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3/23-우상이란 자기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의식하는 정신

아빠와 함께 2025. 3. 23. 23:02

주님께서 우리는 우상인 것을 끄집어내시고 주의 이름으로 교체하는 작업에 있어서 다시 한번 우상의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상이란, 자기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의식하는 정신’ 이게 우상의 본질로 들어가 있어요. 나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타인, 남이죠, 타인에게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고 또는 안 묻더라도 은근히 고대하고 기대하는 것, 이게 바로 우상의 주특기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상이 안 되려면 무엇이 제거되어야 돼요? 타인을 의식하는 정신이 제거되어야 되겠죠. 이걸 제거하는 방법이 1번-마취제를 쓴다, 이런 거 아닙니다. 이 타인의 자리에 누가 오시느냐? 주의 이름이 와요. 

 

그러니까 ‘아프다’는 말이 뭐냐? 아프다는 말이 그 말이에요. 주님이 오지 않으면 아플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 주님 때문에 나의 모든 사고가 다 무너지고 이거는 나를 지킬 수 있는 어떠한 토대도 현장에서 다 치워버리는 거예요. 이거 이거 수집해서 나를 만들자 하는 그런 기회조차 주님께서 다 무산시키는 겁니다.

그걸 누가 하시는가? 그걸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해주셨잖아요. 언약이 잉태해서. 특히 요셉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고. 대표적인 거죠. 꿈 때문에 완전히 망가진 인생을 살았어요. 어느 정도냐 하면 나중에 국무총리가 되는 망가진 인생을 살았어요.

망가졌다는 말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모든 건 망가졌다는 거예요.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것은 결국, 다시 한번 내가 괜찮은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걸로 수집하는 용도가 아니고 ‘꿈대로 아버지, 엄마, 형들을 위해서 내가 국무총리라는, 내가 원치도 않는 이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하는 뜻이에요.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여러분들에게 희생물이 되기 위해서 주께서 그런 조치를 내렸습니다, 그런 뜻이란 말이죠.

 

점선인 말씀이 우상인 인간 안에 들어와요. 말씀이 점선으로 들어옵니다. 들어오면서 이 점선이 나라는 점선에게 ‘말씀의 막’을 형성하죠. 말씀의 막이 형성됩니다. 일종의 하늘나라, 예수님 몸의 세포가 됩니다. 예수님 몸의 세포입니다. 그럼 말씀이 뭐로 바뀌느냐? 이게 실선으로 바뀌어요. 실선으로 바뀌겠죠.

그럼 말씀이 들어올 때, 우상을 덮칠 때에, 우리 내부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우상성이 폭로되는 거예요. 우상성이 폭로가 됩니다