 외국 사람인데도 히브리말을 할 줄 알아요. 유대민족이 쓰는 말을 해버려요. 푸틴이 한국에 와서 한국말로 연설해서 협박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한국 너, 미국 의존하면 우리 핵폭탄 떨어뜨린다.” 참, 푸틴은 너무 멀리 있구나. 그럼 시진핑. 시진핑이 와서 똑똑한 한국말로 협박한다고 해보세요. 이 사람이 우리와 무관한 외국 사람이 아니고 그 나라 말을 한다는 말은 ‘우리나라를 이미 잡아먹었구나.’하는 인상을 깊이 새겨줄 거예요, 유대민족에게.
사람들은 그때 히스기야 왕한테 해결책을 내라 하지만, 히스기야는 무슨 재주가 있습니까? 아무 재주 없지요. 그래서 히스기야가 누굴 찾아가는가? 이사야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경은 이렇게 합니다. 산헤립, 인간. 히스기야, 인간. 이사야, 인간. 계속 인간이 인간에게 난처한 일을 미루고 미루는, 랍사게가 히스기야한테 압박을 가하고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압박을 가하고 이런 식이에요. 네가 좀 알아서 해봐라. 너 선지자잖아. 백성들은? 히스기야 임금님, 당신은 임금이니까 나라를 책임져야 되지 않습니까? 뭐 순종했다면서요? 말씀대로 살았다면서요? 살아온 댓가가 있어야지, 이게 뭡니까? 우린 이제 다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자, 인간이 인간을 밀고 인간에게 미룰 때 인간이 빠뜨린 게 하나 있죠. 뭡니까? 천사. 인간은 천사가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인간이 인간한테 책임추궁하고 밀어붙이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거예요. 만약 한 가정에 천사가 살고 있다면 부부싸움이 일어나겠습니까? 안 일어나겠죠.
이사야 37장 36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널부러진, 그야말로 온 천지가 널부러진 시체뿐이에요. 시체뿐이란 말은 시체가 널렸단 말입니다. 기세등등한 사람 다 어디 갔어요?
이 대목을 딱 보면서 사람들은 기쁘기도 하지만 짜증이 약간 올라와요. ‘천사가 이렇게 조질 걸, 좀 미리 언질이라도 사전에 주면 안 되느냐?’ 안 줍니다. 왜? 인간이 인간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인간이 인간만 믿고 있고 스스로 낙담하고 붙들고 난리도 아니고 원망하는 것, 이 모습을 다 적나라하게 들추어내는 거예요. 하나님 믿고 뭐 순종해봤자, 봐. 별 거 없지? 별 거 없어. 그래, 너는 원래 별 거 아니야.
그렇게 협박했던 산헤립, 유다민족 말로 압박했던 랍사게, 그 많은 군사들… 그 많은 군사가 몇 명이냐? 십팔만 오천이에요. 엄청나요. 다 어디 갔습니까? 다 죽었죠. 왜 진즉에 그들이 죽은 자라는 사실, 천사의 눈에는 죽은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왜 진작 몰랐는가?
인간은 몰라요. 그러나 주님은 천사는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