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5/21-마음의 눈

아빠와 함께 2025. 5. 21. 22:29

 전도서 2장 14절에 보면 “지혜자는 눈이 밝고 우매자는 어두움에 다니거니와 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내가 깨닫고” 

 

지혜자는 눈이 밝다는 말. 눈이 밝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눈이 밝은 게 왜 지혜자가 되느냐? 둘이 관련을 지으면 이렇습니다. 눈이 밝다는 말은 ‘마음이 맑다’라고 보시면 되고, 그럼 눈이 어두운 자는 우매자니까 어리석다 또는 시커멓다. 시커머니까 “어두움에 다니거니와”. 음흉하다, 컴컴하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서 마음구조가 말의 구조로 바깥으로 나옵니다. 전달돼요. 그 사람이 욕설을 한다는 그런 뜻이 아니고 고상한 말로 아무리 나열된다 할지라도 그렇게 연결 연결되는 직물구조, 두 실이 어긋나면서 직조가 되잖아요, textile, 직물이 되면서 나오는 그 색조가 전체적으로 음흉하고 칙칙하고 깔끔하지가 않아요.

 

눈이 맑다는 것은 세상적 사고방식에 의하면, 진리에 대해서 여과 없이 쏟아내버리는 사람이에요. 진리에 대해서. 앞뒤 안 가리고, 눈치코치 안 보고, 이게 어떤 상황인지 ‘내가 그 말 내뱉어서 나중에 뒷감당하겠어?’ 걱정 근심 이런 거 없이, 그건 미래 일이잖아요, 내가 어떻게 유리할까 불리할까, 나한테 이익이 올까 그런 건 나중 문제고 지금 내가 현장에서 할 것은 마태복음의 말씀처럼 아닌 건 아니고 긴 건 기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현장에서 장래 일을 미리 당겨서 염려 걱정하지 말고 지금 무엇이 옳은가 그것만 생각하라는 거예요.

 

‘그럼 목사님,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겠네요.’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용기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투명한 투명지만 되면 돼요. 왜? 일은 내가 벌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배후에 주님이 투명한 나를 통과해서 주님 스스로 자기 말씀을 내뱉는데 네가 방해나 놓지 마라, 이렇게 되는 거죠.

자아의 두께가 두꺼워버리면 이게 방해가 돼요.  그럼 주님은 우리의 자아를 어떻게 다루시는가? 진리는 진리대로 드러나게 할 때 그 진리가 투과할 수 있는 성도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이게 용해가 돼요. 녹아버리죠. 형체는 있는데 말씀은 형체 있는 걸로 간주하지 않는 상태. “너 거기 있나?” “네, 있습니다.” “내가 없는 걸로 쳐줄게.” 하고 엑스레이 투과하듯이 나의 의지, 나의 감정, 나의 지식보다 더 센 방사능으로 그냥 뚫고 주님께서 현장에 나타납니다.

그럼 우리는 평소에 우리 마음을 숨기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숨기는 하나의 고체가 되죠. 그런데 말씀은 이 고체를 용납하지 않고 와해시켜버리고 우리 마음을 주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대로 하니까 그 현장에는 뭐냐? ‘내 뜻은 무조건 죄인데 주께서 감사하게도 이 죄와 섞여서 진짜 죄인이 아닌 의인되시는 주의 의로운 말씀만 나의 죄를 동반시켜서 지금 당신 앞에 쏟아놓고 있습니다. 비록 내가 하는 말이 내 신상에 손해가 되고 비웃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건 뭐 주님 자신이 이 땅에서 비웃음을 당했기 때문에 주님이 당했던 체험에 함께했다는 그것만 해도 보통 영광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겠죠.

주님께서는 동행이라는 방법을 사용해요. 동행.
그것이 마태복음 10장에 나옵니다. 19절에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앞의 한 구절 더 읽어보면 18절,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내부의 마음이 바깥으로 형상화돼서 나오는 게 말이에요. 염려하지 말라. 20절에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우리를 아주 쪼다로 만드시고 우리로 하여금 발발 떨게 하면서 발발 떨면서 할 소리 다 하게 하시는 거예요. “살고 싶습니다. (작은 소리로) 그러나 주께서 구름타고 오십니다.” 이렇게 해놓고 또 “죽이지는 마옵소서!” 꼭 예레미야 같아. 계시 전하면서 절 죽이지 마옵소서.
양면이 다 튀어나오는 거예요. 나의 연약함, 나의 믿음 없음이 다 튀어나오게 해놓고는 주께서 하실 계획은 그대로 이런 나약하고 모자란 우리를 통해서 주께서 우리를 투명지로 사용해서 주께서 하실 일을 다 보여줄 때, 그때는 너무 투명하기 때문에 ‘네가 참 눈이 맑구나.’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게 마음의 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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